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유강인의 지시를 받은 우동식 형사가 정금학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정금학이 바로 전화 받았다. 그녀는 경찰 안가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가냘픈 목소리가 들리자, 우형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금학씨, 안녕하세요.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우동식 형사입니다.”
“아, 우형사님.”
“지금 유탐정님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유탐정님이 정금학씨 스승인 백미 노인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가능할까요?”
“그게 ….”
“어렵다는 말인가요?”
“제가 스승님께 계속 전화했는데 받지 않으세요. 문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럼,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스승님 옆에 십자매 이모가 있어요.”
“그럼, 십자매 이모라는 분께 전화하세요.”
“그런데 이모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
“그렇군요.”
“혹시 모르니 이모한테 계속 연락해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연락을 취해보세요.”
“네, 그리할게요.”
“연락이 닿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형사님.”
정금학이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스승 백미 노인과 연락이 끊어진 지 꽤 됐다.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마지막 통화에서 스승이 말했었다.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통화하는 것조차 위험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아울러 살모사가 행동을 개시하는 거 같다며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정금학은 스승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석 달 동안 스승을 만나지 못했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스승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살모사 새끼 이동호와 검은 판사 연순호가 정금학을 찾아왔다. 이동호는 10년 전 살인에 실패했다. 이를 만회하려는 듯 10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정금학은 그동안 스승 대신 이모인 십자매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십자매는 그녀의 어머니 황금새와 친구이자 같은 동문 제자였다. 그래서 정금학에게 이모와 같은 존재였다.
십자매는 백미 노인을 그림자처럼 돌봤다. 항상 스승 옆에 있었다.
한 달 전 십자매가 정금학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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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아, 이모야. 나도 위험해졌어. 더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어. 그렇게 알고 항상 조심해.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연락을 주고받자.
살모사를 항상 조심해야 해. 백미 노인 제자를 다 죽이려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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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정금학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유강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유강인의 도움이라면 어머니의 원수 살모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고 말았다. 하필 이때 백미 노인과 십자매와 연락이 끊어졌다.
유강인은 백미 노인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정금학은 그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무척 답답했다.
정금학이 실망한 표정으로 꼭 쥐고 있던 핸드폰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였다. 둘에게 다시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먼저 스승인 백미 노인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갔지만, 받은 이가 없었다. 여전히 연락 두절이었다.
정금학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으로 이모인 십자매에게 연락했다.
신호가 네 번 울렸다. 여전히 받는 이가 없었다. 그녀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금학이니?”
이모 십자매의 목소리였다. 어머니 목소리처럼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이모!”
“그래, 금학이구나.”
십자매가 드디어 전화 받았다. 한 달 만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정금학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 이제 괜찮아? 괜찮아진 거야?”
“응, 이제 괜찮아졌어.”
“다행이다. 스승님은 어디에 계세요?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
“스승님은 ….”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스승님은 지금 많이 아프셔. 그래서 안전한 곳에 모셨어.”
“네에. 스승님이 아프시다고요?”
“응, 이제 고령이시잖아.”
“그렇기는 하죠.”
정금학이 고개를 끄떡였다. 십자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백미 노인의 나이는 현재 80대 중반, 고령이었다. 그녀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모, 스승님을 만나야 해요.”
“지금 놈들의 추적을 겨우 피했어. 좀 기다려.”
“아니에요. 지금 시간이 없어요. 살모사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어요.”
“뭐?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고?”
“네, 유강인 탐정님이 저를 도와주기로 했어요. 유강인 탐정님 도움이라면 살모사 그자를 잡을 수 있어요. 유강인 탐정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유강인 탐정님이라면, 유명한 탐정이잖아.”
“네, 맞아요.”
“그 사람은 … 외부인이야. 외부인이 우리 일에 끼어드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야.”
“그건 저도 알지만, 사실 방법이 없잖아요. 살모사를 잡으려면 유강인 탐정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는 우리 조직 사람이 아니야. 이는 허용할 수 없어.”
십자매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금학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 다른 방법이 없어요. 살모사가 저를 죽이려 했어요. 유강인 탐정님 덕분에 간신히 살았어요.”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살모사 새끼, 이동호가 다른 자와 함께 집으로 쳐들어왔어요. 제 목을 조르고 죽이려 했어요. 그때 간신히 화를 피했어요. 유강인 탐정님이 저를 구해주셨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항상 조심했어야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
“항상 조심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붉은 원이 제 정체를 이동호한테 넘긴 거 같아요. 붉은 원이 저를 배신했어요. 팔아넘겼어요.”
“뭐? 붉은 원이 그런 짓을 했다고? 그럴 리가?”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제 정체를 이동호 그놈이 알 수가 없어요. 제가 유령 의사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아이고! 그렇다면 … 붉은 원이 살모사한테 먹힌 거네. 결국, 그렇게 됐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이모, 유강인 탐정님이 약속하셨어요. 살모사를 반드시 잡겠다고 약조하셨어요. 그래서 제 한을 풀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그렇다면. 생각할 여지가 좀 있네.”
“지금 유강인 탐정님이 스승님을 만나고 싶어 하세요.”
“유탐정이 스승님을 만나겠다고? … 그건 불가한 일이야. 외부인이 스승님을 만날 수는 없어.”
“이모, 스승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아요. 스승님께 한번 물어보세요.”
“그래, 알았다. 그건 스승님이 결정할 사안이긴 하지.”
“이모, 지금 살모사가 미쳐 날뛰고 있어요. 검은 판사라는 조직을 만들고 많은 사람을 막 죽이고 있어요. 붉은 원도 그자 때문에 다 끝난 거 같아요.”
“알았어. 스승님께 네 뜻을 전할게. 그런데 한 가지는 명심해.”
“그게 뭐죠?”
“나랑 스승님의 안전이야. 스승님이 허락하시더라도 비밀과 안전이 가장 중요해.
유강인 탐정과 만남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해야 해. 너랑 유탐정 단둘이만 와야 해. 다른 사람은 오면 안 돼!”
“알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유탐정 얼굴은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어. 명심해. 다른 사람이 오면 약속은 취소야, 알았지?”
“알았어요.”
“그럼, 내가 스승님께 잘 말씀드릴게. 만남을 승낙하시면 너한테 문자로 연락할게.”
“알았어요.”
“그럼 전화 끊는다.”
“네, 이모.”
정금학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스승인 백미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승이 자기 부탁을 외면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머니를 죽인 원수, 살모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에 희망이 넘쳐 흘렀다.
한편 탐정단은 강원도 영일시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방 세 개를 잡고 쌓인 피로를 풀었다.
삐리릭!
유강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동식 형사의 전화였다. 우형사가 말했다.
“대장, 도영우 판사랑 약속을 잡았어. 내일 오전 9시에 바닷가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 카페 이름은 오션 블루 커피숍이야.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금학씨랑 통화했어. 대장 뜻을 전했으니 조만간에 답을 할 거야. 스승인 백미 노인한테 어떻게든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했어.”
“잘됐네요.”
“도판사 자료를 메일로 보냈어. 메일을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방금 도착한 메일을 열었다. 그 메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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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우 신상 기록
남, 65세
△△ 대학교 법학과 졸업
사법 고시 차석 합격자, 사법연수원 △△기
전 서울 고등법원 판사
전) 인천 고등법원 부장 판사 역임
전) 대형 로펌 진솔 선임 변호사
현)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활동 중
15년 전에 상처하고 외동딸을 홀로 키웠음
외동딸 도혜영은 1년 전, 바다에 몸을 던져 사망했음
※ 30년 전 송창수 2심 고등법원 판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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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도영우 판사의 신상 자료를 보고 그의 아픔을 느꼈다. 그는 15년 전에 부인을 잃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1년 전에 잃었다.
그래서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를 거 같았다. 그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가 희대의 연쇄살인마, 송창수로 인도한 거 같았다.
세 번의 완벽한 살인을 했던 송창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거 같았다.
도판사는 퍼스트 펭귄이었다. 바닷물 앞에서 펭귄 무리가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용감한 펭귄이 물에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들도 바다로 뛰어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도판사는 첫 번째 검은 판사가 되었다. 그를 따라서 나은성, 연순호, 한종수가 검은 판사가 되었다.
“도영우!”
유강인이 첫 번째 검은 판사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와 내일 아침 만나야 했다. 그는 검은 판사의 시작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
“좋다!”
유강인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내일을 준비했다. 내일은 중요한 날이었다.
방의 불이 꺼졌다.
다음날
2025년 12월 13일, 오전 8시 50분
칼바람이 부는 바닷가였다. 바닷가에 한 커피숍이 있었다. 커피숍 이름은 ‘블루 오션’이었다. 커피숍은 손님 열 명을 받을 수 있는 규모였다.
영일시는 기암괴석과 바닷가로 유명한 도시였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드넓은 모래사장은 없었지만, 기암괴석과 광활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기암괴석과 바닷가 근처에 블루 오션 커피숍이 있었다.
커피숍 앞에 입간판이 있었다. 무거운 돌로 그 중심을 잡았지만, 칼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블루 오션 커피숍 뒤로 2차선 차도가 있었다. 차도를 따라서 차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었다. 차들이 차도를 지나 커피숍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들이 안전하게 주차한 후, 차 문이 열렸다. 유강인을 비롯한 탐정단과 형사 셋이 내렸다. 형사 선임은 정찬우 형사였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정찬우 형사와 형사들은 매의 눈으로 사방을 감시했다.
커피숍 문이 열렸다. 유강인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조리대에 여주인이 서 있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유강인에게 말했다.
“혹 유강인 탐정님이세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제가 유강인입니다.”
여주인이 말을 이었다.
“도영우 변호사님이 바닷가 앞에서 유탐정님을 기다리고 계세요. 여기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세요. 우측으로 1분 정도 걸어가면 기암괴석이 있어요. 기암괴석 앞에 도변호사님이 계실 겁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탐정단이 커피를 들고 커피숍에서 나왔다. 그들이 커피숍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주인 말대로 저 앞에 기암괴석이 보였다. 한 사람이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도영우!”
유강인이 남자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