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어머니와 나
무서운 꿈 때문이었어. 그 밤 슬픈 영화처럼 공허하고 허무하게 믿을 수 없는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와 잠에서 깨어났건 단지 한밤중의 꿈 때문이었어. 회복하지 못할 공복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막 젓가락질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매몰찬 배신처럼 나를 밀쳐낸 것은 바로 자장면이었어. 당혹스러웠지, 한 입도 못 먹었는데 잠시 어안이 벙벙할 만큼.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이미 파도처럼 밀려온 허기는 무장해제된 나를 순순히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따가운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볼 수밖에 없었어. 냉장고 안에는 계란과 음료수, 먹다 남은 케이크 몇 조각과 씻지 않은 과일 몇 개, 그리고 조리가 필요한 식재료와 채소들만이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갇혀 있었지. 다른 곳에는 봉지라면 같은 것도 있었지만 필요치 않았어. 무엇보다 내가 절실하게 원한 것은 바로 자장면이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오밤중에 부스럭 소리를 낼 만큼 강심장도 아니었는데 마치 구원처럼 역 근처의 24시간 우동과 자장면을 파는 심야식당을 생각해 낸 거야. 평소의 그 식당은 역 주변의 풍경처럼 대수롭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치 습격이라도 할 것 같은 심정이었지. 급하게 옷을 챙겨 입는 동안 내 마음은 벌써 역 근처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어. 누가 그곳의 자장면을 다 먹어 치웠을까 봐 조바심도 났을 거야. 서둘러 도착한 식당에는 금요일 밤이어서인지 불금을 마무리하는 식객들이 제법 있었고 나는 자리에 안기도 전에 자장면을 곱빼기로 주문하고는 약간의 정신이 돌아온 모습으로 구석의 빈자리를 찾아들었지. 억겁과도 같던 짧은 시간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자장면. 흑마술 같은 향기와 맛에 취해 정신없이 반쯤 먹다 보니 식당 안에 흐르는 요즘 노래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나는 세상이 조금쯤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슬그머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습격을 떠올리고 있었어.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이지 백 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지. 허무할 정도로 배가 고팠던 두 남자가 식칼을 들고 빵가게를 습격했지만 주인이 저주 대신 조건으로 내민 바그너를 들으며 빵을 먹게 된다는 다소 만화적인 상상력과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야릇한 포만감마저 안겨 주었으니까. 그때의 빵집 주인은 아마도 중증의 바그네리안이 아니었을까 싶어. 물론 바그너나 브람스가 최고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하여튼 이 습격자가 나중에 아내와 함께 또다시 햄버거 가게를 터는 빵가게 재습격까지 잠시 호젓한 기분도 났지만 그건 잠시 아련한 기억을 소환했던 것이고 어쨌든 그때의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하루키마저도 이 밤에 날 위해 마법처럼 자장면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을 거라고 질끈 눈을 감으며 지극히 자조적인 결론에 이르렀어.
천천히 배가 차면서부터는 지오디의 노랫말과 어머니도 생각났어. 초등학교 다닐 적의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십중팔구 돈이 없어서가 맞겠지만 어쨌든 매일같이 날마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는 걸 말한 적이 있었나? 언젠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자장면을 사주겠다던 말에 몇 번이나 그 약속에 대한 다짐을 받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설마하니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악착같이 상장을 받고 집에 오던 날 드디어 중국집에 데리고 가셨는데 자장면을 달랑 한 그릇만 시키셨어. 가난한 우리 엄마가 자식이라도 먹이려고,하는 서글픔에 작고 어린 마음에도 신경이 쓰였는지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었지. 확인이라도 하듯 기어들어가는 모기 목소리로 한 그릇만 시킨 이유를 물었을 때,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역시 그렇구나 싶어 마음은 잠시 겨울 강가에 서있었지만 작은 주둥아리는 이내 바빠졌어. 달콤한 자장면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으니까.
우수상 같은 걸 타오는 날이 잦아지자 자장면은 어느새 최우수상에 한정됐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어. 어떤 날에는 내 시상식에 동생들을 데려가기도 했는데 두 그릇을 시켜주고는 나누어 먹으라 하셨지. 어머니는 여전히 자장면이 싫다며 물만 드시는 걸 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의젓하게 배가 부르다며 얼마쯤은 꼭 남겼는데 눈치 없는 동생 놈들은 그것까지 가져가 홀라당 처먹었어. 아마 집에 가서 내게 먼지 나게 맞는 것이 두렵지도 않았나 봐. 어쩌면 어머니에게 자장면은 마땅히 집어 갈 생선대가리 같은 것이 없는 음식이었나 싶었어. 이게 젤로 맛난 거여,라며 손으로 생선대가리를 잡아가던 밥상에는 그것을 빼고도 먹을만한 게 제법 있었던 탓에 우린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결국 모든 밥상을 차리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젓가락이 가던 어머니의 음식들은 너무도 볼품없는 나머지뿐이었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거야.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자장면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어.
곱빼기는 양이 너무 많았나 봐. 특히 심야식당에서의, 그야말로 생각들이 잔뜩 섞인 곱빼기는 아무리 자장면이라도 혼자서는 무리였어. 극심한 허기와 공복감은 욕심과도 한패여서 어떤 날의 과도한 자신감이라든지 오기나 착시 같은 것들을 불러오기도 했어. 하루키나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빵가게를 습격하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게 만들고 생선대가리 같은 나머지 것들에 젖은 손이 갔던 걸까. 혼자 자장면을 먹던 그 밤은 어쩌면 공복으로 지새우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나중에 정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정말로 자장면을 싫어하셨어. 물론 굳이 자장면이 아니더라도 울 일이 넘쳐났던 것도 가난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고집스런 입맛도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귀한 자장면을 억지로 남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텐데...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물론 먹을거리가 없어서 생긴다. 먹을 것은 왜 없는가?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는가? 아마도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공복감은 그저 상상력의 부족에서 곧바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