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점심을 생각하면 채 소화를 시키지도 못할 상념들이 아침밥과 저녁죽 사이에서 자못 각별하다. 그건 아침부터 시작한 하루를 잠시 내려놓고 허기를 가리며 쉬어 가는 짧은 호흡이자 사소한 즐거움이요, 저 멀리의 새참 소식 같은 반가한 허기인 것이다. 선종(禪宗)의 선승들이 수도 중에 시장기를 느낄 때 공복에 점을 찍듯 소식하는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점심을 생각하면 과연 낮에 먹는 끼니로만 축약시켜도 되는 것인지, 단지 무얼 먹을까 고민하며 내달리는 시간의 무게에 마음이 허방하다. 엽차를 마시던 마음은 어느새 황급한 숟가락질로 변하고 식탐은 여유마저 함께 먹어치웠으니, 점심이 본래 가지는 선한 본질처럼 간결한 점찍기의 명징하고 내밀한 마음공부에 대해 미안하고 불편해서 자주 명치끝이 싸해지는 것이다.
점심밥에 대하여 아련한 기억 몇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밥상이다. 어릴 적 우리집 밥상은 한쪽 귀퉁이가 조금 깨진 개다리소반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볼품이 없었으며 앙상한 다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위태롭게 흔들리던, 작고 불편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마당으로 밥상을 내던졌을 때부터 밥상은 이가 빠지고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밥상이 서둘러 고물이 된 것은 아버지의 공이 크다. 나는 그 낡고 허름한 밥상이 싫었다. 밥상을 차려놓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둘러앉으면 어머니는 앉을자리가 없어서 늘 나중에 식사를 해야 했던 것도 그렇지만, 할머니는 그 밥상 앞에서 자주 고초 당초 매운맛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불렀기 때문이다. 왜 아버지는 한 번도 어머니를 옹호하지 않았는지 어린 마음은 작은 분이 났었고 화풀이가 밥상으로 전이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는 항상 식구들 끼니를 챙기느라 분주하셨는데 어쩌면 그것이 어머니 절체절명의 사명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은 거의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풋고추 그리고 상추와 된장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에게 이보다 더 맛깔스러운 한 끼가 어디 있을까 싶어 군침이 고이지만 철이 없던 당시의 나는 먹지 않겠다고 울며 떼를 쓰기 일쑤였다. 청국장은 냄새가 나서 싫었고 고추는 매워서 상추는 맛이 없어서 싫었다. 내가 그 즐거운 놀이를 포기하면서까지 맞은 밥상인데, 세상에 이렇게 보잘것없는 반찬들이라니. 속이 상한 어머니는 나를 다독여보기도 했고 때로는 매타작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나는 고집을 한껏 부리다가 어머니의 눈이 글썽거릴 즈음에야 겨우 몇술 밥을 떴던 기억이 있다.
반찬투정을 하지 못했던 적이 있기는 하다. 부뚜막에 걸터앉아 한 가지 찬을 놓고 끼니를 채우던 어머니를 본 날, 그것도 찬물에 말아 드시는 것을 본 날. 입안의 밥을 씹으며 내내 멍한 표정으로 텃밭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하도 무심하여 어린 내가 이상하게 목이 메던 날, 나는 반찬투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아마도 할머니나 아버지 혹은 돈 때문이었으리라. 밥상을 차려 넣고 어머니가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때마다 어김없이 작은 흐느낌 같은 것이 들렸을 때, 나는 잠자코 밥을 먹어야 했다. 투정을 하던 나를 나지막이 토닥이며 먼저 맨밥만 몇 번이고 연신 입에 넣으시던 어머니 앞에서는 어린 마음에도 눈치가 보여 말없이 밥그릇을 다 비웠으니 말이다.
어머니에게 밥은 어떤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일에 대하여 짐작만 할 뿐이지만 아마도 당신에게 있어 밥이란 고단한 생을 조율하는 수단이고 탄식을 참아내는 기술이며 살이를 지탱하는 우물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언제나 그 불안한 밥상에 밥을 차려놓고 점심을 드셨다. 초라하고 군색한 자개무늬가 어머니를 비웃듯 올려다보던 낡은 밥상을 자꾸 닦고 닦아 윤이 나게 했을 정도니 밥상의 숭고함을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운밥 흰밥만 먹으면 찬이 없어도 밥이 달구먼, 하며 웃던 우리 어머니 젊은 여자였을 때의 서글픈 회억들은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새 밥상을 사 온 아버지가 낡은 밥상을 내다 버리라고 했을 때 내가 골목 어귀까지 나가 그 밥상을 씩씩대며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 일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밥 한 덩이 앞에 겸손할 줄을 안다. 모든 끼니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허기를 만나는 순간마다 억하심정과 눈물과 밥심을 버무리고 해진 마음을 기우듯 점을 찍으며 생을 건너온 것이다. 어머니들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그렇게 순정한 의미를 끼워 넣어 삶을 날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냈는데 오늘 우리는 배가 부른 나머지 숭한 욕심만을 찍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자꾸 부끄러워진다. 소태같이 쓴 입이지만 굶지 않고 밥 먹을 힘부터 내는 일, 묵묵히 밥상 앞에 앉는 생에 대한 겸손한 의식,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부박한 살이를 온전히 지탱하게 하는 선량한 점심이자 밥물처럼 흘러넘치는 뜨겁고도 거룩한 잠언이 아니냐. 우리의 아들과 딸들도 기억할, 허기마다 하나씩 남아있는 어머니의 밥알 같은 힘이자 눈물겨운 비망록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