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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시나 Oct 24. 2024

외로움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26-


"선생님, 이쪽으로 모여서 우리 사진 찍어요!"


체육대회 당일 날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분주한 모습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체육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 한 껏 꾸민 우리 반 학생들은 추억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그녀들은 마치 단 하루 허락 된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은 신데렐라 마냥,  평소엔 거의 하지 않던 화려한 화장과 양갈래 머리 등 귀여운 모습에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나는 몇 번 어울려 가며 사진을 찍다가 한 가지 사실을 곧 눈치챘다. 그렇다, 이런 날이면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반에서 겉도는 학생이었다. 우리 반에도 평소 조용하고 얌전하던 그녀가 유달리 홀로 군중 속의 고독을 나타낸 모습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녕? 오늘 컨디션 좀 어때? 오늘, 무슨 종목 출전하니?"


그녀는 내가 대화를 걸자 한 껏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내게 말을 거냐는 듯이. 당신은 저기 저 무리들 속으로 돌아가고 내게 신경을 끄라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지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피구? 단체 줄넘기? 계주 명단에선 못 본 것 같은데?"

"단체 줄넘기에 참여해요.."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나는 그래? 파이팅! 하고 웃어 보이며 주머니 속에 갖고 있던 사탕 한 알은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손에 넣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쉽게 뒤로한 채 교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복도에서 우리 반 교생선생님이 들어오던 참이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 다가섰다. 무슨 일이세요? 하고 말하는 그녀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나는 오늘 대회의 각종 심판으로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므로, 운동장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교생선생님께 그녀를 조금 챙겨달라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반장 및 부반장에게 반에서 소외되는 친구들이 없도록 다 함께 하는 우리 반이 되게 노력하자고 일러두었지만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 어린 소녀들의 마음에 거기까지 여유와 시선이 닿지 않을 수 있으므로 교생 선생님께 다시금 부탁드린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조금 심각한 얼굴로 교생 선생님이 대답했다.


"안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상담을 다 끝냈는데, 그 친구만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혀와서 못했던 참이었어요. 오늘 틈틈이 제가 말도 걸어보고, 혹시 부담스러워하면 조용히 곁에 있으면서 외롭지 않도록 함께 잘 보살펴 보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교실 뒷 문의 유리를 통해 그녀를 다시 한번 더 바라보곤 발걸음을 돌아섰다. 그리고 문을 열고 교생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우리 반의 그 왁자 지껄한 무리들이 다시 선생님을 향해 함께 사진 찍자고 즐겁게 외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즐겁고 흥겨운 오늘, 그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곧, 방송을 통해 행사를 위해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안내가 울려 퍼졌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오늘의 서막이 올라오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저희 반에 피구 에이스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서 못 나오고 있어요. 탈수? 증세까지 있어서 보건실에서 약까지 받아먹었대요. 문제는 선수 한 명이 부족해요. 어떻게 해요?"


반장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파죽지세의 우리 반은 어느덧 피구 결승을 앞두고 있었다. 학생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가운데 피구 에이스 학생의 부재로 비상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다른 잘하는 친구들은 없냐고 물어보자, 이미 피구를 잘하는 친구들은 피구 선수로 발탁된 상황이고 나머지 친구들은 단체 줄넘기 선수들이어서 그럼 한 명이 두 경기를 모두 뛰어야 한다고 했다. 두 경기 모두 격렬한 경기라 자원해서 모두 참여할 학생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의 말을 보태며 반장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다른 학년의 줄다리기 경기 심판을 마치고, 이내 우리 반 학생들에게로 돌아갔다.


"혹시 피구 경기 자원할 친구 있나요?"


그러나 피구는 날아오는 공을 피하고, 공격을 해야 해서 여학생들 중에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운동이기도 했다. 이미 피구를 좋아하거나 할 만한 학생들은 선수로 다 발탁된 뒤이고, 곧 단체 줄넘기 결승도 남아 있어서인지 쉽사리 자원하는 학생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침의 그녀가 교생 선생님께 조용히 무언가 속삭였다. 나는 침을 삼키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자, 교생선생님이 이내 눈치를 챈 듯 내게 다가와 조용히 일러 주었다. 그녀가 자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희망 찬 얼굴로 반 친구들에게 외쳤다.


" 선수 명단이 확정되었습니다. 모쪼록, 안전하고 보람차게 최선을 다합시다!"


멀리서 휘슬이 울리고, 피구 결승을 알렸다. 나는 모든 학생들과 함께 피구 경기가 열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출전하는 친구들은 경기에 집중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의 그녀는 한 층 생기 있고 빛나는 얼굴로 경기장 안에 들어서 있었다. 내가 긴장된 얼굴로 쳐다보자, 교생선생님이 내 귓가에 대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기대하셔서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 친구 초등학교 때 피구부 주장이었대요."


어머, 정말요? 그런데 왜 피구 경기에 자원하지 않았을까? 나는 문득 의아함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그런 생각 따윈 할 겨를 조차 없이 경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객원 멤버로 발탁된 그녀가 빛의 속도로 종횡무진하며 게임을 리드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교생 선생님은 손을 잡고 그런 모습을 간절히 응원했다.


외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 반에서 한동안 외로웠던 그녀가, 잠시라도 이 게임 속에서 그 외로움을 잊고, 그리고 오늘 경기를 토대로 조금은 편하게 반에서 어우러지고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하고선 목청껏 응원했다.



"파이팅!!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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