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공연장에 어색함과 함께 초조함이 감돌았다.
재깍재깍! 초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거 같기도 했다.
유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한 연주자가 동료에게 말했다.
“누구지?”
“여러분, 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세요? … 어, 뒤에 사람들이 더 있네.”
“다 모르는 사람들 같아요. 여기 관리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죠? 이렇게 시설을 관리해도 되는 건가요?
비싼 돈을 주고 대여했는데 영 아니네요.”
연주자들이 웅성거렸다.
연주자들 말대로 음악의 궁전 관리자는 공연장 안에 보이지 않았다.
음악의 궁전 관리팀은 현재 주차장에 모여 있었다. 서울청의 요청을 받고 그 권한을 넘겼다. 대테러 전문가의 지시를 받는 중이었다.
지시가 끝나면 음악의 궁전 전체를 폐쇄할 예정이었다. 한시적인 조치였다.
오늘 오후 3시 30부터 시설의 안전과 인명 보호는 경찰의 책임이었다.
“저기요. 연습을 방해하면 안 돼요. 나가주세요!”
객원 피아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인상을 찌푸렸다. 낯선 자들이 연주를 방해하자, 뿔이 난 거 같았다.
그들은 저녁에 중요한 연주가 있었다. 고액의 티켓이 다 팔린 정도로 J 앙상블은 인기는 좋았다. 그만큼 좋은 공연을 펼쳐야 했다. 그에 따른 부담감도 상당했다.
“오늘따라 대체 왜 이러지? … 미희도 오지 않고 있어.”
“맞아, 미희가 왜 이리 늦을까? 연습에 늦을 애가 아닌데 … 우리 중에서 연습에 가장 진심이잖아.”
연주자들이 비어있는 자리를 보고 말했다. J 앙상블은 현악 5중주로 멤버가 다섯이었다. 그런데 현재 4중주였다. 자리 하나가 비었다.
그 자리는 우인봉 광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바이올리니스트 이미희의 자리였다.
그들은 이미희가 죽을 줄 모르고 있었다.
연주자들은 이미희가 오지 않자 불안했다. 하지만 공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미희가 곧 올 거로 믿고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등장했다. 기다리던 이미희가 아니라 낯선 자가 난데없이 등장했다.
낯선 자가 등장하자, 연주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아니라 당혹감이 울려 퍼지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연주자들한테 사정을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네? 누구라고요?”
연주자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유강인을 내려다봤다.
유강인이 말을 이으려고 했을 때,
바로 그때!
딴~ 딴~ 딴~ 딴~ 딴~ 딴~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뭔 소리지?”
연주자들이 급히 사방을 둘러봤다. 난데없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누가 연주하고 있어?”
“아니, 그런 사람은 없는데.”
연주자 중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딴~ 딴~ 딴~ 딴~ 딴~ 딴~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 울려 퍼졌다. 경쾌한 음악이 공연장에 가득 채웠다.
“헉!”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시 핏빛 장송곡이 들렸다.
“젠장! 늦었구나!”
유강인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했을 때
팟!
공연장 불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고 말았다.
“아! 큰일이다!”
유강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순식간에 검은 장막이 공연장에 드리워졌다. 한 치 앞이 아니라 1mm 앞도 볼 수 없는 아주 진하고 깊은 어둠이었다.
모든 게 새까맸다. 갑자기 불이 꺼지자, 눈이 적응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순수한 검정이었다. 퓨어 블랙(Pure Black)이었다.
모두 눈뜬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 이런!”
유강인이 블랙홀 같은 어둠 속에서도 급히 움직였다.
갑자기 불이 꺼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숨어있던 검은 판사가 움직인 게 분명했다.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은 그들의 입장곡과 같았다.
다 다 딴 따 단 ~ 다 다 딴 따 단 ~
행진곡풍 캐논이 경쾌함을 더했고
핏빛 장송곡이 서늘함을 더했다.
“아이고!”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유강인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가 발을 헛디디고 넘어지고 말았다. 쿵! 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강인이 바닥을 굴렀다. 깊은 어둠이 그의 발목을 콱 잡았다.
“아야! 젠장.”
유강인이 아픈 무릎을 참고 일어났을 때
우당탕!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서둘러 움직이는 거 같았다.
“악!”
그리고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으악! 이러지 말아요!”
“억!”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어둠 속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어둠 속 아비규환이었다. 두려움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또 다른 검은 폭풍이었다.
“아! 이것들이 왔구나!”
유강인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급해지자, 무릎이 아픈 것도 싹 잊어버렸다.
무대에 검은 판사들이 난입한 게 분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무대로 달려가야 했다.
“대체 무대가 어디에 있는 거지?”
유강인이 꼼짝도 못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무대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안돼! 악!”
비명이 또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급히 움직였다. 그러다 객석에 쾅! 부딪히고 말았다.
“젠장.”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급히 외쳤다.
“출입문을 열어! 어서!!”
그 소리가 공연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알겠습니다!”
출동 경찰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급하게 뛰는 발소리가 들렸다.
출동 경찰이 깊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잘 잡고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밤눈이 밝은 경찰이었다.
이윽고
텅!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커다란 문이 열리자, 로비를 훤히 비추던 빛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레이저를 쏘는 거 같았다.
거대한 빛줄기가 무대를 비췄다. 무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했다.
칠흑 같던 무대가 빛줄기 속에서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야간 투시경을 쓴 둘이 세 명을 끌고 가고 있었다. 끌려가는 셋은 J 앙상블 창립 단원이었다. 단원들 손목에 끈이 보였다. 손목을 묶은 끈이었다.
블랙맨 둘이 공연장, 뮤지엄에 난입했다. 공연장 불을 끄고 무대에 쳐들어갔다. 바로 검은 판사들이었다.
그들은 검은 후드, 검은 코트, 검은 바지, 검은 장갑, 검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객원 첼리스트와 객원 피아니스트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칼에 맞은 듯했다. 그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살려주세요!”
“헉!”
유강인이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장 막아야 했다.
유강인이 재빨리 몸을 흔들었다. 그렇게 돌덩이처럼 굳은 몸을 풀었다. 몸이 풀리자,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잡아라!! 검은 판사가 다시 나타났다!”
쿵쾅!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검은 판사들이 무대를 가로질렀다. 왼쪽 구석에 있는 비상문으로 달려갔다. J 앙상블 단원 셋도 속절없이 끌려갔다.
비상문 앞에서 쿵! 하며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야간 투시경 두 개가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유강인과 정찬우 형사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출동 경찰들이 따랐다.
큰 소리가 들리자, 로비에 있던 경찰들이 급히 사방을 살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때 공연장, 뮤지엄 비상문이 활짝 열렸다. 검은 판사들이 J 앙상블 단원 셋을 끌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어? 저자들은!”
출동 경찰 둘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뒤이어
유강인과 정찬우 형사도 비상문에서 나왔다. 저 앞에 검은 판사들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이었다.
로비를 지키던 경찰 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검은 판사와 대치했을 때
갑자기 다른 검은 판사가 뛰어나왔다. 엘리베이터 옆 통로에서 튀어나왔다. 키가 작고 왜소한 검은 판사였다. 양손에 가스총이 있었다. 검지가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펑! 펑!
가스총이 연달아 발사됐다.
“악!”
출동한 경찰들이 얼굴에 가스총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검은 판사 하나가 밧줄을 꺼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우리는 검은 판사다. 악을 처단하는 악마다! 너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한다! 남의 곡을 강탈한 대가다!”
커다란 목소리가 로비에서 울려 퍼졌다.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밧줄이 다시 등장했다. 아울러 칼의 광채도 번적였다.
“젠장! 안돼!!”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검은 판사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었다. 무대에서 둘이었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셋이 되었다.
검은 판사 한 명이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동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강인이 전속력으로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그때 텅!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렸다. 검은 판사 셋이 J 앙상블 단원 둘을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단원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헉! 헉!”
유강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췄다. 정찬우 형사와 조수 둘, 출동 경찰도 곧 도착했다.
가스총에 맞은 경찰 둘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강력한 최루 가스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경찰들이 급히 동료를 살폈다.
“이순경! 괜찮아?”
“김경장님!”
엘리베이터가 하나가 신속히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좌우에 두 대였다. 한 대는 검은 판사와 단원 둘을 태우고 위로 올라갔고 다른 하나는 지상 8층에 머물러 있었다.
지상 1층부터 3층까지는 공연장이었다.
4층, 5층, 6층, 7층, 8층은 사무실과 강연장이었다. 4층 이상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1층으로 내려왔다.
옥상에는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8층에서 내려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젠장!”
유강인이 다급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혹감이 온몸을 적셨다.
그가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급할수록 정신 차려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계속 위로 올라갔다.
3층, 4층, 5층!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췄다.
유강인이 5층을 확인하고 급히 외쳤다.
“어서 계단으로! 계단이 빨라!”
“계단은 저기에 있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저 앞에 보이는 계단 출입문을 가리키고 외쳤다.
“어서 달려!”
유강인과 정찬우 형사, 조수 둘, 출동 경찰이 계단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유강인이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계단을 한 번에 세 개씩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산양이 절벽 위를 타고 오르는 거 같았다.
그렇게 2층, 3층 4층을 번개처럼 올라갔다.
5층에 올라 복도 출입문 앞에 다다랐을 때
유강인이 문손잡이를 잡다가 멈췄다. 머릿속에 숫자가 떠올랐다.
1, 5, 6, 3, 4, 1, 2, 5
그건 캐논 코드였다. 조막손 김태리가 곡을 만들 때 사용한 코드 규칙이었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췄어. 검은 판사들이 1층에서 사람을 해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어.
캐논 코드 법칙에 따르면 다음 살인은 6층이야. 시간상 5층에서 사람을 죽였을 거야. 이미 6층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래! 캐논 코드에 따라서 살인을 하는 거야!
김태리는 작곡가야. 끌고 간 사람은 세 명이고 살인은 1, 5, 6 순서야. 살인에 규칙이 있어.
김태리가 작곡한 살인 교향곡은 캐논 법칙에 따라서 연주되는 거야!’
유강인이 급히 생각을 마치고 옆에 있는 정찬우 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는 나랑 같이 6층으로 가야 해.”
“네, 6층이요?”
정형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때 출동 경찰과 조수 둘이 5층 계단을 다 올랐다.
유강인이 황정수에게 말했다.
“정수는 경찰과 함께 5층으로 들어가!”
“알겠습니다. 탐정님요?”
“난 6층이야! 지금 시간이 없어!”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급히 계단을 올랐다. 정찬우 형사가 유강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검은 판사는 5층에 내렸다. 그러면 5층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유강인은 6층으로 향했다.
‘… 선배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정형사가 유강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도 계단을 황급히 올랐다.
쾅!
6층 계단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유강인이 6층으로 뛰어 들어갔다.
6층은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길쭉한 복도를 따라서 사무실이 즐비했다.
딴~ 딴~ 딴~ 딴~ 딴~ 딴~
J 앙상블의 캐논 변주곡이 다시 들렸다. 살인을 알리는 곡이었다.
“악!”
그때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유강인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앞 테라스 쪽에 검은 판사 셋이 있었다. 역광을 받아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그 검디검은 광기가 폭발하는 거 같았다. 한 자가 단원의 목을 뒤에서 조르고 있었다.
목이 졸린 단원의 두 눈이 탁구공처럼 커졌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급히 외쳤다.
“안돼!!”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온 힘을 다해 도약했다. 바람처럼 달리며 몸을 날렸다.
공중에 뜬 몸이 허공을 갈랐다. 마치 예리한 칼과 같았다.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위에서 벼락처럼 떨어졌다. 광기를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렇게 단원의 목을 조르는 검은 판사를 막았다.
“어?”
거센 바람 소리를 들은 검은 판사가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커다란 고함이 들렸다.
“야아!”
유강인이 고함을 지르며 검은 판사의 커다란 등판을 두 발로 냅다 차버렸다.
쿵쾅!
큰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검은 판사와 단원도 나뒹굴었다.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신음도 들렸다.
“제기랄! XX!”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검은 판사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서 테라스로!”
검은 판사 하나가 외쳤다. 검은 판사 셋이 테라스로 달려갔다.
급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