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 기억이 많지 않지만 유독 또렷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하원 후 가방을 현관에 던지고 뒷마당으로 달려가 검은 닭을 안는 모습. 비록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지만 오골계는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오골계는 노란 병아리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버지가 어디서 달걀을 가져와 우리 집 닭이 함께 품었고 그렇게 오골계가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닭이 낳은 알을 품으면 검은색 닭이 태어난다고 생각했었다.
노란 병아리들도 귀여웠지만, 오골계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혼자만 색깔이 달라 왕따를 당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병아리들은 키가 쑥쑥 크고 덩치도 커졌지만, 오골계는 크는 듯 마는 듯했다. 동글동글하고 털이 부드러워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서열 꼴찌라 밥을 못 먹어서 크지 않는 건가 싶어 밥그릇에 사료를 퍼서 따로 주었는데도 잘 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게 다 큰 거다”라고 했다. ‘다행이다. 원래 작고 귀여운 닭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름을 따로 짓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오골계라고 불러 나도 그렇게 불렀다. 생소한 이름이 귀엽고 특별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오골계는 어정쩡하고 뒤뚱뒤뚱 걸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매번 달려가 안아 버렸다. 당연히 오골계는 싫어하며 발버둥을 쳤다. 그 발버둥마저 힘이 약하고 순했다. 불쌍하고 미안한 마음에 내려 주면 뒤뚱뒤뚱 도망쳤다. 그 모습이 귀여워 또 안고 내리는 일을 매일 반복했다. 오빠와 동생도 오골계를 예뻐했지만, 내가 하도 좋아하다 보니 질려버렸다며 포기해 버렸다. 그렇게 혼자 오골계를 독차지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평소처럼 유치원 차에서 내려 현관에 가방을 던지고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오골계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 “오골계가 없어!” 하고 다급히 말했다. 어머니와 동생도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도 오골계가 보이지 않아 어머니가 진숙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설마가 닭을 잡았다. 진숙이 집 주변에 검은 깃털이 있었다. 이 진숙이 시기가 내 오골계를 잡아먹고는 태연히 입을 싹 닫고 있던 것이다.
오골계가 이제는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 분노가 치밀었다. 밖으로 나가 내 키보다 큰 진숙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영문을 모르는 진숙이는 앞발을 들어 나에게 덤벼들었고 내 입술을 할퀴었다. 그 뒤로 진숙이는 무관심과 더불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사건이 이후, 집에 도착하면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매일같이 뒷마당을 헤집고 뛰놀던 내가 없어지니 닭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