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강선애가 빵 포장지와 우유 팩을 차곡차곡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을 보다가 말했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처음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없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
강선애가 고통스러운 과거가 생각났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강인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밝게 지내고 있어요. 부모님과 동생 모두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언제까지 울면서 지낼 수는 없잖아요.”
강선애가 애써 웃으며 유강인을 쳐다봤다.
유강인이 슬픔에 가득 찬 미소를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강선애가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건 조사는 예전에 다 끝났는데 … 다시 조사가 시작된 건가요?”
유강인이 답했다.
“지금은 재수사 단계는 아닙니다. 재수사를 위한 단서를 찾고 있습니다. 확실한 단서를 잡으면 본격적 재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유강인의 말에 강선애의 눈이 수박처럼 커졌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아! 그렇다면, 확실한 단서만 잡으면 … 부모님과 동생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긴, 그렇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죠.”
강선애가 절망감을 느낀 듯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 절망감은 10년부터 시작됐다.
강선애가 한동안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유강인은 강선애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바지 주머니에서 사건 수첩을 꺼냈다. 수첩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후 강선애의 표정이 밝아졌다.
유강인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수첩을 덮었다. 그가 말했다.
“저, 강선애씨. 지금부터 질문해도 될까요?”
강선애가 고개를 돌려 유강인을 바라봤다. 그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건 당시 방에서 주무셨는데, 사실입니까?”
강선애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아요. 그날 제 방에서 잠자고 있었어요. 다음날 과제 제출이 있어서 새벽 1시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 1시 반쯤에 잠들었어요.”
“곤히 잠들어서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셨는데 … 이게 사실입니까?”
“네, 정신없이 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문 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범행 당시 범인이 손쉽게 문을 열었습니다. 301호 열쇠를 복제해서 문을 연 거 같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이 있나요?”
“저는 열쇠를 잃어버린 적이 없어요. 동생도 성격이 꼼꼼해서 그런 적이 없을 거예요. 엄마도 아빠도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음, 그렇군요.”
유강인이 질문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급하게 말했다.
“혹시 사건 발생 전 빌라에서 무슨 모임이 있었나요?”
“모임이요?”
“빌라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친목을 도모한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모임에 참석하셨나요?”
“아! 성연모를 말하는 거 같네요.”
“네? 성연모라고요?”
유강인이 이게 뭔 소리 인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연모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강선애에게 되물었다.
강선애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성연모는 성동연합모임의 준말입니다. 성연모는 자선과 봉사를 실천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교육받을 기회를 놓친 분들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아! 그런 단체가 있었군요. 강선애씨는 성연모라는 단체를 잘 아는 거 같군요. 무슨 관련이 있나요?”
“제가 현재, 성연모 총무를 맡고 있거든요.”
강선애가 말을 마치고 안색이 환해졌다. 마치 큰 은혜를 입은 듯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손을 모았다.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어~?”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기도하는 강선애를 보고 당황했다.
그녀의 모습은 종교단체에서 기도하는 신자 같았다.
그녀가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무슨 기도문 같았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며 한동안 눈을 꼭 감았다.
5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강선애가 두 눈을 떴다. 무안한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형사님. 갑자기 기도드리고 싶어서 무례를 범했네요. 지금 조사 중이신데 ….”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뭐, 괜찮습니다. … 기도야 언제든지 드릴 수 있으니까요. 질문을 이이도 될까요?”
“네, 계속 질문하세요.”
“빌라 주민들이 성연모와 관련해서 자주 모였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보름에 한 번씩 모임을 했어요. 빌라에 거주하는 성연모 회원들이 모두 모였어요. 그렇게 친목을 도모했어요.”
“강선애씨도 참석하셨나요?”
“그럼요. 저와 동생, 부모님도 모두 참석했어요. 101호 김철수님이 친목 모임 회장님이었어요.”
“아! 그렇군요.”
강선애의 말에 유강인이 사건 파일을 다시 떠올렸다. 파일에는 성연모라는 말이 없었다.
‘왜 성연모를 조사하지 않았지? 성연모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건가? 그렇다면 사건 수사가 처음부터 잘 못 된 거야.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어. 마달식 소장님이 말씀하셨어. 수사는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아쉬움에 고개를 흔들었다. 초기 수사에 빈틈이 있었던 거 같았다. 그러다 뭐가 생각이 난 듯 급하게 말했다.
“402호 라미경씨도 회원이었나요?”
“물론이죠. 우리 성연모 이사십니다. 중요한 일을 맡고 계세요.”
“그러면 401호 홍은희씨는?”
“그분은 안타깝게도 저희 회원이 아닙니다. 빌라에 거주하실 때 회원들이 여러 번 부탁했지만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라미경씨는 회원이고 홍은희씨는 회원이 아니군요.”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시죠?”
“별거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모두 회원이셨나요?”
“네, 두 분 다 회원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감사셨고 어머니는 총무였어요. 저는 평회원이었다가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았어요.”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려다. 그가 급히 물었다.
“아버지가 감사셨고 어머니가 총무셨다고요? 그럼 두 분 다 성연모에서 중요한 일을 하셨군요.”
“그렇죠.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지만, 회계 관련 업무를 하는 총무와 이를 조사하는 감사는 아주 중요한 직책이죠. 회장의 오른팔과 외팔과 같아요.”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건 당시에는 성연모를 언급하지 않으셨는데 …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때는 제가 어려서 성연모를 잘 몰랐어요. 그냥 부모님이 자선단체에 가입하셔서 좋은 일 한다고 들었어요. 그때 성연모가 보름에 한 번씩 101호에 모였는데, 단순한 친목 모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랬군요. 지금은 부모님을 이어서 성연모 총무시군요.”
“그렇죠. … 부모님과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 넋을 놓고 살았는데 성연모 회장님이 저를 인도해 주셨어요.
현재 좋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새 삶을 살고 있어요. 불우한 이웃을 찾아가 희망을 드리고 아낌없이 재능 기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강선애가 말을 하다가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성연모 회장을 말할 때였다.
‘그렇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강선애의 모습은 종교인 그 자체였다.
그가 넌지시 말을 이었다.
“성연모가 종교단체인가요?”
“네에? 아닙니다. 그런 단체가 아닙니다. 자선 봉사 단체입니다.”
강선애가 화들짝 놀라서 서둘러 말했다.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보였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묵묵히 바라봤다.
하늘은 거짓 없이 푸르렀지만, 앞에 있는 여인은 그런 거 같지 않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 어떤 분이시죠?”
“회장님이요? 그분은 … 우리는 인도하시는 선생님입니다. 진정한 스승님이라 할 수 있어요. 그분의 말씀을 듣고 크나큰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이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학문과 명상에 매진하고 있어요. 우리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강선애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경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스승님의 강연하던 중이었어요. 스승인이 말씀을 멈추고 한 손을 드셨어요. 창문을 가리키시더니 하늘을 보라고 했어요. 그때, 창문 너머에 황홀한 무지개가 있었어요. 그것도 아주 선명했어요!
사람들이 무지개를 보면서 스승님의 영험함에 감탄했어요. 스승님의 말씀은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았어요.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덜어주는 활력소와 같았어요. 그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강선애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 현상인 무지개를 보고 스승님의 은복이라며 감탄했다.
‘회장한테서 정신적 위안을 얻는 건가?’
유강인이 그럴 수도 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강선애는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인지 표정이 밝았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난 거 같았다.
유강인이 강선애에게 말했다.
“말씀을 들으니 회장님이 정신적 지주 같군요.”
“맞아요! 형사님은 족집게예요! 어찌 제 마음을 그리 잘 아세요. 우리 성연모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매일매일 봉사활동하고 있어요.
오늘도 오후에 독고 어르신 집을 방문해 맛있는 저녁을 대접할 거예요. 그래서 오전에 형사님을 만나는 거예요. 오후부터는 바빠서요.
오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참 좋네요. 어서 어르신들께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네요. 호호호!”
“훌륭하십니다.”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크나큰 아픔을 나눔이라는 사랑으로 승화하는 강선애를 보고 그녀가 대단하다고 여겼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선애씨, 오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형사님! 반드시 단서를 잡아서 우리 가족을 해친 범인을 꼭 잡아주세요. 간절히 부탁해요. 범인을 기필코 잡아야 죽어서도 눈을 감을 거 같아요.”
강선애가 두 손을 꼭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간절한 말이었다.
가냘픈 목소리였지만, 유강인의 가슴에 엄청난 울림으로 다가왔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단서를 잡겠습니다. 그게 뭐가 댔든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강선애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렇게 공원을 떠났다.
강선애는 멀리 사라지는 유강인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그녀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간절히 빌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범인을 잡기를 ….
그때!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둘이 함께 과자점’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과자점 출입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빵집 주인이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문틈으로 내밀고 뭔가를 찍고 있었다.
- 둘이 함께 과자점 주인 정일권
정일권은 40대 남자였다. 흰색 제빵사 모자와 옷을 입었다. 큰 덩치에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그는 금테 안경을 썼다. 안경 뒤에서 작은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빵집 주인은 유강인와 강선애를 찍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몰래 찍었다.
유강인이 떠나고 강선애가 몸을 일으켜 빵집으로 다가오자 황급히 가게 문을 닫았다.
“급하다! 지금 오고 있네. 이런!”
빵집 주인이 서둘렀다. 카메라에서 메모리카드를 꺼내 노트북에 꽂았다. 사진 파일을 하드에 저장하고 누군가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빵집 문이 열렸다.
강선애가 활짝 웃는 낯으로 빵집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빵집 주인을 보고 가볍게 인사하고 말했다.
“사장님! 오늘 빵 너무 맛있어요. 더 사려고 왔어요. 점심때 간식으로 먹으려고요.”
강선애의 등장에 빵집 주인이 화들짝 놀랐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트북 덮개를 급히 닫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선애씨가 또 왔네. 그래요. 어서 골라요. 내가 서비스로 단팥빵 하나 드릴게요.”
“정말요! 사장님, 정말 감사해요.”
“아이고, 선애씨는 우리 집 최고 단골인데.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자! 어서 골라요.”
강선애가 빵집 주인의 말에 신이 나서 빵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생 크림빵, 단팥빵, 소금빵을 골라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선애씨, 오늘 무슨 날인가 봐? 남자를 다 만나고 … 아까 보니 같이 공원으로 가던데.”
빵집 주인의 말에 강선애의 얼굴이 뻘게졌다. 홍당무 같았다. 그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남자 아니에요. 형사님이에요. 1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해서 단서를 찾는다기에 만난 거예요.”
“사건을 다시 재조사한다고요?”
“네! 형사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해요!.”
강선애의 말에 빵집 주인의 낯빛이 급속히 어두워졌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받았다.
“그야 당연하지, 선애씨가 한을 풀어야지.”
강선애가 빵을 가방에 넣고 방긋 웃었다. 빵집 주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빵집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멀리 사라지자, 빵집 주인이 급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