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그를 피하는 결심
새벽, 잠에서 깼다. 어제 먹은 저녁이 두뇌를 깨웠다. 장의 운동이 멈춘 듯 나와 밀당을 하고 있다. 어두운 방 밖에 빛이 보였다. 누군가 하루를 일찍 시작한 기척이다. 가끔 새벽잠 없는 고요의 침묵을 깨는 소리 오늘이 그날이었다.
눈을 붙여본다. 육신은 침대와 하나가 되었다. 감겨 진 눈은 정신의 벌떡임을 이길 수 없었다. 두눈은 두뇌의 명령을 거역한다. 거부한다. 둘의 신경전에 장은 자신만의 기지개를 편다. 활발한 움직임의 시작에 육신의 적막이 깨졌다. 속임수다. 두뇌와 두눈 사이의 신경전에 나를 속이는 장의 독립된 움직임. 더는 밝은 빛을 기다리는 기억의 정리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뜬눈의 새벽이 계속된다.
침대에서 일어난다. 두뇌와 두눈의 싸움이 끝났다. 방 밖의 빛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쇼생크 탈출이 시작된다. 방문을 열고 거실 쪽을 살핀다. 안방의 문이 열려 있다. 새벽잠을 잊은 검은 머리의 존재가 잠시 자신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거실의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보인다. 그 순간, 누군가의 형상이 보인다. 그가 나타났다. 눈을 피해 급히 방문을 닫는다. 거실 빛은 여전히 빛난다. TV는 무언의 시위로 말이 없다. 새벽의 조용함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준비된 탈출, 백팩과 옷을 미리 준비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다. 한발짝의 움직임이 지금은 삼만리, 백팩을 챙겨 나가기만 하면 된다. 거실이 조용하다. 왜인지 조용한지 모른다. 나의 발소리에 그의 시선이 현관으로 이동할 것이다. ‘탈출은 이대로 실패인가?’ 계속 거실 쪽을 살핀다. 그는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부지런한 움직임을 보인다. 새벽잠은 이미 어둠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일발의 잠을 내보냈나? 타이밍을 살핀다.
주방의 분주한 소리-거대 밥솥이 활동을 시작한다-가 귓가에 맴돈다. 안방에서 무언가 찾는 낌새가 주방과 거실을 오가는 발소리로 지레 짐작한다. TV의 침묵이 깨졌고 거실은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움직임이 없다. ‘이때다’ 자신은 없지만 방문을 열고 현관 문을 연다. 소리 하나에 심장이 쪼그라 든다. 그가 들을까 발소리 조차 큰 소음이다. 신발을 신는 소리조차 그의 귓가에 다다르면 탈출은 실패다. 현관 불 센서 빛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길 바란다. 현관문이 열린다. 현관문 장신구의 소리가 요란해진다. 그가 들었을까. 이미 들리지 않아 음소거 상태가 아닐까. 최선을 다해 소리를 없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문을 닫는다.
탈출 성공! 의미 없는 탈출에 희열을 주입한다.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란 쉽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서로 소통이 안된다면
사소한 것도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선택을 하게 된다.
맞설 것인지, 그냥 회피해 버리는지 말이다.
지평선에 해가 올라오기 전, 공동의 공간에서
밖으로 마주함을 피해 버린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냥 소통을 피한다.
모든 생산적 활동이 멈추는 날,
그냥 공동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했다.
혼자만의 과민 반응이다.
내적 공간은 그대로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