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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57_선생, 금대석 사장

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유강인이 스승인 박훈정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탐정.”


“네, 반장님.”


“유탐정, 사건은 잘 풀고 있어? 지금 나도 사건 파일을 보고 있어. 서울청 자문 위원으로 위촉됐어.”


“아, 그렇군요.”


“내가 송창수를 잡았지만, 파일을 다시 보니 미진한 게 많았어.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반장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 어서 물어봐.”


“참고인 중에서 송창수한테 면도날을 판, 도일 문구 사장 금대석이 기억나시나요?”


박훈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아! 하며 말했다.


“금대석! 기억이 나. 그 사람이 송창수한테 면도날을 상자째 팔았어.”


“반장님, 그걸 어떻게 아셨죠? 보고서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아, 그거. 송창수 집을 수색했을 때 면도날 구입 영수증이 나왔어. 본인 카드로 구입했어. 구매 날짜가 확인해보니, 범행을 저지르기 일주일 전이었어.

송창수는 묵비권을 계속 행사했어. 가게 주인을 아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어.

그 내용이 보고서에 빠진 모양이네. 역시 수사 전반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어.”


“괜찮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그래서 도일 문구 금대석 사장을 찾아갔어.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참고인 조사까지 했는데 별다른 게 없었어. 그 사람은 전과가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어.

송창수한테 면도날을 팔았다고 공범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어.”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집에 영수증이 있었다는 게, 오히려 의심스럽습니다. 공범이 영수증을 집에 두라고 지시한 거 같습니다.”


“뭐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지금 금대석 사장을 공범인 선생으로 의심하는 거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정황상, 그렇습니다. 송창수의 트레이드마크는 면도날입니다. 범행 현장에 떨어진 수십 개의 면도날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면도날을 판 사람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송창수가 면도날을 구입하고 집에 영수증을 남긴 건 의도하는 게 있는 거 같습니다.

공범인 선생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거 같습니다.

송창수가 잡히더라도 공범인 자신을 발설할 리 없다고 자신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설령 참고인 조사를 받더라도 혐의없음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확신했겠죠. 그렇게 경찰을 조롱하려는 거 같습니다.

살인은 스릴을 위한 도구입니다. 자극이 클수록 쾌감도 크기 마련입니다.”


“아니 왜 그렇게 하지? 이건 위험한 짓이잖아?”


박훈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스릴이죠. 고단수 범인은 항상 알게 모르게 작은 흔적을 남깁니다. 해커의 이스터 에그입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라고 경찰을 시험합니다. 영화 제목처럼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입니다.

그들은 경찰이 눈에 보이는 단서를 보고도 지나치면 커다란 희열을 느낍니다. 그 맛에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그들의 본질은 사기꾼입니다.

사기는 마약입니다. 잡힐 걸 알면서도 사기를 칩니다.

사실 그들에게 발각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죄 행각의 스릴과 조롱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 스릴과 조롱!”


“네, 그렇습니다. 사건 현장에 확실한 증거가 남아있다면 이건 아마추어 범죄자거나 우발적 범죄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그래, 그래. 일리 있는 말이야. 역시 유탐정은 예리하군.”


“증거인 듯 아닌 듯한 물증과 정황을 남기는 게 바로 프로 범죄자입니다.

선생은 분명 전문 범죄 기획자입니다. 경찰과 피해자를 우롱하고 농락하는 맛에 사는 자입니다.

이번 검은 판사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차 살인으로 살인자들의 알리바이를 교란했습니다. 그래서 범인들이 버젓이 참고인 조사를 받고 모두 풀려났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완전히 당한 건데?”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에! 내가 그때 바보짓을 한 건가? 공범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걸 몰랐다는 말이야?”


“그건, 스승님 잘못이 아닙니다. 선생은 대단한 자입니다. 담도 크고 머리도 좋았습니다. 연기도 잘한 거 같습니다.

유명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같습니다.”


“으으으~! 그런 거 같군. 역시 뭔가가 이상했는데 … 촉이 맞았어. 내가 30년 전에 부실 수사를 하고 말았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 할 말이 없군.”


박훈정이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때 공범을 잡지 못해 30년 후, 검은 판사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쳤다고 스스로 책망했다.


유강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승 박훈정을 위로했다.


“반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선생은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발톱을 교묘하게 숨겼습니다. 그래서 잡지 못한 겁니다. 지금이라도 잡으면 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래. 지금이라도 잡아야지. 반드시!”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반장님은 30년 전에 금대석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죠?”


“금대석 … 그 사람은.”


박훈정이 30년 전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작은 문구점이 떠올랐다. 바로 도일 문구였다. 송창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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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댕!


종소리가 울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남자였다.


그는 서울 광동 경찰서 강력반 에이스, 박훈정 형사였다. 그가 가게 안을 쭉 둘러봤다.


평범한 문구점이었다. 근처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서 학생용품이 즐비했다. 커다란 복사기와 실내화 등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곧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딱 봐도 문구점 사장 같았다.


그는 키가 작고 말랐다. 얼굴은 멸치 같았다. 살이 없어서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다. 눈두덩이도 마찬가지였다.


박형사가 카운터로 걸어갔다.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살피고 입을 열었다.


“여기 주인장 되시나요?”


“네, 제가 주인입니다. 헤헤헤!”


가게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박훈정 형사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금대석씨군요.”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가게 주인 금대석이 무척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박형사에게 말했다.


박훈정 형사가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형사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서울 광동 경찰서 강력반 형사 박훈정입니다.”


“네에? 형사님이라고요?”


금대석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연쇄살인마 송창수 사건을 … 들어보셨나요?”


송창수라는 말에 금대석이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들었습니다. 유명한 사건이잖아요. 그 사건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광동구는 우리 옆에 있는 동네에요.”


박훈정 형사가 한 번 헛기침하고 질문을 이었다.


“조사 결과, 연쇄살인마 송창수가 도일 문구를 방문했습니다. 범행에 사용한 면도날을 여기에서 샀습니다.”


“네에? 그자가 우리 가게에서 면도날을 샀다고요?”


금대석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창수 집에서 영수증이 나왔습니다. 도일 문구에서 면도날 두 상자를 샀습니다. 카드 결제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영수증이 나왔다고요? 분명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금대석이 두 눈을 치켜뜨고 뭔가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손뼉을 짝 쳤다.


“아!”


금대석이 급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송창수라는 말이에요? 얼마 전 면도날을 상자째로 사 간 사람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 사람이 송창수가 맞습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그 사람이 살인마였다는 거에요?”


“그렇죠.”


금대석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무척 놀란 듯했다.


박훈정 형사가 주인의 안색을 살폈다. 거짓말하는지 가늠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혹 송창수와 아는 사이인가요?”


“아니요, 저는 그 사람 모릅니다. 그냥 손님일 뿐입니다.”


“확실한가요?”


“그럼요. 저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군요. 정직하게 사셨군요.”


박형사가 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주인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손을 마구 흔들며 외쳤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정말 무서워요!

저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고 파리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선량한 사람이에요.

송창수는 손님일 뿐이에요! 저는 그저 면도날을 판 거뿐이에요. 면도하려고 사는 줄 알았어요.”


금대석이 송창수와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음!”


박훈정 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가 꺼림칙한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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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상하던 박훈정이 말했다.


“그때 뭔가가 좀 수상해서 조사실로 불러서 조사까지 했었어.”


“참고인 조사까지 했지만, 혐의를 못 찾은 거군요.”


“그렇지. 내 불찰이야. CCTV, 통화 기록 등에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어. 마을 사람 증언도 마찬가지였어.

둘이 몰래 만나서 범죄를 모의한 게 분명해. 그걸 잡았어야 했는데 … 아이고!”


박훈정이 다시 자책했다.


유강인이 그를 다시 위로했다.


“다 지나간 일입니다. 반장님, 자책하지 마세요. 서울청 자문 위원이 되셨으니 저를 도와서 선생을 잡으면 됩니다.”


박훈정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내가 현역이라면 당장 달려가서 잡겠지만, 이제 은퇴했으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유탐정한테 맡길 테니 그놈을 꼭 잡아. 그놈의 이름은 금대석이야.”


“금대석!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년 전 도일 문구 주인 금대석의 이름을 명심했다.


금대석은 송창수의 공범인 선생에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선생은 분명 머리가 좋은 인물이었다. 참고인 중에서 머리가 좋은 인물은 문구점 주인 금대석 밖에 없었다.


문구점 운영은 힘을 쓰는 사업이 아니었다. 학생들을 상대로 물건을 잘 팔아야 했다. 수사 기록상 오랫동안 문구점을 운영했다. 이는 사업 수완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유강인의 눈치를 슬슬 보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슬쩍 말했다.


“뭐 알아내신 거 있으세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송창수의 선생! 선생을 알아낸 거 같아. 송창수가 분명 말했어. 선생은 가까이에 있다고 … 30년 전 수사 기록 속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어.

바로 송창수한테 면도날을 판 문구점 주인이야. 그자가 바로 선생인 거 같아.”


“아! 그래요. 드디어 선생의 정체가 드러났네요! 그놈이 가장 나쁜 놈이잖아요. 하하하!”


황정수가 무척 기뻐했다. 운전하는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황수지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탐정님, 오늘은 푹 자세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선생을 잡고 첫 번째 검은 판사도 잡아요.”


“그렇지. 당근이지!”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핸드폰을 들었다. 우동식 형사에게 전화 걸었다. 우형사가 바로 전화 받았다.


“대장!”


“선배님, 선생을 찾은 거 같습니다. 그자는 30년 전 도일 문구점 주인 금대석입니다. 그자를 조사해주세요.”


“아! 선생을 찾았다고.”


“네, 박훈정 반장님이 조사했던 참고인 중 한 명입니다.”


“알았어. 그리하지. 그리고 연락이 들어왔어.”


“무슨 연락이죠?”


“송창수 그자가 … 사망했대. 오늘 오후 4시에 죽었어. 옆에 보호 관찰관만 있었어.”


“네에?”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안타까움을 느꼈다. 송창수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었다. 송창수는 중병에 걸려서 오늘내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강인은 송창수를 삼 일 전에 만났다. 유강인을 만난 송창수는 입을 다물고 진상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유강인의 간곡한 청에 마음이 움직여 두꺼운 성문처럼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그는 사건을 풀 열쇠인 힌트 세 개를 말했다. 돌려서 말했지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었다.


죽기 전 마음 깊은 곳 수렁에 갇혀있던 양심이 탈출해 그의 입을 열었다.


유강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희대의 살인마 송창수가 죽었다니 … 할 말이 없군요.”


“그래, 수고해. 나도 내일 영일시로 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배님은 정금학씨에게 협조를 요청하세요. 살모사를 잡으려면 백미 노인을 만나야 합니다.

정금학씨를 통해 백미 노인의 연락처나 거처를 알아내세요.”


“알았어. 그리하지.”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차창 밖을 내다봤다.


차가 강원도 영일시에 도착했다. 잠시 후 영일시 시내로 접어들었다. 동북쪽 강원도라 어느 곳보다도 바람이 찬 거 같았다.


시간이 늦어 밤이 되었다. 이제 숙소를 들어가 푹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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