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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시나 Oct 03. 2024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스쳐보면 사랑스럽다

-23-



 "선생님, 그거 알아요? 교생선생님 왔대요~!"


학생들은 나보다 소식이 빠르다.

나는 나보다 학교 소식을 먼저 알고 내게

일급비밀을 특별히 공유해 준다는 듯 해사하게 웃는 우리 반 반장을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반장, 그래서 지금 나 말고 교생선생님이 기대된다는 거야~?"

"아 물론 우리 담임선생님이 최고죠. 기대된다는 게 아니라, 사실 전달이에요! 사실 전달!"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돌리는 반장을 보고

피식 한번 웃어주곤 얼른 교실로 들어가라고 그녀를 교무실에서 돌려보냈다. 곧 여덟 시가 되면 교생 선생님들이 올 것이고 오늘 조례부터 한 달간 함께할 것이다. 기대되는 오월의 첫 월요일이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앳된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교생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10여 년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운 좋게 모교에 교생실습을 갈 수 있었고 또한 우연하게도 우리 과 선배님에게 배정되었다. 나는 눈앞의 그녀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곤, 10년 전 내가 선배 선생님께 들었던 그 질문을 바로 돌직구로 던졌다.


"선생님은 꿈이 선생님이신가요?"


10년 전에 선배 선생님께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어땠던가. 초면에 뜬금없는, 그러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대답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교사를 희망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나? 교사 답지 않아 보이나? 예비교사로서 부족해 보이나? 많은 걱정으로 위축되고 떨렸던 나와 달리, 내 눈앞에 그녀는 훨씬 의연하고 용기가 넘쳐 보였다. 그녀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네, 저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나는 말없이 책상에서 교사용 지도서와 교과서 한 권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둔 수업계획서와 평가계획서를 담은 파일도 함께 그녀의 두 팔에 양껏 안겨주었다. 그녀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수업을 많이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나요?"


이번에도 그녀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수업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대표수업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온 것 같았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사뭇 비장한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도 귀여웠다. 나는 10년 전 우리 과 선배님이 내게 던진 그  마지막 폭탄발언을 이제 그녀에게 던질 차례였다.


"선생님이 수업하신 부분은, 제가 다시 수업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배운 내용으로 수능시험까지 치게 될 거예요. 그러니 반드시 잘 부탁드립니다."


10년 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무서웠던가. 나는 교생 실습 첫날부터 바로 다시 대학교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달랐다. 그녀는 내가 챙겨준 한 무더기의 책과 자료를 차곡차곡 개어 무릎에 얹어두곤 엄숙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믿고 맡겨주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음직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첫날부터 학생들과 함께 시간에 뭘 할지 준비해 오고 학생 상담용 카드까지 자체 제작해 온 그녀를 열심히 칭송해 주곤, 나는 내 시간표와 우리 반 학생들의 사진 명렬을 프린트해 주었다.


우리 반의 특징과 VIP인 그녀들에 관해서도 살짝 귀띔해 줬다. 그녀는 내 말 한마디 한 마디를 놓칠까 여지없이 집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교생실습에서 대부분의 사범대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교직적합성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토록 절실한 그녀가 누구보다 보람차고 행복한 한 달을 만들길 맘 속으로 깊이 응원했다.


나는 떨려하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려  괜찮은지 물어보고 함께 팔짱을 끼고 교실로 향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를 떠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교생 첫 수업의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너무나 긴장해서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염소 목소리가 나왔다며 메에~~ 하는 소리를 흉내 내자 그제야 그녀는 조금 편하게 웃었다.


그리고 교실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중요한 사실을 속삭여줬다.


'선생님, 겉으로 보기엔 우리 반 친구들이 다소 왁자지껄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 예뻐요.

스쳐가듯 보면 사랑스럽고요.

 부탁드립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에선 새로운 그녀를

반기는 낙서가 가득한 칠판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들 우리를 마주했다. 기대에 부풀어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들을 향해 웃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장난꾸러기인 몇몇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흥분으로 과열된 교실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 곁의 교생선생님을 소개했다.



"함께 즐거운 한 달을 만들어봐요."



행사의 달 5월,

교생실습,

가장 큰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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