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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50_검은 판사 조막손

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잠시 시간이 흘렀다.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김정선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슬픔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하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감을 느낀 유강인은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 떠올랐다. 그가 말했다.


“김정선씨, 피해자 시신 옆에 MP3 플레이어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플레이어에서 J 앙상블이 편곡, 작곡한 캐논 변주곡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반복 재생 기능이 켜져 있었습니다.

정황상 범인이 그 음악을 재생한 거 같습니다. 혹 이와 관련해서 아는 사실이 있나요?”


그 말을 듣고 김정선이 급히 답했다. 무척 놀란 눈치였다.


“네에? …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요? 그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 그, 그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김정선은 아는 게 있었다. 그걸 들어야 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김정선씨, 아는 게 있으면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현재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요. 사안이 무척 시급합니다. 서둘러 행동해야 합니다.”


“연, 연쇄 살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원한을 품은 자들이 무자비한 복수를 하고 있어요.”


“헉!”


매우 놀라는 목소리가 또 들렸다. 김정선이 당황한 게 분명했다.


유강인은 김정선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김정선씨, 아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현재 원한과 관련된 자들이 매우 위험합니다.

직접 원한을 사지 않았더라도, 사건에 관련됐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범인의 타깃이 될 수 있어요.”


“아, 그, 그러면 안 되는데 …. 이를 어째!”


김정선이 안절부절못했다.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계속 주저했다.


그녀가 계속 머뭇거리자, 유강인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김정선씨, 어서 말해주세요. 사안이 시급합니다. 범인이 다른 타깃을 노릴 겁니다. 그 타깃을 지금 당장 보호해야 합니다.”


“아, 아이고 ….”


김정선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성대에 경련이 일어난 거 같았다. 그러다 간신히 진정하고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조막손이랑 … 관련이 있어요.”


난데없이 조막손이 튀어나왔다.


조막손은 손가락이 없거나 손가락이 오그라져 펴지 못하는 손을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거나 장애를 입은 손이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조막손이라고요?”


“네, 그래요.”


김정선이 힘들게 답하고 과거에 있었던 참담한 일을 설명했다. 목소리에 후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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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막손! 이걸 네가 썼다고? 어디에서 뻥을 치고 있어. 넌 우리가 우습게 보이지? 우리가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거 같아.”


“맞아. 조막손이 거짓말도 참 잘하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 앙큼한 것!”


소녀 넷이 한 소녀를 에워싸더니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시작했다.


욕을 먹는 소녀는 키가 작고 아담했다. 손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양손이 조막손이었다. 왼손은 완전히 오그라들었고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만 겨우 펼 수 있었다.


조막손을 둘러싼 소녀들은 모두 키가 컸다. 그중에서 키가 가장 큰 소녀가 조막손에게 말했다. 조막손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소녀였다.


“야, 내놔. 악보 어서 내놔!”


그러자 조막손이라 불리는 소녀가 저항했다.


“안 돼. 이건 내가 쓴 악보야!”


“이게 진짜! 거짓말하지 마!”


네 소녀가 화를 벌컥 냈다. 키 큰 소녀가 조막손이 힘들게 쥐고 있는 악보로 꽉 잡았다.


조막손은 악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을 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로만 악보를 잡고 있었다.


키 큰 소녀가 악보를 빼앗아갔다. 그러자 조막손이 풀썩 주저앉았다.


소녀들이 빼앗은 악보를 자세히 살폈다. 1분 후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도나도 말했다.


“거짓말!”


“네가 이 악보를 썼다고 그걸 우리보고 믿으라고? 차라리 귀신을 속여!”


조막손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조막손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오그라져 펼 수 없는 두 손으로 귀를 꼭 막았다. 그녀를 힐난하는 소리는 그녀에게 비수와 같았다.


조막손의 두 눈에서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콸콸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 소녀의 말이 철저히 부정당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와 함께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 마! 태리를 괴롭히지 마!”


한 소녀가 조막손을 항해 달려왔다.


“정선아.”


소녀들이 달려오는 소녀를 알아봤다. 달려오는 소녀는 김정선이었다.


김정선이 달려오자, 조막손을 에워싼 소녀들이 뒤로 물러섰다.


김정선이 한 무릎을 꿇고 앉더니 쓰러져 있는 조막손을 꼭 끌어 안아줬다. 그러자 조막손을 힐난하던 소녀들이 한마디씩 했다.


“정선야. 너는 조막손을 감싸고 돌더라. 쟤는 아주 못된 애야. 거짓말을 아주 밥 먹듯이 해. 자기가 이 악보를 썼대.

파헬벨 캐논을 새로 작곡하고 편곡했대. 새빨간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하더라고!

이게 말이 돼. 애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어? 그건 모차르트 같은 천재나 가능한 일이야.

조막손은 기악부에 들어온 지 석 달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 이 악보를 썼다고? 이건 가능한 일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쓴 걸 그대로 빼긴 게 분명해. 그래놓고 자기가 썼다고 우기는 거야.”


“뭐? 정말 태리가 그렇게 말했어.”


김정선이 깜짝 놀랐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조막손이 썼다는 악보를 살폈다.


김정선이 잠시 악보를 보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조막손에게 말했다.


“태리야. 왜 그랬어?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뭐? 너마저?”


조막손이 그 소리를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유일하게 자기를 감싸둔 친구마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조막손이 크게 외쳤다.


“이건 내가 쓴 악보가 맞아. 내가 파헬벨 캐논 악보를 보고 새로 작곡하고 편곡한 거야. 내가 쓴 악보라고!”


“어떻게 네가 이런 악보를 써. 거짓말하지 마! 넌 … 천재가 아니잖아.”


다른 소녀와 달리 조막손을 안아줬던 김정선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조막손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섯 소녀가 모두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막손의 말을 철저히 부정했다. 조막손이 직접 이 악보를 썼다는 말을 아예 믿지 않았다.


모두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쓴 거야. 내가 쓴 악보라고!”


“거짓말!”


“진짜 내가 쓴 악보라고!”


“거짓말!!”


“너는 그런 능력이 없어! 다른 사람이 쓴 거 양심 없이 빼긴 거겠지.”


“아예 귀신을 속여라. 우리는 못 속여. 어떻게 네가 이런 곡을 작곡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네가 실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였던 거야? 네가 모차르트면 나는 바흐야.”


“나는 차이콥스키야!”


“나는 쇼팽 해야겠네.”


“악!”


조막손이 크게 소리 질렀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가 발소리와 함께 들렸다.


그 모습을 다섯 소녀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중에서 조막손을 도와줬던 소녀, 김정선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태리야, 왜 거짓말을 해. 너답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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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막손 태리가 큰 상처를 받았어요.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 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난 일이었어요.”


“헉!”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마의 땀샘이 순식간에 열렸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땀이 모여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탐정님, 땀이 ….”


그 모습을 보고 황수지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유강인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어릴 적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자가 등장했다. 그는 조막손이었다.


김정선이 말했다.


“그때 제가 싸움을 말렸지만, 저도 태리가 그 악보를 썼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태리는 그날 이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조막손의 이름이 태리인가요?”


“네, 걔 이름이 김태리예요. 태어날 때부터 손이 기형이었어요. 그래서 별명이 조막손이었어요.

태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기악부에 가입했는데 손 때문에 따돌림의 대상이었죠. 저는 걔가 불쌍해서 챙겨줬어요.

태리가 손이 불편해 악기 연주가 힘들다며 하소연했어요. 그래서 작곡한다고 했을 때 모두 비웃었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릴 적 입은 마음의 상처는 성인이 돼도 치유할 수 없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김태리가 썼다는 악보를 빼앗은 게 확실하죠?”


“맞아요. 그때 친구들이 못된 짓을 했어요. 저도 옆에 있었고요.”


“그 악보는 어떻게 됐죠?”


“그게 ….”


김정선이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강인이 불길함을 느꼈다. 시신 옆에서 울려 퍼졌던 악보는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었다. 정황상 조막손이 쓴 악보로 연주한 거 같았다.


남한테 빼앗은 악보로 연주했다면 이건 절도였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기 것인 양 발표했다면 표절이었다.


유강인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말해주세요!”


“휴우~!”


김정선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뭔가를 후회하는 거 같았다. 그녀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친구들과 함께 J 앙상블을 결성했을 때 술집에서 축하 파티를 했어요.

J 앙상블은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기악부 부원이 다시 모여서 만들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났죠. 모두 다섯이었어요.”


“다섯이 조막손의 말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인가요?”


“맞아요. 그 다섯이에요. J 앙상블 축하 파티 때 미희가 말했어요. 조막손의 악보로 녹음하자고 제안했어요.

미희는 조막손을 쓰러트리고 악보를 빼앗은 아이예요.”


“미희라면 죽은 피해자 이름인데, 피해자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미희는 오랫동안 조막손의 악보를 갖고 있었어요.

걔가 말했어요. 곡이 너무나도 좋다고 감탄했어요. 그건 맞는 말이었어요. 그 곡은 정말 훌륭했어요. 캐논을 멋지게 변주했어요.

아주 신이 나는 행진곡풍 캐논이었어요.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변주곡이었어요.

모두 그 악보가 너무나 좋아서 탐이 났어요. 그 곡으로 연주하면 대박이 날 거 같았어요.

캐논 변주곡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곡이라 욕심이 눈을 가렸어요.

그래서 조막손의 악보로 연습하고 연주를 녹음했어요.”


“그 곡이 바로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인가요?”


“맞아요.”


“그 음악이 대히트했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그것도 맞아요. 그래서 J 앙상블이 유명한 현악 5중주가 됐어요. 덕분에 유명 인사가 됐어요.

외국 팬들도 많이 생겼어요. 해외 공연도 여러 번 다녀왔어요. 그 영상도 유튜브에 올렸어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그, 그렇다면 ….”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검은 판사는 원한에 사무친 자였다.


조막손이 그 악보 원작자가 아니라면 원한에 사무칠 리 없었다.


오늘 시신으로 발견된 이미희는 조막손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그녀의 악보를 강탈했다.


결국, 그 악보는 조막손이 쓴 게 맞았다.


조막손은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 원저작자였다.


조막손이 바로 검은 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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