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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변화가 낯설어 스스로 미로를 만들다.

by 삼삼

머리 속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기력을 상실케 하는 주범. 외부의 장애물은 없다. 없는 것을 만들어 결핍의 욕구를 채워 넣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 허상이 반복되어 기력의 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다.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루의 시간에 미로를 만든다. 할 일을 잔뜩 채워 넣는다. 육신과 정신은 뭐든 할 수 있다고 틈 없는 복잡함을 생성한다. 한치의 공백도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친다. 힘이 최고조에 이를 때 나만 알 수 있는 미로로 외부의 침입자를 막아낸다. 나만의 요새가 정교함으로 단단해진다. 24시간의 채움으로 단 1초의 여유도 허용치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나만의 공간 속으로 집어넣는다. 만약이라는 건 없다. 순수한 나만의 것만 존재할 뿐이다. 복잡하고 정교할수록 마음의 안도함에 생각의 자유가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착각이었다. 육신의 피로, 생각 폭풍, 긴급한 멘탈 지진 경보 등에 시간의 미로는 한순간에 감옥이 된다. 내부로 침투한 재해에 절차를 따지며 하나씩 복잡한 암호를 풀며 정교한 잠금 장치를 해제해야 하기에 어디로 대피할 곳이 없다.

완벽을 추구하고픈 욕망, 결핍을 해소하려는 분투, 어떤 것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암호와 잠금장치를 만들어 정작 나를 보호하지 못한 오히려 나를 해치는 도구로 돌변함. 불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 소모에 기력을 상실했다.

여유의 틈이 있었다면 잠시 한걸음 물러서 24시간을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인데 빽빽한 분초의 장벽이 그조차도 시도할 수 없게 한다.

마음이 급하고 생각이 많아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는 어리석은 산만의 파도에 휩쓸렸다. 과거와 미래에 잔뜩 힘이 들어가 눈앞의 현재를 못 보는 뜬눈의 장님이 되었겠다. 나라는 존재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다.

변화가 낯설었다. 익숙함을 벗어나는 게 이상했다.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지 않고 그냥 외면하면 그만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4월을 보내며 급변한 하루 할 일에 스스로 혼란에 빠져 무엇을 하든 힘을 내지 못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는데 생각과 행동은 동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익숙함을 버림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는 듯 무작정 내가 해야만 하는, 누군가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는 것에서, 할 수 있는 자원이 눈앞에 있어도 스스로 거부하길 여러 번이다. 억지로 무언가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것에 그리 집착하여 붙들고 있는가.

혼란스럽다 여기는 건 자기합리화다. 이미 하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안한다는 건 위선이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 냄이 진행되고 누가 봐도 남다른 것이 티가 나는데 혼자서만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외침을 반복하고 반복하다 스스로 지쳐버리며 기력이 솟는 힘조차 사라지게 했다.

두뇌가 돌로 굳어버렸다. 머리 회전이 멈춰버렸다. 길을 잃었다. 경로 추적이 안된다. 멍하니 있다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 서 있는다. 가만히 담아두면 부정의 악순환이 생기는 이유를 모른채 방황하고 나와 무관한 것에 화를 낸다. 분노를 만든다. 사소함에 참을 수 없는 욱함을 소환시킨다. 다시 활동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틈이 있는 행동에 시간의 미로를 단번에 걷어차 버린다.

이는 단순, 간결,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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