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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자상함에 대하여

(그림책: 「코끼리와 나비」)

by 안은주 Dec 26. 2024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동물이 등장하여 만남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그림책은 한 편의 이솝 우화 같다.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은 짧은 동화처럼 읽히다가, 서정적인 글귀들이 시처럼 읽히면서 마지막 문장 뒤엔 산문시로 느껴진다. 시처럼 쓰인 이솝 우화에서 코끼리와 나비가 은유하는 것이 무엇이며 아름다운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여러 번 반복하여 읽게 되고 그러는 사이 생각은 점점 깊어진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코끼리가 있었어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산꼭대기 작은 집에서 혼자 사는 데다, 코끼리는 산 아래로는 한 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다. 육지에서 몸집이 가장 크고 가족단위로 서식하는 동물인데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는 설정이 무언가 의문스럽다. 긴 코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물목욕을 즐기는 습성은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이 코끼리의 유일한 행복이라니. 설핏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연상케 한다. 작은 집은 빈곤을 상징하는 것일까.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욕을 잃어버렸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가 스스로 들어갔는지, 갇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집 안에서 그나마 창을 통해 아직 세상과 단절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 그림책에서 코끼리 앞에 시종일관 따라붙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이라는 관형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지 상태의 일상을 의미한다. 험난한 산길을 올라 꼭대기 집까지 찾아 올 이도 없을뿐더러 코끼리 스스로 문을 박차고 구불구불 곧지 않은 길을 내려갈 동기도 없다. 시간이 멈춘 듯한 똑같은 나날들이 이 고립무원의 공간 안에서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다.


   여느 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코끼리의 정지된 일상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무엇인가 산길을 올라오는 움직임이 목격되고, 이 고요한 파문으로 어쩔 줄 모르던 코끼리는 움직임의 주인공이 팔랑팔랑 날갯짓하는 나비임을 확인하고는 믿기지 않는다. 설마 내 집엘 오고 있는 것일까? 긴장되면서 설렌다. 이윽고 문 앞에 도착한 나비. 반갑고 기쁘지만 코끼리는 나비의 두드림에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다. 그림책은 이 육중한 몸집의 동물이 지닌 섬세하고 여린 내면을, 방문객을 문 앞에 두고 선뜻 문을 열지도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한다. 몇 번의 두드림에야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이라는 예의 그 관형구를 빌어 자신을 밝히는 코끼리. 들어가도 되냐는 나비의 물음에 문을 열어 안으로 들이며 온몸에 행복감이 스미는 코끼리이다. 


   나비가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상의 어떤 험난한 길이라도 그 위를 날아서 가버리면 그만이다. 날개는 능력이자 미덕이다. 곧지 않은 길을 내려올 엄두가 안 나는 코끼리를 대신해 가뿐히 날아올라 그 앞에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이면서, 코끼리로 하여금 외부인을 들여 세상과 소통하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미덕이다. 상대의 힘듦 앞에 기꺼이 자신의 여건을 내어놓을 수 있고, 위축된 일상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삶의 동기로 채워줄 수 있는, 나비는 그런 용기와 친화력을 가진 존재이다. 


   코끼리와 나비가 집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온 세상에 조용하고 촉촉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단비처럼 젖어 든다. 나비의 달콤하고 촉촉한 마음의 어루만짐은 조심스럽기만 하던 코끼리가 ‘날 조금은 사랑하니?’라고 용기 내어 물을 수 있게 한다. ‘아니, 나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라는 나비의 대답이 코끼리를 더욱 자신감 있고, 자존감 높게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코끼리는 나비가 있어, 나비의 사랑에 힘입어 집 밖을 나설 용기를 얻게 되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산 아래를 내려가 보자는 제안을 먼저 한다. 나비가 곁에서 팔랑거리며 인도하니 험난함으로 가려졌던 구불구불한 산길은 달콤한 꽃향기와 지저귀는 새들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그 풍경이 새롭게 감각된다. 그리고 비가 그친 숲이 온통 따뜻함으로 넘쳐나는 ‘봄’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느껴진다. 나비와 함께하는 세상은 집 안에서 바라보던 창문 크기의 세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적적하게 외로움으로 바라보던 무미건조한 세상에 견줄 바가 아니다. 코끼리는 어제까지의 자신은 과거에 놓아두고, 현재를 즐기면서 새롭게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찾는다. ‘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널 만나러 매일 내려오고 싶어.’ 나비의 작은 날갯짓으로 시작된 고요한 파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코끼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것이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고 말한들,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랴.

 


 

   이 그림책은 미국의 시인 E. E. 커밍스(Edward Estlin Cummings)(1894-1962)가 쓴 단편 동화를 린다 볼프스그루버의 판화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글의 배경으로 시인 자신이 오랫동안 딸을 만나지 못한 개인사가 있다. 추측건대 산꼭대기 작은 집의 코끼리는 시인 본인으로 늘 창밖을 바라보며 딸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인이 딸을 만났는지, 혹은 만나지 못한 슬픔을 동화에서나마 행복한 결말로 승화시킨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림책은 ‘그렇게 코끼리와 나비는 오래오래 사랑했어요.’로 끝을 맺는다. 단순하고 다소 상투적인 결말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시인이 갈구하는 존재들 간의 관계성이 꾸밈없는 표현대로 솔직하게 전달된다. 코끼리 앞에 늘 따라붙던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이라는 어구는 코끼리의 위축된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 동시에 세상을 향한 거리두기와 소통의 욕구라는 이중성을 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건드리지 말라’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무언가 할 일을 달라.’는 외침이다. 가둠과 갇힘의 경계가 모호해진 고립의 시⦁공간 속 자신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언젠가는 벗어버리고 싶은 꼬리표이기도 하다. ‘무언가 할 일이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면 더 이상 코끼리를 설명하는 관형구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닫힌 문을 두드려 계단 아래 길을 보여 준 나비는 그래서 코끼리에겐 사랑 그 자체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시인은 이상적으로 보았다. 존재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읽는 방식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그림이 보여 주고 글이 들려주는 대로 코끼리와 나비의 사랑 이야기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 「여우와 두루미」를 읽으며, 여우는 긴 호리병 속 음식을, 두루미는 얕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이해로도 충분히 내용을 즐길 수 있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교훈이 개념화되지 않았어도 친구를 사귀는 데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림책을 분석하며 읽기보다 감상하며 읽을 것을 제안한다. 어쩌면 이 그림책은 감상적 읽기를 통해 ‘사랑’의 소중함이 더 가치 있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쓰고 나니 정도를 넘어선 생각의 깊이였나 반성이 된다. 독자의 감상이 유독 궁금해지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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