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전화는 늘 나를 순식간에 영덕으로 이동시킨다. 이번엔 밥 먹다 숟가락을 든 채로, 은행이 우수수 떨어지는 골목길로 데려갔다.
아버지 : 아니 은행을 계속 준다. 은행이 맛있어. 딸램아.
나 : 은행? 나 은행 먹고 싶은데.
아버지 : 은행 좋아하나
나 : 응
아버지 : 음~
나 : 은행 얼마나 맛있는데. 볶아도 맛있고 구워도 맛있고 삼계탕에 넣어도 맛있고
아버지 : 근데 그 까는 과정이 힘든지 알제
나 : 어...ㅎ
아버지 : 그 아버지 쪼금 힘들여가지고 쫌 보내주까
나 : 응~! 보내줘
아버지 : 알았다. 아줌마 내일 또 열심히 가 줍는다. 별로 주울 것도 없지 뭐. 아버지가 포크레인가 다 털어놨는데. 그냥 퍼담아오면 되는데. 근데 까는 게 힘들어
나 : 까는 게 힘들어? 안 까봤어.
아버지 : 그 껍데기 그 얼라 설사똥 냄새 있잖아. 물렁물렁한 거. 냇가 가가지고 겉껍데기 다 까고
나 : 냇가에서 까?
아버지 : 흐르는 물에 다 까야지. 안 그럼 그 어데가. 얼라 설사똥 기저귀 빠는 거 한가지라니까. 냄새가 얼마나 고약하노. 그래. 인제 그 딱딱한 알맹이만 가지고 와가 햇빛에 며칠 말라.
나 : 응
아버지 : 말라가지고 또 뿌라야 같은 거 찝는 게 있어. 딱딱하니까. 그 속껍떼기를 까야 돼. 장난 아니다 그거. 갖고 오는 거는, 은행을 갖고 오는 것까지는 쉬운데, 거서 이제 겉껍데기 까고 속껍데기 까고 이게 골치 아프다.
나 : 진짜 골치 아프네
아버지 : 그게 힘들어 글치 뭐. 그래도 뭐 딸래미 그래 뭐 좋아한다 그러면
나 : 앗싸~ 아껴 먹어야겠다.
아버지 : 아줌마도 또 주스러 간단다. 어차피 아버지 털어난 거. 어이~ 알았다.
나 : 알겠어.
아버지 : 밥 맛있게 먹어라.
서울에는 수나무만 골라 심었는지 은행알 보기가 쉽지 않다. 냄새가 고약한데 딸내미가 좋아한다고 직접 주워서 씻고 말려 보내준다는 아버지가 고맙다. 그런데 조금 힘들여 보내준다던 은행이 감감무소식인지 3주째다. 힘 좀 내라고 전화를 해봐도 도무지 소식이 없다. 마침 가족 모임이 있어 영덕에 내려갔을 때 직접 독촉에 나섰다.
아버지 : 딸래마, 뭐 필요한 거 없나
나 : 은행.
아버지 : 은행?
고모 : 돈 보내달라잖아~
나 : 아니 저번에 은행 보내준다 했잖아. 얼라 설사똥 기저귀 은행. 언제 보내주는데
고모 : 얼라.. 설사똥 기저귀? 그게 뭐고
아버지 : 알았다. 다음 주에 보내주께
나 : 알겠어~
<반갑습니다..저는 택배예요~현관앞에있어요~^^>
일주일 후, 드디어 은행이 왔다. 도착 메시지가 아주 요상하고 기가 막힌다. 현관문을 열고 상자를 들어 올렸는데 웬걸 묵직하다. 상자에 ‘떡’이라고 적혀있어 떡도 넣었나 했는데... 무슨 은행을 이래 많이 보냈노. 이걸 언제 다 먹으라고.
다음날 친구에게 캠코더 빌리러 가며 은행을 챙겨갔다. 저녁 먹고 간식으로 꺼내 먹는데, 해바라기씨나 피스타치오처럼 까먹는 재미가 있어서 손이 계속 갔다.
다음날 아버지와 전화하면서 “맛있어서 한 30개는 먹은 것 같다” 하니 혼났다. 은행은 독이 있어서 프라이팬에 볶아서 하루에 7개만 먹어야 한다고. 웬걸 약간 씁쓸하더라. 근데 하루에 7개만 먹으라면서 이래 많이 보내면 우짜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은행 좀 노나주면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영덕 촌구석으로 데려다줘야지. 얼라 설사똥 기저귀 냄새나는 은행이 우수수 떨어지는 골목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