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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모 Nov 11. 2024

신의 마음에 들도록 식사하는 법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서늘한 빗줄기를 보며 소슬하거나 심란하지 않은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워낙 지은 죄가 많은 탓인지 이따금씩 빗소리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을 지니게 될 때가 있다. 차라리 예전 같으면 헌 우산을 들고 주정뱅이 소란한 술집 구석에 앉아 몇 잔 술에 기분 좋게 취한 다음 느릿느릿 일어나 밥값을 치르고 카운터 옆의 우산통에서 가장 좋은 우산을 슬쩍 집어 들고 나오는 것으로 헤벌쭉했겠지만 이제 그런 일도 선뜻 내키지 않아 공연히 애꿎은 담배만 뜨겁게 태웠다. 며칠 전 허름한 국밥집을 찾는 일에 성공했던 것이 생각나 늦은 밤 젖은 몸을 불쑥 들이밀었는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때 묻은 풍경이 실내에 가득하다. 버릇처럼 비정한 도둑의 눈매로 우산통을 힐끗 보았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주인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우산 하나가 전부였다.  

              

정작 우산을 가지고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무얼 들고 나올 생각도 없었기에 술국을 하나 주문하고는 미리 내어준 밑반찬으로 서둘러 소주를 자작하던 나는 잠시 헛웃음이 나왔다. 만일 어떤 이가 있어 몽롱한 정신으로 계산을 마치고 자신의 금빛 영롱이는 새 우산을 찾는데 어떤 망할 놈이 양심도 없이 그것을 가져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남은 우산이 하나도 없어서 막상 비 내리는 거리를 맨몸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차라리 낡은 제 우산이라도 남겨 두고 가지 하는 마음이 들어 욕이라도 한 번 더 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매우 몹시 파렴치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양심적임에는 틀림없었다. 우산을 바꿔 나오면서도 보잘것없는 내 헌 우산을 마지막 유산처럼 남겨둠으로 인해 적어도 최악의 피해는 모면하게 했으니 말이다.             

  

한 병을 거의 마셨을 즈음에야 주문한 술국이 나왔는데 뚝배기는 연신 보글대며 거품을 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며 아우성이다. 더운 음식을 앞에 두자 순간 나는 조금쯤 처량해져서 퍼뜩 떨쳐 버리려는 듯 천천히 주위를 살핀다. 텔레비전 저녁뉴스를 틀어 놓고 주인 할머니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앉아 있고,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란 해바라기를 그려놓은 유채화 하나가 때에 찌든 채 근심도 없이 벽에 걸려 있다. 그 옆으론 맞춤법이 틀린 음식 이름과 앞자리만 고쳐 쓴 가격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한쪽에는 치우다 만 음식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리고 그 곁에 내가 자작을 하며 앉아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박한 내 생각이 들통날 염려도 없으며, 행여 눈치를 챈다 해도 나를 대놓고 탓하거나 혀를 찰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이 모든 어리숙한 풍경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내 단출한 음식상이 그렇다.          

      

언젠가 에픽테토스를 읽으며 많은 궁리를 했던 적이 있다. 하찮은 일에도 오래 근심하는 내 괴팍한 성격에 비추어 스토아학파의 철학들은 참으로 입맛에 맞았다. 그들이 수 세기 동안 고민하고 진통한 결과를 그렇게 책 몇 권으로 얻고자 하여 우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꿔치기하던 도둑놈 심보인 내가 작정하고 샀던 책이 바로 에픽테토스였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내 삶이 철학자들처럼 경건해지거나 욕심을 다스릴 용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갑 속의 알량한 돈 몇 푼으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신이 현실에 공존하며 평정심과 절제와 용기, 금욕 등으로 자유에 이른다고 무장한 그들의 도덕이나 관념을 밑줄만 몇 개 그으면서 왕건이만 건지고 싶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는 마치 나도 그들이 가치 없다고 주장하는 것들에 동감하고 초월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고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묘한 자신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책을 덮으면 모든 것은 한낱 꿈처럼 사라졌다. 할머니 한 병 더 주세요. 대답도 없이 술을 가지러 가는 귀찮고 졸리기만 한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보며 뜨거운 술국을 먼저 맛볼 욕심에 한껏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이런 시팔, 또 혀를 데었다. 이것을 보라. 우산 도적질을 뉘우치고 고상한 윤리와 도덕의 세계를 생각하다가도 겨우 혀가 데인 후에는 너무도 쉽게 쪼잔하고 새초롬한 인간이 되었지 않은가. 만일 내가 어떤 하루를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나를 알던 사람들은 눈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무얼 잘못 먹었는가 싶을게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 하고, 하찮고도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는 도리어 반색을 하며 귀히 여기던 그들의 무모함에 나는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사 그들도 그들의 친구나 주변의 시선에 무심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러한 관념과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그러니 뒤에서는 욕을 좀 먹었겠지만 나름 존경을 받아도 싸지. 혀가 시팔스럽게 데기는 했지만 허름한 국밥집의 관심 없는 손님으로서의 자작은 제법 알량한 운치가 있고 여유도 있으며 뚝배기는 얄밉게도 맛까지 있었다. 문을 열고 이미 얼큰한 상태의 남자 하나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낄낄대며 허름한 식당 안으로 비를 피해 들어왔다. 잠시 생각은 멈춰야 했다. 필요 이상으로 소란했으므로.     


딸이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기로 되었나 보다. 이제 술국이 식어 조금 여유를 두고 마시는데 낯선 나에게 선뜻 호의의 술잔을 건넨다. 비도 오는데 청승맞게 혼자 마시냐며 농도 건넨다. 오늘 할머니 졸음은 끝이 없다. 잠도 깨워 드릴 겸 눈치를 보며 술국을 데워 달라 한 후 남자의 생활철학을 들어야 했다. 이미 잔을 받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을 나는 모를 리가 없었다. 자기도 혼자 들어온 마당에 무슨 음식이든 혼자 먹는 건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일장연설을 한다. 혼자 음식을 먹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아니요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나는 결사반대지만 아무튼 나쁘진 않았다. 조금 전까지 내가 하던 일들은 말 없는 할머니의 등과 텔레비전을 번갈아 바라보는 일,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한 번에 털어 넣고 다시 술을 채우는 일, 그리고 보글 뚝배기에 혀가 데인 일 뿐이었으니.


장난기가 조금 돌았다. 아저씨 그럼 신의 마음에 들게 밥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역시 꽤나 취했는가 보다. 암, 알지요. 먼저 소주 한 잔 따라줘 봐요. 조물주 마음에 드는 식사는 간단해요. 식사 전에 항상 감사하고 언간하면 같이 나누어 먹을 것, 그전에 충분히 배고플 것, 음식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 푸하. 간단하단다. 드디어 할머니가 잠이 깨셨는지 버럭 하신다. 박씨, 취했어. 이제 그만 가요. 얼결에 박씨 성을 가졌다는 남자에게 풀려나 비가 내리는 거리로 나섰을 때 나는 생각했다. 신의 마음에 들도록 식사하는 법에 있어서 에픽테토스나 박씨나 누가 더 훌륭한지도 모호해졌다고. 역시 장학생 아버지의 클라쓰란. 우산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슬며시 빗줄기가 청량하다. 술김에 가벼운 참회를 한다. 우산에 대하여, 그리고 옹졸했던 내 삶의 식탁까지의 경로와 사람에 대하여.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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