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천사의 사랑과 은총이 빼곡해질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던 어느 배고픈 저녁, 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어머니와 중학교 입학을 앞둔 나와 누이동생과 막내녀석까지 총출동시켜 동네에서 제일 그럴싸한 경양식집에 앉아 있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것도 꿈의 궁전 같던 레스토랑 비슷한 곳에서의 고급진 만찬이라니. 경양식집은 외관부터 스타일 폭발하는 어여쁜 아가씨와 멋진 수염의 신사가 칵테일 잔을 마주치는 크로키한 그림이 폼나게 그려져 있었고, 실내에는 성당에서나 볼 수 있던 품위 찬란한 그래서 조금쯤은 절로 겸손해지는 장식들과 안데르센의 동화 같은 조명들이 우리에게 마치 '어서 와, 세상엔 이런 곳도 있어' 하며 웃으며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불안한 눈빛과 어리숙한 낯빛과 들뜬 기대를 동시에 안고 들어선 우리 삼 남매는 입구에서부터 영국신사처럼 정중히 자리를 안내하는 젠틀한 웨이터 아저씨를 보며 아마도 유학 정도는 다녀왔을 것이라 생각했고 아버지가 주문을 마쳤을 때 물까지 따라주면서 요즘의 성시경 같은 목소리로 '라이스 아니면 브레드 어느 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라며 잔뜩 멋까지 부렸을 때는 그 말이 뭔지도 모르면서 유학파가 틀림없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그날따라 헛웃음까지 너그럽고 어머니는 괜히 숨겨놓은 교양이 살아나고 우리들은 조금쯤 능숙해 보이려고 티나게 애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훌륭한 식탁에서 드디어 난생처음 돈까스를 영접했다.
돈까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신비하고 범접할 수 없는 자태는 묘연한 충격과 더불어 신세계적 후각과 미각의 확장을 가져왔다.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진탕 몰려오는 첫사랑의 맛 같았다. 그 달콤하고도 새콤하며 폭신하고도 고소한 맛을 죽어도 잊지 않으리, 나중에 부자가 되면 돈까스만 먹으며 살아가리란 다짐을 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밤은 더욱 품위 있게 깊어갔다. 알뜰하게 후식으로 커피며 아이스크림까지 맛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흠뻑 단란한 눈빛을 하고 살짝 무표정으로 존엄을 지킨 가족사진까지 찍었고 액자 속에 담겨 집안에 걸리게 되었으니 그렇게 첫사랑의 각인은 그 후로도 영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 교회 전도사님이 사준 분식집에서의 제육덮밥과 순두부찌개를 먹으면서도 아, 세상에는 이런 맛들도 있구나 싶어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첫사랑을 넘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교회 문학의 밤 행사 사회를 같이 보던 여자애에게 고백 대신 마음을 표현한 것도 경양식집 돈까스였고, 최루탄에 눈물콧물 범벅인 시절에도 간혹 말쑥하게 찾아간 곳이 학교 앞 돈까스집이었으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한겨울 공사판을 전전할 때 월급을 받던 날이면 허기진 배에 통 크게 기름칠을 해주던 것도 기사식당 돈까스였다. 지금도 이따금씩 찾아가는, 일본식 돈가스 말고 조선의 경양식으로 기사식당으로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생각만 해도 아득해서 곰살맞은 웃음이 나기도 하는 옛날식 돈까스. 아슴한 추억과 소스가 복음처럼 내려앉았던 나의 그리운 돈까스 이야기다.
뭐니 뭐니 해도 돈가스보다는 돈까스,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제맛이다. 얼마 전 노트북이 절단나서 몇 달이나 써놓은 시와 산문 수십 편이 사라졌을 때 잠시 황당했지만 그것들보다는 오래전에 썼던 돈까스가 사라진 걸 알고는 무척 허탈했었다. 새로 쓴다. 글은 생판 달라졌지만 그래도 돈까스인 걸. 허클베리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맺음말이 생각난다. 이 이야기에서 어떠한 동기를 찾으려는 자는 기소될 것이다. 어떠한 교훈을 찾으려는 자는 추방될 것이다. 어떠한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