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_09_수상한 마을 사람들

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by woodolee

가운산 시래기 감자탕


가운산 시래기 감자탕집은 가운산동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행운 빌라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대로변에 있었다.


유강인과 황정수가 나란히 길을 걸었다. 둘이 아무 말 없이 걸음만 재촉했다.


드디어 간판이 보였다.


가운산 시래기 감자탕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한눈에 보였다.


2층과 별채까지 있는 상당히 규모의 식당이었다. 안에는 늦은 저녁과 회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손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탕과 전골을 먹었다. 이곳은 매운맛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캑캑거리며 물을 계속 마셔댔다.


“형사님! 여기는 매운 국물 맛이 일품이랍니다. 시래기와 뼈다귀 살도 부들부들하고 맛있어요.”


옥탑방 청년 황정수가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에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자리를 잡자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주문받겠습니다.”


“감자탕 중짜요! 빨리 주세요. 흐흐흐. 아! 공깃밥도 두 개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손님.”


황정수가 공깃밥과 감자탕 중짜를 시켰다.


그는 감자탕을 기다리며, 계속 군침을 삼키고 입맛을 다셨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손님들이 내지르는 탄성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5분 후 감자탕이 나왔다.


황정수가 함박웃음을 짓고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간절히 먹고 싶었는데 이제야 먹는 것처럼 정신없이 먹어댔다.


유강인은 황정수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청년의 배가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25분이 지났다. 황정수 혼자 감자탕 대부분을 다 먹었다. 유강인은 밥에 국물과 시래기를 비벼 먹었다.


열심히 전투적으로 감자탕을 먹던 황정수가 슬쩍 고개를 들고 유강인을 바라봤다.


자기 앞에는 뼈다귀가 수북했지만, 유강인 앞에는 뼈다귀가 하나도 없었다.


“어? 형사님, 왜 안 드세요. 맛이 없어요? 여기 진짜 맛집인데 … 여기만큼 맛있게 감자탕 하는 집은 없어요.”


“하하하! 국물하고 시래기면 충분합니다.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름이 어떻게 돼죠?”


의아한 표정을 짓는 황정수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 그러시구나. 전 고기가 최고로 좋은데 …. 각자 좋아하는 걸 먹으면 된거죠. 저는 행운 빌라 옥탑방에 사는 황정수라고 합니다.”


“황정수씨, 잘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네, 좋아요. 제가 아는 한에서 성심껏 답할게요. 이렇게 맛있는 감자탕도 얻어먹는데 … 질문에 답하는 건 별거 아니죠. 하하하!”


황정수가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었다.


청년의 경계심이 풀어지자 유강인이 속으로 ‘흐흐흐’ 웃었다. 이를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2년 전부터 옥탑방에 살았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근처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는데 재건축한다고 해서 급하게 나왔습니다. 방이 없어서 참 곤란했는데 행운 빌라에 옥탑방이 하나 있다고 해서 계약했죠.”


“혹, 계약한 부동산이 행운빌라 근처에 있는 평화 부동산입니까?”


“네, 평화 부동산에서 계약했어요. 길을 가다 월세 광고판을 보고 있었는데 안에 있던 사장님이 어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어요. 자기가 이 근방을 꽉 잡는 터줏대감이라고 말했어요.”


“터줏대감이라 … 잘 알겠습니다. 부동산 주인이 행운 빌라 옥탑방을 소개한거죠?”


“네! 부동산 사장님이 제 수중에 맞는 방들을 고르다가 행운 빌라 옥탑방을 소개해 줬어요. 싸고 좋다고 했어요.

별 기대 없이 한번 가봤는데 웬만한 원룸보다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약했어요. 싼게 비지떡이라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오들오들 추워서 고생하긴 했어요, 그래도 싼 게 어디예요.”


“음, 알겠습니다. 평화 부동산이라 …”


유강인은 살인 사건 목격자, 부동산업자를 떠올렸다. 이름이 하연수였다. 하연수는 도망치는 범인을 목격했다.


유강인은 하연수라는 부동산업자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영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부동산 사장님 성함이 … 혹 하연수씨입니까?”


“이름이요? 잘 모르겠는데 … 아! 제가 명함을 가지고 있어요. 제 지갑에 있을 거예요.”


황정수가 급히 지갑을 꺼냈다. 여러 장의 명함 속에서 평화 부동산 사장 명함을 찾았다. 명함을 유강인에게 건넸다.


명함에 ‘평화 부동산 사장 하연수’라고 분명히 적혀있었다.


“맞네요, 하연수씨가. … 계약을 2년 전에 하셨는데 하연수라는 사람이 지금도 부동산을 하고 있나요?”


“네, 그럼요. 지금도 하고 있어요. 부동산은 이 동네 주민의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부동산에서 장기를 두기도 하고 음료를 마시며 잡담도 나누고 그래요.

사장님이 아줌마신데 무척 친절해요. … 그런데 밤에 몰래 내기 화투를 친다는 말이 있어요. 부동산 앞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쑥떡 대는 거를 들었어요. 화투 치다가 누가 돈을 얼마 잃었다고 하더라고요.”


황정수가 갑자기 목소리 톤을 낮췄다. 유강인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


“형사님, 몰래 돈 걸고 도박하며 불법이죠?”


유강인이 주변을 쓱 둘러보고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상황에 따라서 다릅니다. 본인이 버는 수입에 비해 큰돈을 걸고 상습적으로 몰래 도박하면 도박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냥 심심풀이 내기 등은 도박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좀 애매하긴 하죠.”


“아! 그래요. 좀 큰돈을 걸고 하는 거 같았는데 ….”


황정수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때 일을 회상했다. 그러다 다시 뼈다귀를 들고 열심히 뜯어먹기 시작했다.


“부동산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여기 주민인가요?”


황정수가 먹는 거를 멈추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네, 부동산에서 동네 주민을 많이 봤어요. 우리 행운 빌라 입주민도 봤어요. 4층에 사는 아줌마는 자주 봤어요.”


“4층이라고요? 402호 라미경씨를 말하는 건가요?”


“402호요? 그 아줌마가 402였나? … 아, 맞아요. 402호가 맞아요. 제가 계단을 내려갈 때 그 아줌마가 오른쪽 집에서 나왔으니까 402호가 맞아요.”


“또 아는 사람이 있나요?”


“네, 잘 알죠, 맨날 보는 동네 사람들인데 제가 모를 리가 없죠. 편의점 아저씨, 정육점 아저씨, 3층 301호 아저씨, 101호 부부도 봤어요.

또 누가 있었지? 아! 옆집 빌라 아저씨도 본 거 같고 호프집 아저씨도 봤어요. 그냥 이 동네 사람 대부분이 부동산에 가서 잡담하고 놀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맞아요.”


“음, 그렇군요.”


황정수가 마지막 뼈다귀를 들고 살을 발라 먹기 시작했다. 그의 식사도 이제 종점을 향해갔다.


“후식으로 커피나 마십시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자판기로 가서 밀크커피 두 잔을 뽑았다.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식사 끝나면 커피도 마셔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형사님!”


황정수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마치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사님은 경찰이 아닌 거 같아요. 전 경찰이라면 무섭고 무뚝뚝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친절하세요.”


유강인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경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섭거나 무뚝뚝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제가 부탁하고 조사하는 건데 당연히 친절해야죠.”


“경찰들이 형사님처럼 합리적이면 좋겠어요. 늦은 밤에 술 먹고 소란피웠다고 파출소에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솔직히 경찰들이 무서웠어요.”


“자신이 떳떳하다면 경찰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긴 그렇죠. … 아! 그때 파출소에서 아무 일 없이 그냥 나왔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별일 아니었어요. 물론 다시는 밤에 큰소리치지 말라고 잔소리 들었지만 ….”


“그런 거야 다음부터 조심하면 됩니다. … 식사를 다 마친 거 같으니 한가지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그게 뭡니까? 형사님.”


“2년 동안 여기 살면서 마을 주민들한테서 이상하거나 특별한 걸 느낀 적이 있나요? ”


“네에? 그게 무슨 말인지?”


“그동안 여기 살면서 마을 주민한테 느낀 점을 말하는 겁니다. 특히, 마을에서 오래 산 터줏대감들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황정수가 잠시 생각하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치고 말했다.


“아! 그거요. 좀 있긴 했죠. 평화 부동산에 사람들이 수시로 모이는 게 좀 이상했어요. 사람들이 비밀리에 뭔가를 쑥떡 대는 거 같았어요. 일반적인 부동산으로 보이지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장사하는 가게보다 사람들의 아지트예요.”


“아지트라!”


“네, 아지트요. 그리고 일요일에는 동네가 갑자기 휑해져요. 다 절이나 교회, 성당, 복지시설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일요일 아침마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새 옷을 입고 나와요. 그러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와요. 교회나 성당, 절이 똑같은 시간에 시작하고 끝나지는 않잖아요. 그게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요? 주민들이 다양한 종교를 믿는데 같은 시간에 나갔다가 같은 시간에 돌아온다고요?”


“네, 거의 같은 시간이에요.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그리고 제가 이사 왔을 때 402호 아줌마, 그 아줌마가 자기 성당에 나오라고 권했어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저는 무교라서 거절했어요. 다음날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샀는데 거기 아저씨가 저한테 말했어요. 자기가 절을 다니는데, 절이 참 좋다고 같이 다니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다시는 그 정육점에 안 갔죠.”


“그래요? 동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포교한다는 말이군요.”


“네! 그런데 종교뿐만 아니라 복지 단체도 가더라고요. 뭐 재능 기부한다고 했어요. 부동산 아줌마가 저에게 무슨 소식지를 줬는데 무슨 복지 단체였는데….”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보아하니 마을 주민이 권하는 종교 단체나 복지시설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맞나요?”


“네, 저는 그냥 혼자 있는 거 좋아해서 … 일요일에는 쉬어야죠. 몸도 피곤하고.”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황정수의 상세한 답변에 만족한 듯 방긋 웃었다.


황정수의 식사가 다 끝났다. 그가 냉수를 쭉 마셨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식사를 다 한 거 같으니 이제 일어나죠.”


황정수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감사 인사했다.


“저녁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사님!”


“무슨 별말씀을. 덕분에 제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황정수씨.”


유강인이 카운터로 가서 감자탕과 공깃밥을 계산했다.


황정수는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배를 두드렸다. 그는 혼자서 중짜 감자탕 고기를 다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만족한 모습이었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갈게요. 형사님!”


“네, 잘 가세요.”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꾸벅 인사했다. 유강인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유강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황정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층 어두워진 마을을 쭉 둘러보았다. 저 멀리에 행운 빌라도 보였다.


“뭔가 이 동네는 느낌이 이상해. 느낌이 좋지 않아.”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제 사건이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커. 외지에서 온 범인의 묻지마식 살인과 잘 아는 자의 치밀하고 계획된 범죄야. … 이 사건은 후자일 가능성이 큰 거 같아.’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하늘을 쳐다봤다.


어둠이 기세좋게 도시를 덮치고 있었다.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가운산동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유강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집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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