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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모 Nov 04. 2024

북어해장국을 먹다가

북어에 대한 소고(小考)



위풍당당한 음주의 밤을 보내고 신장개업을 한 해장국집에 비실비실 들어선 나는 뜨거운 북어해장국을 먹다가 그만 입안을 데이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 돋는 짠한 미각의 상실, 남의 속을 풀어주기 위해 실컷 두들겨 맞고 찢어져야만 했던 북어가 오늘은 온전한 물고기 한 마리로 뱃속을 뒤집고 다닌다. 연어보다 드센 파닥임으로 어쩔 수 없는 생의 이유들을 섞어 정신없이 몸부림친다. 정갈한 요리지만 특별한 요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마른 물고기의 반란은 속만 뒤집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혀와 입천장을 온종일 매몰차게 오가며 여타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동안 이를 악물고 말라가야 했던 북어들의 뜨거운 복수극은 어쨌든 성공인 셈이다. 북어는 복수를 마쳤건만 나는 멀리 북한산을 바라볼 때마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물기가 말라 가는 입안이 내내 깔깔했다. 


북어를 생각하다 보면 매번 거룩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북어 이전의 명태는 쉽고 흔한 -지금은 귀한 몸이신- 생선이었다. 맛이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선 하나가 가지는 서민적인 사유가 우선은 그렇다. 그렇다고 지천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건사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단순한 음식 이상의 보양과 해독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명태는 원래 겨울에만 잡을 수 있던 생선이었다. 갓 잡아 요리하면 생태, 겨울철에 잡아 꽁꽁 얼리면 동태가 되고, 얼렸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 황태가 된다. 조금 더 매콤한 공을 들여 만나면 코다리, 술친구로 청하면 먹태나 황태찜, 그리고 거친 생의 이력을 종결하듯 바작바작 마르면 마침내 괭한 눈의 북어가 되는 것이다. 해장국집의 출입문 위에서, 시골집 기둥 위에서, 우리들 상념의 언저리에서 그렇다.


북어의 생명력은 기한이 없다. 사람들의 불편하고 괴로운 속을 풀어 주기 위해 뜨거운 국그릇 안을 유영하기 시작하면 북어는 짧은 순간 다시 뜨거운 생명력을 가지게 되니 이 얼마나 거룩한 회광반조(廻光反照)인가. 이 다양한 생선은 해열성 질환과 감기몸살에 좋고 소화불량에도 좋다고 한다. 또한 손발이 찬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피로 해소에도 효력이 있다고 하며 혈압조절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체내의 독소를 제거시켜 주고 간을 보호해 주는 해독성이 탁월하며, 알레르기 체질까지 바꿔준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옛사람들이 고사를 지낸 후 북어를 명주실에 매달아 놓은 이유만 보아도 성주 신앙의 세심하고 구체적인 체득의 원리가 만만치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니 과연 맛을 뛰어넘는 그 어떤 신묘함과 선량함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해 증오의 마음이 생기려 할 때나 고단한 어제와 오늘이 허탄하여 속이 거북할 때는 북어를 끓여야 하겠다. 살이의 오만가지 이유로 답답해서 혈압이 높아질 때도 그렇고 그것이 안으로 스며들어 핏줄마다 독으로 부유할 때도, 매번 어떤 서글픈 이유나 나쁜 종자 하나로 인해 온몸에 가려운 알레르기가 돋아 날 때, 우리는 그때마다 당연히 북어를 먹어야 하리라. 뜨거운 국물에 혀도 좀 데어보고 식은땀도 내가며 속이 제법 든든해지는 동안 울고 싶었던 심사에도 속풀이를 좀 할 일이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는 동안 잠시 잊을 만한 것들은 잊을 수도 있을 것이며, 더운 온기로 마음의 빙점을 융점으로 전환시키다 보면 은근한 오기 혹은 깡다구를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북어를 대할 때의 우리들은 마치 할머니의 주름진 손끝에서 통증이 사라져 가던 어린 똥배와도 같다. 작대기 대신 마른 북어로 등짝을 후려치며 매질을 하고는 문밖을 나간 아버지가 거나하게 취해 돌아와 소란하게 잠드는 오밤중의 무안함 같다. 밀린 등록금 때문에 다시 빚을 내러 다니다 늦은 저녁 빈손으로 돌아오신 어머니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내밀던 몇 푼 쌈짓돈과도 닮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은 모두 북어다. 할 말을 남겨둔 채 입을 멍하니 벌리고 하루하루 때꾼한 눈으로 말라 가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사랑도 후회도 없을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뜨거운 몸짓과 눈물이 나오는 걸 보면, 얼었다가 녹았다가 말라가기를 왕복하면서도 그렇게 오열처럼 뜨거운 생을 지탱하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들은 모두 한 마리 북어인 셈이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퍼지던 어머니와 아내의 북엇국은 그녀들의 삶과 속을 좀 터놓고 화해에 이르렀을까. 그래서 그렇게 고소하고 시원하고 순한 맛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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