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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시나 Oct 10. 2024

착각은 자유지만 판단엔 책임이 따른다

오만한 편견

-24-



"선생님, 고민하다가 말씀드리는데요.. "


5월 둘째 주가 지난 어느 날, 반장이 조심스럽게 나를 찾았다. 나는 여느 때 같지 않게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든 반장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쾌활하고 긍정적인 그녀가 이렇게 위축되어 있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쓰고 있던 교무수첩을 덮고 장과 함께 잠시 복도를 걸었다.


" 몇몇 아이들이 교생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아직 대학생이면서 선생님인척 한다고 그러고.. 무엇보다도 상담하시는데 대놓고 딴청 피우거나 졸거나 그래서 분위기를 흐리는데 제가 다 선생님께 죄송해서.."


교생선생님의 수업은 나도 임장 해서 있었는데 대놓고 딴청을 피우거나 분위기 흐리는 모습은 못 봤다. 그럼, 내가 안보는 곳에서 그런 단거야? 내가 되묻자, 반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시간에나 학생 상담을 할 때 몇몇이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입술 끝이 쓰려왔다. 몇몇이 교생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반장이 하는 말을 마저 경청했다.


" 그런데 교생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하시고 좋은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죄송스럽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근데 그 목소리 큰 몇몇이 워낙 아시다시피.."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나에게 용기 있게 전달해 준 반장에게 칭찬을 해 주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 어리고 예민한 학생들이라 느끼는 그대로 짧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한참 잘못된 행동이었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교생선생님도, 이 상황을 전달한 반장도, 대부분의 학생들도, 그 몇몇의 목소리 큰 학생들 까지도 말이다. 나는 고민 끝에 점심시간에 교생선생님께 커피를 한 잔 사겠노라 말하고 그와 약속을 잡다.


" 선생님, 학교 생활은 좀 어떠세요?"


내가 넌지시 말을 건네며 웃자, 그녀도 조용히 웃어 보였다. 뭔가 복잡한 표정이 얼굴을 스친 건 내 기분 탓일까. 손에 쥔 따스한 아메리카노 잔에 온기를 느끼며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 선생님,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시고 선생님 뜻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공감의 말을 보태자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엄숙해졌다. 뭔가, 우리 반의 그 미묘한 기류를 분명 자신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늘 당찬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고요한 표정을 마주하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내가 다음 위로를 하려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그녀가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저 지금까진 학생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는데, 생각을 바꿨어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려고요."


나는 그녀의 뜻밖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노력하겠다고? 그녀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매일 두, 세 명씩 학생상담을 했고 하루 두 시수 이상 수업을 하고 있었다. 특히 정성스레 만든 학습지와 PPT, 수업계획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딴에는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소통하기 위한 애씀이었으리라.


그러니 그녀는 이미 충분히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짠한 마음과 슬픔이 밀려왔다. 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걸까, 아마도 그녀는 알게 모르게 이 상황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으리라. 그건 옳지 않다. 잘못은 한 사람이 반성해야 한다. 잘못이 없는 자가 잘못을 찾는 것은 반성이 아니라 자학이다.


나는 오늘 종례는 나 혼자 들어가겠다고 말하곤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 한채 그녀와 헤어졌다.




-드르륵.


나는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조용히 섰다. 일순간 소란스럽던 반이 조용해졌다. 나는 뒤에서 우리 반 학생들을 찬찬히 내려다보곤 말없이 뒷 벽에 걸린 크고 긴 거울을 꺼내 들고 교탁 앞으로 가져갔다. 학생들은 일제히 내가 뭘 하는지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가로는 40센티 세로는 족히 1미터는 되는 그 거울을 옆으로 들고 학생들을 훤히 비췄다.


책상에 앉아 칠판만 보던 학생들은 눈앞에 거울이 놓이고 교실 안에 앉은 자신이 보이자 다소 놀란 나머지 움찔움찔하고 몇 마디 말들이 터져 나왔다. 담임선생님 왜 저러는 거야. 뭐야, 거울을 왜? 다소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교탁 위로 조심스럽게 거울을 내려놓았다. 탓- 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조용해졌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거울 앞의 자신에게, 여러분은 떳떳합니까?"


나의 질문에 교실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나는, 요주의 몇몇 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백 마디 말이나 훈계보다,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게 더 중요했다. 나는 거울에 비친 학생들을 들여다봤다. 몇몇은 평온했으나 대다수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몇몇의 그들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말을 끝마치고 교실을 나올 때까지 교실은 조용했다. 학생들에게 일종의 폭탄선언을 한 셈이니 이 일로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뭐 어떠랴. 잘리기밖에 더하겠는가. 그것보단 한 인간이라도 인간답게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단단히 각오하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그날은 어떤 전화나 연락, 특이한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정작 사건은 다음날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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