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_3화

신부의 방패

by 돈미새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는 길, 경주 인근의 산세는 지독하게 험했다. 잔당들이 민가에 숨어들어 식량을 축낸다는 첩보가 있었다. 명령은 짧았다. '불순분자는 현장에서 처단한다.'


나는 여전히 대구에서 가져온 모르핀 기운에 절어 있었다. 내 손엔 선임의 피가 묻었던 수첩이 들려 있었고, 머릿속엔 여전히 탄약과 식량 수치만 날뛰고 있었다. 적을 돕는 주민들은 내게 분노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그저 '제거해야 할 변수'였다.


마을 끝자락, 외딴 민가의 사리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섰을 때 방 안엔 앳된 남자 하나와 그 곁을 지키는 여자가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M1 소총을 신랑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숨어 있는 놈 어디 있어.”


사실 내 안엔 지독한 불안이 있었다. 벽장 뒤에서 칼이 튀어나오진 않을지, 저 꼬마 신랑이 수류탄을 품고 있진 않을지. 나는 그 공포를 가리기 위해 더 폭력적으로 굴었다. 거창에서 그랬듯, 이들을 장부상의 오차로 처리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었다. 죽음은 찰나고 보고서는 짧을 것이었다.


그때 신부가 비명을 지르며 총구 앞을 가로막았다.


“죽이려거든 나를 먼저 죽이시오!”


미친 짓이었다. 총구 앞에서는 누구나 비굴해지거나 도망치는 것이 내가 봐온 전쟁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의 눈은 광기에 가까울 만큼 결연했다.


순간, 품속에 넣어둔 어머니의 편지가 가슴팍을 찌르는 것 같았다. 글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남의 손을 빌려 적은 그 '살아 있어라'라는 문장과, 지금 내 앞을 막아선 여자의 절규가 기묘하게 충돌했다. 내 안의 살상 공식이 삐걱거렸다. 제 목숨을 던져 남을 살리겠다는 이 비효율적인 행위는 내 장부법으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오류였다.


“아이씨, 비켜! 안 꺼져? 씨발, 죽고 싶어서 이래? 야, 꺼지라고!”


나는 쉰 소리를 내지르며 총구를 거칠게 휘둘렀다. 신부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살려준 게 아니었다. 그 지독한 온기에 내 비정함이 전염될까 봐 도망친 것에 가까웠다.


부대로 복귀하는 며칠 동안, 나는 그 장면을 반복해서 씹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뿌듯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상했다'.


전쟁터에서 인간의 감정은 이미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였다. 거창의 골짜기에서, 그리고 대구의 사창가에서 내 안의 온기는 진작에 증발했다. 나는 스스로를 전쟁이 만들어낸 고장 난 기계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여자의 무모함이 내 논리를 비웃고 있었다.


가족이란 게 대체 뭐길래.


내 몸속에 아직도 그런 걸 보고 멈칫할 만한 불순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나보다 소중한 타인을 위해 죽음 앞에 서는 행위는, 내가 배워온 생존 법칙으로는 해석 불가능한 괴상한 현상이었다. 갓 결혼한 신랑과 신부. 아직 제대로 된 가족도 아닐 텐데, 왜 제 목숨을 먼저 챙기지 않았을까.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보며 나는 그 낯선 감각을 곱씹었다. 감동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그 여자의 눈빛과, 총구를 피하지 않던 그 기이한 공기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것은 일종의 오작동이었다. 평생 이 질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 거대한 비논리가, 내가 쌓아 올린 비정한 성벽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진짜 이상해...”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신호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만든 완벽한 사냥꾼의 세계에 아주 작고 기분 나쁜 균열이 생겼을 뿐이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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