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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52_위태로운 J 앙상블

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그렇다면 놈들이 음악의 궁전으로 모이는 겁니다.

J 앙상블 멤버인 이미희가 중학교 때 김태리를 괴롭히고 그 사람의 악보를 빼앗았습니다. 당시 여러 사람이 함께 김태리를 괴롭혔습니다.

김태리가 그때 당했던 일을 이제 분풀이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가해자인 이미희가 죽은 거 같습니다.”


“뭐라고? 어릴 적 당했던 일을 복수하는 거라고?”


“정황상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강력범죄수사대 전체가 음악의 궁전으로 출동해야 합니다.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검은 판사들이 J 앙상블의 다른 멤버들도 해칠 겁니다.”


“뭐? 추가 범행이 있다는 거야?”


“100퍼센트라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J 앙상블의 나머지 멤버들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황과 추리만 갖고 수사대 전체가 움직일 수는 없는데 ….”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음악의 궁전으로 당장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 … 대장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달려가야지. 수사대를 다 동원할게.

그런데 음악의 궁전은 무척 큰 시설이야. 예전에 가본 적이 있어.

음악의 궁전 전체를 봉쇄하려면 엄청난 인력이 필요해. 그건 가능할 거 같지 않은데 … 이를 어떡하지?”


“일단 음악의 궁전에 모였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행동하면 됩니다.”


“알았어. 그리하지. 내가 팀장님께 대장 뜻을 전할게. 수사대 전체가 이동해야 한다고 보고할게.”


“네, 수고해주세요. … 아! 우선배님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김태리를 찾아가세요.”


“누구?”


“김태리는 J 앙상블에 원한을 품은 사람입니다. 검은 판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 김태리.”


“김태리는 이미희 친구인 김정선씨가 잘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그 중학교에 김태리 정보가 있을 겁니다. 정형사한테 도움을 받으세요.”


“알았어.”


“네, 수고하세요.”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내려 손목시계를 봤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 20분이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탐정단 밴은 강남을 향해 숨 가쁘게 내달렸다.


차바퀴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위험 경고가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5분 후 탐정단 밴이 한강 다리 근처에 도착했다. 강력반 밴이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교통 상황은 수월한 편이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정황상 놈들이 J 앙상블을 덮칠 가능성이 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은성, 연순호 둘 다 사라졌다는 점에서 조만간인 거 같아. 행방이 묘연한 한종수도 음악의 궁전으로 올 거야.

이번에도 어김없이 교차 살인이겠지. 김태리는 가만히 있을 거야. 다른 검은 판사들이 움직일 거야.’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침을 꿀컥 삼켰다. 긴장감이 타오르자 목이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그가 물병을 찾았다.


“정수, 물이 어디에 있지?”


“여기에 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황정수가 물병을 건넸다.


유강인이 물병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게 생수 500ml를 다 마셨을 때 귓가에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신 옆에서 들었던 음악이었다. 환청이었다.



딴~ 딴~ 딴~ 딴~ 딴~ 딴~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었다. 이 곡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캐논!”


유강인이 캐논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은 시신 옆에서 울려 퍼졌다. 그 점이 심상치 않았다.


검은 판사, 조막손 김태리는 작곡가였다. 그것도 자신이 천재인 줄 몰랐던 비운의 작곡가였다.


그런 그녀가 커다란 앙심을 품었다. 그 앙심이 이십 년 전 처음 작곡했던 캐논 변주곡과 함께 울려 퍼졌다.


캐논은 분명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유강인이 핸드폰을 들었다. 김정선에게 전화했다. 김정선이 바로 전화 받았다.


“네, 여보세요.”


“김정선씨, 탐정 유강인입니다.”


“야, 유탐정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어서 말씀하세요.”


“조막손 김태리가 만든 캐논 변주곡은 … 어떤 곡이죠?”


“네에?”


김정선이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이미희 시신 옆에서 캐논 변주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캐논 변주곡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 곡이 어떤 곡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김정선이 잠시 생각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태리가 쓴 곡은 파헬벨 캐논의 기본 코드를 따르면서 행진곡풍으로 바꿨어요.”


“기본 코드라고요?”


“네, 파헬벨 캐논은 돌림노래에요. 그래서 코드가 반복돼요. 코드는 화음이에요.”


“코드가 어떻게 반복되죠?”


“1도, 5도, 6도, 3도, 4도, 1도, 2도, 5도 한 세트예요. 한 세트가 끝나면 처음으로 돌아가요.”


“1도, 5도가 뭘 뜻하죠?”


“화음에서 도는 쉽게 말해 안정과 긴장, 불안을 뜻해요. 1도가 가장 안정적이에요. 1도와 비슷한 게 3도와 6도에요. 1도 다음으로 안정적인 게 6도고 다음이 3도에요.

4도와 2도는 긴장과 같아요. 4도가 가장 긴장감이 높고 2도는 다음이에요.

5도는 가장 불안한 화음이에요.

그렇게 화음은 안정과 긴장, 불안을 반복하며 멜로디를 보조하고 곡을 풍부하게 만들어요.”


“아, 그런 거군요.”


“그런데 태리의 곡은 다른 캐논 변주곡과 다른 점이 있었어요.

원곡 캐논은 한 마디에 화음을 두 개씩 썼어요. 그런데 태리의 곡은 한 마디에 화음을 하나만 썼어요.

그게 큰 차이점이었어요. 그렇게 변형해서 행진곡풍을 만들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경찰이 집 앞에 있어요. 저는 괜찮은 거죠?”


“김정선씨는 경찰이 지키고 있으니 안전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돼서 J 앙상블 멤버들한테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요.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그건 음악의 궁전에 가봐야 알 거 같습니다. 마지막 연습을 하느라 전화를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마지막 연습할 때는 어느 때보다 집중하거든요.”


“지금 한강을 건너서 반포구에 도착했습니다. 좀 있으면 음악의 궁전에 도착할 겁니다.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유탐정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차창 밖을 다시 살폈다.


여기는 강남 반포구다. 반포구는 한강 다리를 지나면 바로였다. 음악의 궁전은 반포구에 있었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속도를 높였다. 어서 빨리 음악의 궁전에 가야 했다.


10분 후


저 앞에 음악의 궁전이 보였다. 커다란 건물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음악의 궁전은 넓은 지상 주차장이 있는 거대한 8층 건물이었다. 계단식 피라미드처럼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졌다.


3층부터는 외벽에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지상 주차장이 한산했다. 지금은 오후였다. 공연은 통상적으로 저녁부터 있었다. 그래서 방문객이 별로 없었다.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유강인이 차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그가 사방을 살폈다.


저 앞에 순찰차 두 대가 보였다. 반포 경찰서에 급파한 경찰차였다. 경찰차 옆에 경찰 네 명이 서 있었다.


반포 경찰서는 유강인의 지시에 따라 음악의 궁전 관리팀에 협조를 구했다.


“저기군.”


유강인이 급히 순찰차로 달려갔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 후배 형사 둘이 따랐다.


급한 발소리가 들리자, 순찰차 경찰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중의 하나가 유강인을 알아보고 동료에게 말했다.


“저기 유강인 탐정님이 오시네요.”


“우리로 뛰어가자고.”


출동 경찰들도 유강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출동한 경찰과 만났다. 그가 급히 말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음악의 궁전 안에도 경찰이 있나요?”


출동 경찰 중 선임 경찰이 답했다.


“네, 경찰 다섯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뮤지엄 앞과 출입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5분 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별일 없다는 보고입니다.”


“그렇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네.”


유강인과 조수 둘, 경찰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주차장을 지나 음악의 궁전 출입문으로 향했다.


출입문이 열리자, 넓은 로비가 보였다.


유강인이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살폈다.


공연장답게 로비가 무척이나 넓었다. 음악의 궁전은 유명한 공연장이었다. 첨단 시설과 넓은 부지를 자랑했다.


“음!”


잠시 로비를 살피던 유강인이 출동 경찰에게 말했다.


“지금 뮤지엄으로 가야 합니다. 뮤지엄을 감시하는 경찰은 어디에 있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감시 경찰한테 연락하겠습니다.”


선임 경찰이 말을 마치고 뮤지엄을 감시하는 경찰에게 연락했다.


“유강인 탐정님이 오셨어. 어서 와.”


“알겠습니다.”


1분 후 로비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경찰 둘이 헐레벌떡 유강인을 향해 달려왔다.


경찰 하나가 급한 숨을 내쉬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J 앙상블이 공연하는 뮤지엄은 저쪽에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경관님,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 보셨나요?”


뮤지엄을 감시하던 경찰이 답했다.


“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살펴봤습니다. 연주자들이 연습 중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연습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판사들 보다 먼저 뮤지엄에 도착한 거 같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비극이 생길 게 뻔했다.


1분 후 로비에서 울리던 발소리가 멈췄다.


유강인과 조수 둘, 정찬우 형사, 경찰들이 뮤지엄 출입문 앞에 섰다.


유강인이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근처에 사람이 없었다.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때 출입문에서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들렸다. 뮤지엄 안에서 연주하는 게 분명했다.


“좋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걸음을 옮겼다. 출입문으로 걸어가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음악이 크게 들렸다.


현악 4중주가 피아노와 함께 마지막 연습 중이었다.


J 앙상블은 오늘 저녁 송년의 밤 콘서트가 있었다. 마지막 리허설 중이었다.


악단은 총 다섯이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넷과 피아니스트 한 명이었다. 피아노 5중주였다.


바이올린, 비올라가 멜로디를 연주했다. 첼로가 화음을 넣었다. 피아노는 반주했다.


애절한 음악이었다. 송년의 밤을 기리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별의 정으로 알려졌다. 애국가의 곡조로도 쓰였던 곡이었다.


유강인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별 노래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관객석을 지나 무대로 향했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가 따랐다. 나머지는 거리를 두고 유강인을 따라갔다.


1층 뮤지엄은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공연장이었다.


J 앙상블은 캐논 변주곡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이 되었다. 그래서 1,000석이 넘는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음악의 궁정은 티켓값이 비싸기로 유명했다. 유명하지 않으면 공연할 수 없는 곳이었다.


신생 악단, J 앙상블은 초창기에 무명이었지만, 조막손 김태리의 캐논 변주곡 덕분에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넓은 곳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유강인이 천천히 걸으며 사방을 살폈다. 그렇게 혹시 모를 위험이 있나 살폈다.


그가 무대 20m 앞까지 걸어갔을 때


계속 울리던 음악 소리가 끊겼다.


악단이 연주를 멈췄다. 그들이 악기에서 손을 떼고 무대로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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