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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55_검은 판사 나은성의 원한

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오늘 저녁 7시 반, 음악의 궁전에 예정되어 있던 J 앙상블의 ‘송년의 밤 콘서트’가 취소되었다.


다른 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의 궁전은 당분간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유강인이 우려한 대로 테러가 발생했다.


1층 뮤지엄에 검은 판사들이 난입하면서 참극이 벌어졌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중에서 경상자는 객원 첼리스트, 객원 피아니스트, 경찰관 두 명이었다.


그들은 검은 판사의 습격을 받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의 큰 상처가 아니었다. 통원 치료가 결정되어 귀가했다.


반면 J 앙상블 셋은 큰 봉변을 당했다. 사망자가 둘이나 발생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과 5층 복도에서 각각 한 명씩 죽었다.


J 앙상블 중 유일한 생존자는 비올라 연주자였다. 연주자는 6층 복도로 끌려갔다.


다른 동료처럼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6층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유강인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입고 말았다. 이에 심신의 안정을 위해 입원했다.


그 소식을 듣고 김정선이 병실로 달려왔다. 그녀는 J 앙상블 멤버였지만, 부상으로 이번 공연에서 빠졌다. 객원 첼리스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중학교 때 김태리와 같은 기악부였다. 과거 김태리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둘이 과거의 일을 반성하며 뼈저린 후회를 했다.


커다란 일을 저지른 검은 판사 셋은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다리에 모두 총상을 입었지만, 경상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이에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고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로 압송됐다,


유강인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음악의 궁전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활활 타올랐던 긴장감을 풀었다.


옆에 조수 둘이 있었다. 둘도 놀란 가슴을 달랬다.


“여기 마카롱입니다. 어서 드세요.”


직원이 마카롱 여섯 개가 담긴 접시를 내려놨다.


황수지가 포크로 마카롱을 콕 찍어서 유강인에게 권했다. 유강인이 포크를 받고 말했다.


“고마워, 수지.”


황수지가 미소를 지었다.


유강인이 마카롱을 덥석 물었다. 달콤한 맛이 몰려왔다. 맛있는 걸 먹자, 무릎 통증이 점점 사라져갔다.


“아, 좋다.”


유강인이 아팠던 왼쪽 무릎을 어루만졌다.


검은 판사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회를 노렸다. 공연장 불을 모두 끄고 무대에 난입했다. 야간 투시경을 쓰고 기민하게 행동했다.


반면 유강인은 수렁 같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검은 판사들을 막기 위해 황급히 움직였다. 그러다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왼쪽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검은 판사를 잡은 이후에도 아픈 무릎이 계속 시큰거렸다.


유강인은 아픈 무릎을 참고 커피숍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쓴 커피를 마시다 주문한 마카롱을 먹자, 마치 진통제인 듯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요술 같은 일이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유강인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마카롱 두 개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검은 판사 셋을 조사해야 했다. 서울청으로 가야 했다.



**



서울청에 도착한 유강인이 회의실에 들어가 서류를 살폈다. 검은 판사 셋의 신상명세서였다.


현재 잡힌 검은 판사는 나은성, 연순호, 한종수 세 명이었다.


유강인이 서류를 다 살폈을 때


회의실 출입문이 열렸다. 이호식 팀장이 유강인에게 걸어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유탐정!”


“네, 말씀하세요. 팀장님.”


“지금 우형사가 보고했는데, 김태리가 참고인 조사를 거부하고 있대.”


“거부한다고요?”


“응.”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긴급 체포해야겠지. 김태리는 혐의가 확실해. 검은 판사 셋에게 범행을 지시한 게 분명해. 긴급 체포해도 문제 될 게 전혀 없어.”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체포는 자택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하는 게 낫습니다. 제가 김태리와 통화하겠습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이호식 팀장이 우동식 형사에게 전화했다. 그가 유강인의 뜻을 우형사에게 전했다.


우동식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우형사가 앞에 있는 김태리를 바라봤다. 둘 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현관문은 후배 형사가 지키고 있었다.


우동식 형사가 말했다.


“지금 유강인 탐정님이 김태리씨와 통화하고 싶다고 요청하셨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김태리가 그 말을 듣고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을 모았다. 두 눈을 꼭 감고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통화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동식 형사가 핸드폰을 김태리에게 건넸다.


김태리가 핸드폰을 받고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김태리씨입니까?”


“네, 제가 김태리입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검은 판사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검은 판사라는 말에 김태리가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J 앙상블 연말 송년 공연이 취소됐습니다. 김태리씨가 원하는 대로 됐습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이죠?”


김태리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무척 뻔뻔한 말이었다.


유강인이 그 말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태리씨, 잘 들으세요. 검은 옷을 입은 김태리씨 친구 셋이 음악의 궁전 1층 뮤지엄과 5층, 6층에서 테러를 자행했습니다.

이후 6층 테라스 앞에서 내생을 기약했습니다.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그들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승이 아니라 조사실에 있습니다.

김태리씨,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나요? 어서 오시죠. 친구들을 재회해야죠.”


“…….”


김태리가 답을 하지 않았다.


유강인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태리씨, 우동식 형사님과 함께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조사실로 오세요.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보아하니 검은 판사들은 일심동체(一心同體)인 거 같은데 … 제 말이 틀렸나요?”


김태리가 일심동체라는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유강인의 말이 마음에 든 거 같았다. 그녀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일심동체 좋은 말이네요. 잘 알겠습니다, 조사실로 가겠습니다. 유탐정님, 친구들은 모두 무사한가요?”


“셋 다 다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큰 부상은 아닙니다.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친구들을 보러 가겠습니다. 친구들이 저 대신 수고했으니 감사를 전해야죠.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김태리가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우동식 형사에게 건넸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태리 조사가 결정됐다.


“이제 됐군.”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회의실에서 나갔다. 곧바로 조사실로 가서 출입문을 열었다. 조사실 문이 활짝 열렸다.


순간, 조사실의 삭막하고 건조한 공기가 콧속으로 몰려 들어왔다.


조사실은 아무리 환기해도 그 특유의 삭막하고 건조한 공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공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조사실 특유의 분위기가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조사실 안을 살폈다.


앞에 검은 판사 셋과 사건 담당 형사인 정찬우 형사가 앉아 있었다. 정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선배님, 어서 앉으세요. 현재 이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묵비권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구제 불능이라는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검은 판사 셋을 쭉 둘러봤다.


그러자 나은성, 연순호, 한종수 셋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유강인을 다시 만나서 반가운 거 같았다.


그들은 아주 여유만만했다.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모습이었다. 마치 밀린 빨래를 다 한 듯했다.


“그렇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정형사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검은 판사 셋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순간, 화가 확 끓어올랐다.


그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말 그대로 테러였다.


원한과 전혀 관련이 없는 객원 첼리스트와 객원 피아니스트를 공격했고 이를 막던 경찰한테도 강력한 최루 가스를 난사했다.


다행히 넷 다 경상이었다. 만약 넷이 큰 상처를 입거나 죽었다면 그 죄를 씻을 수 없었다.


조사실에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이 질문 대신 검은 판사 셋을 노려봤다. 검은 판사들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음!”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검은 판사들이 벌이는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세 분 중 두 분은 제가 아는 분이군요. 참고인으로 만났던 나은성, 연순호씨를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나은성과 연순호가 자기들도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의 실체는 검은 판사였습니다. 사무친 원한을 갚는 암살 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원수를 사로잡고 그 원수를 죽였습니다.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 집행까지 했습니다. 이를 인정합니까?”


“…….”


검은 판사들이 답을 하지 않았다.


유강인이 미간을 모았다. 그가 화를 참고 질문을 던졌다.


“좋습니다. 당신들은 스스로 악을 처단하는 악마라고 칭했습니다. 당신들 스스로 악마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검은 판사 셋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중에서 최연장자인 연순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그가 침묵을 깼다.


“유강인 탐정님. 잘 들으세요.

악을 처단하려면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의 다른 모습이 악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은 양면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한 걸 고대로 갚기 위해 …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된 거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놈들은 눈 하나 깜박할 리 없습니다. 잘해야 솜방망이 처벌을 받겠죠. 이건 면죄부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놈들은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리겠죠.

유강인 탐정님, 이걸 부인하는 건 아니겠죠?

세상이 동화책처럼 정의로운가요?”


유강인이 그 말에 답을 하지 못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법의 허점과 부족한 점을 파고들어 피해자를 농락하는 건 언제나 있는 일이었고 그들의 주특기였다.


유강인이 굳은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


“이건 너무했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연순호씨.”


그때 나은성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결코, 너무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우리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앞에 있는 검은 판사들은 커다란 원한을 갖고 고통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나은성은 아버지가 죽었고 연순호는 부인과 아들, 장인이 죽었다. 한종수는 친동생이 죽고 말았다.


유강인이 나은성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은성씨, 참고인 조사받을 때 분명히 말했습니다. 송상하 부회장한테 어떤 원한도 없다고 … 사실은 그게 아니었죠? 이제 사실대로 말하세요.”


나은성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어조가 소프라노처럼 높았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거 같았다.


“송상하, 그 악마는 우리 아버지가 피땀 흘려 가꾼 회사를 헐값에 강탈했어요. 일부러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고 구해주는 척하며 손을 내밀었어요.

그 조건에 저도 있었어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말했다.


“인수 조건에 나은성씨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 말은 ….”


나은성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내가 그놈 애인이 되는 게 조건이었어요.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조건에 승낙했어요. 하지만 모멸감을 참을 수 없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셨어요.

저는 이 사실을 알고 혀를 깨물고 아버지 뒤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당한 만큼 복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원수의 회사에 입사한 거예요.

그동안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겪었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한 거뿐이에요. 이래도 제가 잘못했나요? 어서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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