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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59_유강인 VS 검은 판사

탐정 유강인 19편 <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철썩! 철썩! 기암괴석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굽이치며 기암괴석을 따라서 올라왔다.


참 넓은 바닷가였다. 그 바닷가를 따라서 기암괴석이 펼쳐졌다.


기암괴석은 말 그대로 기괴했다. 그 모양을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었다.


신이 거대한 찰흙을 빚다가 갑자기 멈춘 거 같았다. 다른 일이 바쁜 듯 손을 놓은 듯했다.


흡사 높은 산봉우리 같기도 했고 마을 앞 장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 같기도 했다.


그렇게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바위와 돌들이 바닷가에 펼쳐졌다. 그 모습을 한 남자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음~!”


유강인이 그 남자를 주시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기암괴석을 주시하는 남자는 전직 판사, 도영우 변호사였다.


도변호사는 첫 번째 검은 판사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조수 둘이 긴장한 듯 침을 꿀컥 삼켰다.


파도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유강인이 도영우 변호사 근처에 다다랐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듯 도변호사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도영우 변호사가 유강인을 보고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거 같았다. 유강인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이시죠?”


“맞습니다. 탐정 유강인입니다. 고등법원 부장 판사셨던 도영우 변호사시죠?”


“네, 맞습니다. 도영우 변호사입니다. 약속 시각에 딱 맞춰 오셨군요.”


“어제 영일시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여기 기암괴석을 감상합시다.”


“그러지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커피를 쭉 들이켰다. 고가의 콜드 블루 커피였다.


그렇게 둘이 기암괴석을 감상했다.


그 모습을 조수 둘이 초조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황정수가 입을 열었다.


“수지야, 도변호사라는 자를 지금 당장 체포해야 하는 거 아니야?”


황수지가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증거가 없어서 체포는 불가에요. 어디까지나 심증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확실하잖아. 저자가 바로 검은 판사야. 그것도 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된 첫 번째 검은 판사야. 탐정님이 퍼스트 펭귄이라고 말했어.

다른 사람이 아닌 저자가 송창수를 찾아간 거야.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거야.”


“정황상 그렇지만, 탐정님이 가만히 계시잖아요. 우리가 안달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요. 가만히 계세요.”


“그건 나도 알지만, 답답해서 그래. 남은 검은 판사들이 또 살인을 저지르면 어떡해? 하루라도 빨리 놈들을 잡아야 해.”


황정수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반면 황수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다고 … 지금 유강인이 그 순리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잠시 드넓은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을 바라보던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도변호사님, 확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30년 전 송창수 사건 2심 판사가 … 맞나요?”


도영우 변호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습니다. 그때 판사였죠. 고등법원 판사였습니다. 젊은 시절이었죠.”


“그렇군요. … 벌써 30년이 지났군요. 최근에 송창수를 만난 적이 있나요?”


도변호사가 고개를 돌려 유강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유강인도 도변호사를 쳐다봤다. 둘의 시선이 날카로운 칼처럼 쨍! 하며 부딪혔다.


도영우 변호사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후덕한 인상이었다. 큰 얼굴에 8자 눈썹이었다.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넉넉한 얼굴이었다.


도변호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창수 그자를 다시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도영우 변호사가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제 말은 사실입니다.”


유강인이 말했다.


“제가 볼 때, 도변호사님은 송창수를 만났습니다. 비밀리에 만나서 억울한 사정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딸의 죽음을 복수하고 싶다고 간청했습니다.”


“하하하!”


도변호사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제가 듣기로 유강인 탐정님은 대단한 탐정이라고 들었는데 과장된 소문이었군요.

논리적인 추리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상상력이 참 풍부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근거 없는 상상은 공상에 불과하다는 걸 명심하세요.”


도영우 변호사가 유강인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도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존경하는 유강인 탐정님, 제가 송창수를 만났다는 증거가 있나요? 증거가 있으면 갖고 오세요. 증거가 확실하면 바로 인정하겠습니다.”


유강인이 도변호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판사 출신 법조인이 맞았다. 그가 답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도변호사님이 송창수를 만났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도영우 변호사가 가볍게 웃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황 증거는 충분합니다. 도변호사님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따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응분의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다가,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송창수입니다.

송창수는 변호사님이 과거 맡았던 사건 중에서 신출귀몰한 솜씨를 보였던 자입니다. 그래서 그자를 찾아간 겁니다.

송창수는 4개월 전 가석방됐습니다. 중병으로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변호사님은 보호 관찰자의 눈을 피해 송창수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은밀히 접선했습니다. 만약 송창수가 감옥에 있었다면 은밀한 만남을 불가능했을 겁니다. 면회 기록이 남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도변호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가설이군요. 계속해보세요. 한번 들어봅시다. 알고 보니 유강인 탐정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군요.”


유강인이 무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도영우 변호사가 계속 유강인의 말을 비웃었다. 이에 화가 끓어올랐지만, 이를 꾹 참고 말을 이었다.


“도변호사님은 연쇄살인마 송창수에게 간청했습니다. 복수하고 싶다고 간절히 말했습니다.

송창수는 그때 죽을 때가 다 됐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힘이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때 도변호사님은 은밀한 제안을 했습니다. 공범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고, 공범이라고요?”


공범이라는 말에 도영우 변호사가 움찔했다. 허가 찔린 듯 했다.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도변호사님은 2심 판사로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송창수에게 공범이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그 공범이 신출귀몰한 범죄를 꾸민 브레인이라는 것도 간파했습니다.”


“아닙니다! 공범 같은 건 없었습니다.”


도변호사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확실합니까?”


“그럼요. 공범이 있다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재판장에서 송창수에게 공범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급히 말했다.


“그때 송창수가 뭐라고 답했죠?”


“당연히 공범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때 송창수가 빙그레 웃지 않았나요?”


“네, 웃었습니다. 빙그레 웃었죠. … 어!!”


도영우 변호사가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마치 날카로운 칼로 심장이 찔린 듯했다.


유강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빙그레 웃음은 염화미소입니다. 일종의 텔레파시죠.

30년 전 송창수는 공범이 있냐는 판사의 질문에 빙그레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당시 판사였던 도변호사님도 빙그레 웃었을 겁니다. 그렇게 둘이 통한 겁니다. 이심전심이죠.”


“으으으~!”


도변호사가 여태까지의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머릿속에 그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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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송창수 연쇄 살인 사건, 2심 법원, 도영우 판사가 목을 가다듬더니 피고인 송창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피고인, 공범이 있었나요? 범행 기록을 살핀 결과,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사건은 신출귀몰한 솜씨였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마지막 사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피고인, 공범이 있었나요?”


피고인 송창수가 답했다.


“공범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빙그레 웃음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웃음을 보고 도영우 판사도 고개를 끄떡이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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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우 변호사 두 눈을 꼭 감았다. 10초 후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가 유강인을 바라봤다. 역시 대단하다는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커피를 다시 들이켰다. 고소한 커피 향이 바닷가 아침과 잘 어울렸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따님 일은 참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사적으로 복수하려 하시다니 이는 법조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도변호사도 드넓은 바다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영우 변호사가 무척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바다가 참 넓지요. 참 넓은 바다입니다. 저 바다를 볼 때마다 저는 느낍니다. 우리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

… 저는 그동안 제가 잘난 줄 알았습니다.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최고의 대학을 나와 이른 나이에 사법 고시에 합격해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됐습니다.

이후 대형 로펌에 들어가 큰돈도 벌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놀던 세상은 개울에 불과했습니다. 훨씬 더 큰 바다가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어느 날 태평양 같은 바다가 저를 덮쳤습니다. 그래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딸을 잃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 제가 할 말은 그거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큰 바다한테 당하셨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도영우 변호사 에둘러서 말했지만, 그의 말뜻은 다음과 같았다.


자신이 잘난 줄 알았는데 더 강한 자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도변호사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찍 죽은 딸을 생각하는 거 같았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 울분을 감췄지만, 유강인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처절한 억울함을 ….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도변호사님, 금대석이라는 자를 아시나요?”


그 말을 듣고 도영우 변호사가 급히 고개를 돌려 유강인을 바라봤다. 그가 급히 눈물을 닦았다.


유강인이 씩 웃고 말했다.


“금대석은 연쇄살인마 송창수의 선생입니다. 살인 집단 검은 판사를 기획한 인물이죠. 현재 검은 판사 넷이 경찰에 잡혔습니다.”


도영우 변호사가 그 말을 듣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판사라고요? 그들이 대체 누구죠?”


“검은 판사는 복수에 눈이 먼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딸이고 형입니다. 그리고 자기 작품을 강탈당한 불쌍한 작가입니다.

그들은 모두 금대석한테 이용당했습니다. 복수라는 이름하에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검은 판사를 막다가 과다출혈로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옆에 의사가 있어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렇군요. 큰일을 당하셨군요.”


유강인이 쓴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송창수의 선생 금대석은 검은 판사를 이용해 스릴을 즐기고 있습니다.

선생은 지금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억울한 한을 이용해 살인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검은 판사가 벌이는 복수 행각은 진정한 복수가 아닙니다. 살인 게임에 동원된 꼭두각시입니다.”


그 말을 듣고 도변호사 발끈했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묻겠습니다. 그럼, 진정한 복수는 뭐죠? 악랄한 놈들이 마구 날뛰는 데도 아무런 짓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진정한 복수인가요? 어서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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