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행운 빌라 재조사 2일 차, 오후 4시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가 길을 걸었다.
둘은 행운 빌라 402호 주민이었던 홍은희를 만나야 했다.
홍은희는 사건이 발생하고 1년 후, 전세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행운빌라를 떠났다. 현재 경기도 수원 팔달문 근처에 살고 있었다.
어제, 차수호 형사가 홍은희에게 전화했다. 집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 잡았다.
두 형사가 수원 팔달문을 지났다. 팔달문은 정조가 세운 화성의 큰 문이었다. 웅장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대단한 위용을 뽐냈다.
유강인은 난생처음 화성 팔달문을 봤다. 그 위세에 깜짝 놀랐다.
그는 서울 출신이었다. 서울에서 동대문, 남대문, 광화문만을 보다가 수원에 이렇게 대단한 성문이 있다는 사실에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성문 주변으로 길에 늘어선 탄탄한 성곽을 보면서 도시가 하나의 요새 같다고 여겼다.
성곽 아래는 잘 가꾼 정원 같았다. 겨울이라 잔디색이 빠져 누렇게 변했지만, 나름대로 담백한 맛이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유강인이 수원의 경치에 감탄하며 약속 장소인 ‘선녀와 나무꾼 커피숍’으로 향했다.
선녀와 나무꾼 커피숍은 이 일대에 유명한 커피숍이었다. 단골손님들은 그 이름을 줄여 ‘선나커피’로 불렀다. 카페 이름처럼 미팅과 소개팅을 많이 하는 곳이었다.
여성들은 당이 적은 ‘선녀 커피’를 마셨고 남성들은 당이 많은 ‘나무꾼 커피’를 즐겼다.
가게는 꽤 큰 편이었다. 손님 50명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었다.
인테리어는 분위기가 아늑했다. 약간 어두운 조명에 푹신한 소파와 동그란 유리 테이블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소파 커버는 파스텔톤 오렌지색 혹은 파스텔톤 노란색이었다. 그래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차수호 형사가 가게 안을 쭉 살피다가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유강인은 그 옆자리에 앉았다.
“자, 약속 시각은 5분 뒤니, 그때까지 편안하게 기다리자고.”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유강인이 즉각 답하고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커피숍답게 통 창문이었다. 그래서 밖이 훤히 보였다. 수원의 자랑인 팔달문 근처라 사람이 붐볐다.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5분이 지났고 3분이 더 지났다.
유강인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약속 시각은 이미 지났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커피숍을 향해 뛰어왔다.
“어?”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홍은희라고 직감했다.
숨이 턱까지 올라온 아주머니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사방을 쭉 둘러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삐리릭!
차수호 형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차형사가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걸음을 옮겼다.
- 행운빌라 402호 거주자, 증인 홍은희 -
“제가 늦어서 죄송해요. 일을 좀 남아서 마무리하느라 늦었어요.”
홍은희의 말에 차형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한 4분 정도 늦으셨네요. 별일 아닙니다.”
홍은희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50대 초반 여성이었다. 작은 키에 살집이 있었다. 검은색 가죽 재킷에 짙은 색 청바지를 입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피부도 고왔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짙은 화장을 했고 두꺼운 쌍꺼풀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차수호 형사입니다. 행운 빌라 사건 증인이신 홍은희씨죠?”
“네! 맞아요. 제가 홍은희입니다. 사건 조사는 예전에 다 끝난 거로 아는데 … 왜 다시 만나자고 하셨죠?”
“사건 조사가 끝난 건 아닙니다. 사건을 풀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한 거 뿐입니다. 단서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수사를 재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 사건을 풀 단서를 잡았다는 말인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단서를 잡기 위해 다시 조사를 시작한 거뿐입니다. 여기 제 옆에 있는 형사가 사건 담당 수사관입니다. 홍은희씨에게 인사해. 유형사!”
유강인이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가 긴장되는지 약간 몸을 떨었다.
‘드디어 강력 범죄 사건을 수사하게 됐구나!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유강인이 불안한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건 담당 형사이자 초짜 형사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자 차형사가 씩 웃고 유강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제 후배인 유강인 형사입니다. 유형사!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해, 어서!”
차형사의 격려에 유강인이 길게 숨을 내쉬고 정신 차렸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형사 유강인입니다. … 사건 파일을 보니 목격자인 라미경씨의 비명을 들었다고 하셨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소리가 커서 화들짝 놀랐어요.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어요.”
“그 후에 몇 초 있다가 뛰어가는 발소리를 들었다고 하셨는데 … 사실입니까?”
“맞아요! 옆집 아줌마가 비명을 지르고 한 3초나 4초가 지났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 초가 지난 후에 급히 뛰는 발소리를 들었어요.”
“그 후에 밖으로 나오셔서 301호로 내려가셨죠?”
“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라서 잠시 가만히 있었는데 다른 집에서 문 여는 소리를 듣고 급히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어요. 사람들이 3층에서 소리가 났다고 해서 같이 3층으로 내려갔어요. 3층에 내려 가보니 301호 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집 안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어요. 그래서 놀란 나머지 빌라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목격자인 라미경씨도 빌라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 상태가 어땠나요?”
“그 아줌마요. 그때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다음 날 아침에 만났는데 정신 병원에 간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라미경씨는 그 이후에 어땠나요?”
“이틀 정도 지나자,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어요. 저는 너무 두려워서 집에 꼭꼭 숨어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다시 직장에 다녔고 표정도 밝아 보였어요.”
“표, 표정이 밝아 보였다고요?”
“원래 그 아줌마가 잘 웃었어요. 예전으로 돌아갔어요.”
“음, 그렇군요. 홍은희씨는 전세 계약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이사 오신 거죠?”
“네, 맞아요. 그 집이 전셋값이 싸고 이웃 주민들도 친절해서 살기 좋았는데 그 일을 겪은 후로 너무나도 무섭더라고요. 그냥 하루하루가 두려워 견디기 힘들었어요. 튼튼한 빗장도 달고 비싼 도어락도 달았지만, 그 집을 떠나는 게 최선일 거 같아 이쪽으로 이사했어요. 이사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발 뻗고 잘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입주민들은 어땠나요? 계속 그 집에 산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몇몇은 저처럼 이사했어요. 그런데 몇몇은 이사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거 같았어요. 옆집 아줌마도 그렇게 말했어요.”
“옆집 아줌마는 목격자인 라미경씨를 말하는 거죠?”
“네, 맞아요. 라미경이 맞아요. 그 아줌마는 그냥 빌라에 쭉 산다고 했어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요. 아직도 거기에 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홍은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차수호 형사가 말했다.
“확인해보니 라미경씨는 현재 행운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비위가 좋은 건지 아니면 겁이 없는 건지 … 그 처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 참 대단하네요. 전 겁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살 떨렸는데.”
홍은희의 말에 유강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행운 빌라에 살 때 주민들과 왕래가 있었나요?”
“전, 뭐 그다지 왕래는 없었어요. 그냥 인사나 하는 사이였어요. 제가 사람 사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자주 만나더라고요. 같이 술도 먹고 식사도 하고 그랬어요. 이웃사촌이라고.”
“행운 빌라에 사는 동안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동네 사람들은 어땠나요?”
“뭐, 특별한 일은 없었던 거 같아요. 있으면 기억이 났겠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인 걸로 기억해요.”
“혹 빌라나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친목 모임 같은 게 있었나요?”
“빌라 주민 사이에 모임이 있었어요. 101호에서 자주 모였던 거 같아요. 전 조용한 걸 좋아해서 모임에 참가하지 않았어요. 옆집 아줌마가 나오라고 두어 번 말했던 거 같아요. 아! 인근 가게 아저씨, 아줌마도 모임에 참석했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무슨 징조 같은 게 있었나요?”
“글쎄요. 별일 없었던 거 같아요. 좀 조용한 동네라서.”
“피해자 가족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그 집 사람들이랑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어요. 그 집 안주인도 저처럼 사람을 가리는 성격이라서 데면데면했죠. 301호 사람들은 주민 모임에 잘 나갔던 거 같아요. … 아! 특별한 게 있기는 있었어요. 그 집에 딸이 있었어요. 걔가 참 예뻐서 동네 남학생들이 빌라로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요? 진술 조서에는 없는 말이네요. 어제 홍은희씨 진술 조서를 쭉 살펴봤습니다.”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 당시 공포에 질려서 너무 불안했어요.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마음이 편안해지니 그때 일이 생각나네요. 그 집은 화목한 가정 같았어요. 부부가 인상이 좋았고요. 아저씨는 친절했고 아주머니는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아들은 엄마 닮아 조용한 편이었어요. 딸은 얼굴에서 빛이 났어요. 그래서 예쁘다는 말이 많았어요. 남학생 여러 명이 빌라 앞에서 자주 기웃거렸던 거 같아요. 걔 얼굴 보고 싶다고.”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1시간 정도의 조사가 끝났다.
홍은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볼게요. 할 일이 있어서. 또 조사할 계획은 있나요?”
“아직은 없지만 혹 일정이 잡히면 연락하겠습니다. 오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은희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하하하. 멋있는 형사님이네.”
홍은희가 미소를 짓고 커피숍에서 나갔다.
홍은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오늘 소득이 있네. 10년 동안 기억 못 했던 일을 오늘 기억한 거잖아. 거, 참! 신기하구먼. 유형사가 조사를 잘하는 건가?”
차형사가 유강인이 범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에 유강인이 양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 덕분에 기억이 난 거겠죠. 여기가 경찰 조사실보다 훨씬 편하고 아늑한 곳이잖아요.”
“하긴, 그렇긴 하네. 말을 들으니 그럴듯해.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하나라도 건졌으니 참 다행이야. 이만 돌아가자고.”
“내일은 목격자를 만나기로 했는데 선배님도 같이 가실 거죠?”
“그게, 같이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어. 그래서 내일 종일 시간이 없어. 유형사 혼자 가야 해.”
“아, 그렇게 됐군요. 알겠습니다.”
“또, 커피숍에서 만날 거야?”:
“네, 빌라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 잡았습니다.
“그래, 커피숍에서 조사하는 게 괜찮은 거 같군. 자, 일어나자고.”
두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수호 형사가 커피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겨울이라 해가 빨리 떨어졌다. 둘이 옷깃을 여미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비둘기들이 높은 하늘을 날았다. 하늘을 마음껏 날다가 하나둘씩 팔달문 성곽에 내려앉았다.
비둘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인간 세상사가 신기한지 도심을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