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_07_목격자 라미경

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by woodolee

행운 빌라 사건 재조사 3일 차


가운산동은 한적한 동네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전통 시장, 다세대 주택, 빌라가 밀집한 주거지였다.

전통 시장에는 고기, 채소, 과일 등 다양한 음식과 생활용품을 팔았다. 아울러 간식거리도 많았다. 떡볶이, 김밥, 꽈배기, 찹쌀 도넛 같은 맛있는 음식이 즐비했다.

해가 점점 기울어지더니 저녁을 향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저녁 먹거리를 사러 장을 봤다. 시장 상인과 흥정하며 콩나물, 생선, 고기 등 저녁거리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시장을 따라 쭉 내려가면 순댓국집이 있었다. 식당에는 아저씨들이 참 많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며 머리 고기와 순대를 즐겼다.

유강인이 시장을 지나 행운 빌라를 향했다. 시장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인정사정없이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지금 먹거리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오늘이 벌써 재조사 3일 차였다.


하루하루가 쏜 살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수능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처럼 떨렸다.

하지만 서두르는 건 금물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했다. 급하면 실수하기 마련이었다.

유강인이 한발 한발 걸어서 약속 장소인 ‘아침에 커피 한잔 커피숍’ 근처에 다다랐다.

커피숍 앞에서 유강인이 손목시계를 쓱 내려다보았다. 약속 시각 5분 전이었다. 그가 일찍 도착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커피 한잔 커피숍’은 작은 업소였다. 손님 10명을 받으면 꽉 차는 곳이었다. 벌써 손님 대여섯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은 자리가 몇 개 없었다.

작은 업소였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넘쳤다. 원목 테이블이 분위기를 더했다.

유강인이 빈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흘러 약속 시각이 다 되었다. 그가 핸드폰을 들고 라미경에게 전화 걸었다.


삐리릭!


커피숍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라미경이 커피숍에 있는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커피숍을 쭉 둘러봤다. 왼쪽 구석 자리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중년 여인이 핸드폰 들고 침을 꿀컥 삼켰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고 서둘러 움직였다. 중년 여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 행운빌라 402호 거주자, 라미경 목격자 -


라미경은 40대 초반 여자로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였다. 동그란 얼굴에 평범한 얼굴이었다. 얼굴에 두껍게 분을 발랐는지 목이 얼굴보다 한층 어두웠다.

유강인이 걸어오자, 라미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공손히 인사했다.

“유강인 형사님이시죠? 라미경입니다.”

매우 친절한 말투였다. 활짝 웃으며 형사를 맞이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무척 예의 바른 사람이군. 그런데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야. 과도하게 친절한 거 같군.’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저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유강인 형사입니다. 이번에 행운 빌라 사건 재조사를 맡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뵙게 됐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음료는 아직 시키지 않으셨죠? 이 집은 커피보다 코코아가 더 맛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코코아를 즐겨 먹죠. 호호호!”

라미경이 먹고 있던 코코아 잔을 들면서 즐겁게 웃어댔다.

유강인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테이블로 걸어왔다.

유강인도 코코아를 시켰다. 사실 그도 코코아를 아주 좋아했다.

그렇게 둘이 코코아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조사할 게 남아 있나요? 그때 하도 조사를 많이 받아서 이젠 조사라면 진절머리가 나요.

앗! 형사님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게 아니라 조사받는 게 진절머리난다는 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호호호!”

“아! 예.”

“젊은 형사님이시네. 미남이고! 여자 친구는 좋겠당.”

“…….”

라미경이 쉴새 없이 떠들어댔다.

‘이거 쉬운 상대가 아닌 거 같군.’

유강인이 코코아를 먹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앞에 있는 라미경이 상대하기 버겁다고 여겼다. 그래서마음 단단히 먹고 질문을 던졌다.

“저, 라미경씨. 사건 당일 새벽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셨는데, 빌라 3층 복도를 지나다 301호 문이 살짝 열린 거를 보셨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빛이 새어 나왔어요. 그게 손전등 빛이었던 거 같아요.”

라미경이 말을 마치고 침을 꿀컥 삼켰다. 코코아 잔을 꽉 잡더니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유강인이 라미경의 말에 집중했다.

그때!

“아악!”

갑자기 라미경이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코코아 잔은 꼭 잡고 있었다. 마치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이게 뭔 소리야?”

갑작스러운 비명에 손님과 종업원, 주인이 깜짝 놀라서 토끼 눈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미경을 쳐다봤다.

“아이고 이런!”

유강인이 두 손을 흔들며 난처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강인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라미경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붙잡고 있는 코코아 잔을 보고 아! 하며 깨달았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연기라는 걸 깨달았다.

유강인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괜찮습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그게, 그때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어요. 정말 죄송해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라미경이 다시 코코아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301호에 있는 범인을 확인하셨을 때 지금처럼 비명을 지르신 거죠?”

“네, 그래요. 그때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어요. 지금보다도 더 크게!”

“이후 범인이 급하게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하셨죠.”

“네! 범인이 제 목소리에 놀라서 급히 밖으로 나갔어요. 그러면서 저를 밀쳤어요. 그래서 넘어졌어요. 엉덩이하고 무릎이 아파서 혼났어요.”

“범인이 비명을 듣자마자 바로 도망갔다는 말씀이죠.”

“네, 범인이 놀라서 바로 도망갔어요. … 아! 잠깐 주춤했다가 나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나게 급했어요. 전 그때 정신이 없었어요. … 저 형사님, 제 진술서에 뭐라고 적혀있나요?”

“비명을 듣고 바로 나갔다고 진술하셨습니다. 엄청나게 급했다고 ….”

“그럼, 그게 맞겠죠. 범인이 주춤했다가 나가거나 빨리 나가거나 뭔 차이가 있겠어요.”

라미경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뭐 큰 차이야 없겠죠. 그건 잘 알겠습니다. 범인이 도망간 후에 빌라에서 바로 나오지 않고 안에서 머무르셨는데 그동안 뭘 하셨죠?”

“너무 놀라서 한동안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어요. 그러다 겨우 정신 차렸어요. 301호 거실에 흥건한 피를 보고 뛰쳐나왔어요. 그랬더니 잠시 후에 마을 사람들이 다 몰려왔어요. 저한테 무슨 일이 있냐고 묻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어요. 흥건한 핏자국을 봤다고 말했죠.”

라미경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을 본 듯 침까지 튀겨가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신이 난 듯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다.

목격자의 말을 묵묵히 듣던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 한가지가 생각이 난 듯 천천히 말했다.

“피해자 가족 중 따님만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따님에 대해 혹 아시는 게 있나요?”

“아! 선애요. 선애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아니었으면 걔는 죽었을 거예요. 그 잔인무도한 범인이 제가 내지른 비명에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결과야 뻔했죠. 제가 문을 열고 안을 봐서 걔가 산 거예요. 다 제 덕분이에요.”

라미경이 강선애 얘기를 하다가 자기 공을 자화자찬하며 우쭐거렸다.

유강인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강선애씨가 남학생한테 인기가 좋았다는 말이 있던데 … 사실입니까?”

“아! 그거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남학생들을 막 쫓아냈어요. 자꾸 빌라 앞에서 기웃거리길래 빗자루 들고 막 화를 냈죠. 어서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고. 어린 것들이 벌써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닌다고 훈계했죠. 어디서 감히 성 ….”

라미경이 말을 하다 “아차!” 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거 같았다. 그녀가 유강인의 눈치를 슬슬 살피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벽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 말을 이었다.

“라미경씨는 강선애씨 어머니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

“그게, 얘들이 담배 태우는 거 같기도 하고 … 아무튼 불량한 학생들이 빌라에 기웃거리는 건 별로잖아요. 그래서 훈계 차원에서 ….”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라미경의 눈빛을 살폈다. 눈빛이 흔들거렸다. 초조한 거 같았다.

라미경이 불안함을 감추려는 듯 비어있는 잔을 입에다 털었다.

“에고! 벌써 다 먹었네!”

라미경이 안타까워했다.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가 말했다.

“라미경씨,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직도 행운 빌라에 살고 계신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네? 그거요. 그거야 편하니까요. 제가 행운 빌라에 15년 동안 살고 있어요. 그동안 마을에 정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직장이랑 가깝고 그래서 굳이 이사 갈 필요가 없었어요. 사고야 다른 동네도 다 생기잖아요. 이사 가려면 돈이 들잖아요. 이사비나 복덕방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요!”

“행운 빌라 주민 중에 라미경씨처럼 계속 사시는 분이 있나요?”

“그럼요. 우리 마을은 유대가 강한 마을이랍니다. 402호 아줌마는 소심하고 겁쟁이라 금방 도망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살고 있어요. 저세상 가시거나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 빼고는 여전히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이만 조사를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짜로 조사가 다 끝난 거예요?”

라미경이 묻자 유강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다행이다. 더 늦어지면 이를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우리 아빠 저녁밥을 차려야 하거든요.”

“네, 끝났습니다. 시간을 많이 뺏어서 죄송합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이고! 고마워라! 형사님 최고예요. 미남에 친절하기까지 하시고. 여자 친구가 참 좋겠어요.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라미경이 유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강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홀로 남은 유강인이 남은 코코아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젠 해가 완전히 떨어져 꽤 어두웠다.


퇴근길에 들어선 행인들이 바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거나 호프집, 식당에 들렀다.

식당과 술집은 이른 술 파티와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은 유심히 바라보던 유강인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둠이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래, 나온 김에 한 번 가보자!”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그 방향은 참사의 현장, 행운 빌라로 가는 길이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7화탐정 유강인 01_06_402호 홍은희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