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허름한 국밥집에 혼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계절과 상관없이 비가 부슬부슬 온다거나, 조곤조곤 무심히 흐르는 음악처럼 얌전한 저녁이거나, 뜬금없이 국밥이나 소주가 생각날 때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국밥집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식탁은 꽤 오래된 습관처럼 취향저격인 풍경이다. 남들은 이 유서 깊은 청승을 만류하는 편이지만 거기 해장국집이나 순댓국집 구석에 앉아 주인이 그냥 틀어 놓은 텔레비전을 별 감흥 없이 보거나 지난 신문들을 뒤적이며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입 두 입 넘기는 일은 생각보다 쓸쓸하지도 군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립고 그리운 일이다.
잠시 허락된 온전한 공간과 한 끼를 받아놓고 앉아있는 일은 덜커덩거리던 하루와 생각을 차분히 가다듬어 볼 수도 있어서 간혹 수도자의 식사시간처럼 조금쯤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어느 날은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고 마냥 슬플 때가 있었고 아쉬운 순간이나 되돌리고 싶은 시간도 있었을 테다. 또 어떤 날은 누군가를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턱없이 궁금해져서 전화기를 매만진다거나, 막대한 부피와 질량으로 못 견디게 그리운 날도 있던 것이다. 그런 생각과 마음들을 투정하듯 국밥 한 그릇에 말고 싶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그릇 분량의 더운 김이 모락모락 코끝을 간지럽히면 간혹 허름한 눈물이 돌 것도 같아서 피부미용을 핑계 삼아 고개를 처박는 일도 그리 창피한 것만은 아니다.
밥맛, 특히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에 대해 잠시 골똘해지는 저녁. 곽재구는 포구기행에서 혼자 먹는 밥맛을 아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면 육체 노동자라며 성찰과 노동의 고단함에 대해 말을 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예의 그 더운 김에 얼굴을 파묻고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그리고 온기와 냄새와 상념이 주는 깊고 걸쭉한 삶의 오묘한 맛을 본다. 이때 혼자라는 건 간혹 호사다. 굳이 외로움이란 명제를 대입하지 않아도 늦은 저녁 마주한 국밥 한 그릇과 몇 가지의 찬들은 자주 내 삶의 형상을 직관하게 하는 개인적인 온정의 신탁인 셈이니까.
요즘은 혼밥족을 위한 가림막 식탁도 있다던데 그런 곳은 개인적으로 낭만도 취향도 맞지 않는다. 혼자 하는 식사 특히 식당에서의 그것은 때로 조금 처량하게 보일까 눈치를 좀 보게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과 음식 냄새가 적당히 섞여있고 오가는 대화도 좀 귀동냥하면서 작은 세상의 끼니들을 맛본다는 건 짐작보다 푸근하고 든든한 일이다. 혼밥이란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혼자 먹는 밥맛에 대해 하도 떠들어서인지 정말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게 되었지만, 이런 호젓한 시간과 풍경과 밥맛은 종종 혼자만의 선물처럼 그리고 말없는 위로처럼 두 팔을 벌려 마중을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혼자 고상하게 국밥을 먹고 있는데 실제로 누가 다짜고짜 팔을 벌려 다가온다면 나는 식겁해서, 혹시 내 밥을 뺏어먹기라도 할까 싶어 서둘러 두 손으로 뚝배기부터 가리겠지만. 내 밥은 곤란해,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