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_08_옥탑방 황정수

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by woodolee

유강인이 신축 아파트 단지를 지나갔다. 29층짜리 고층 아파트였다.

예전에는 5층 아파트가 이 자리를 지켰었다. 그러다 재개발 붐을 타고 매끈한 고층 아파트로 변모했다.

옛날 5층 아파트는 특유의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분위가 싹 사라졌다. 대신 높디높은 고층 빌딩의 삭막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시선을 압도했다.

신축 아파트 단지를 쭉 따라가면 사거리 앞에 큰 골목이 있었다.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옛날 동네가 남아 있었다. 8~90년대에 지은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즐비했다.

그 허름한 건물들을 보면 2~30년 전 기억들이 저절로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길을 걷던 유강인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가 하하하! 웃었다. 맛있기로 소문난 분식집에 들어가 컵 떡볶이를 들고 맛나게 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입술이 아릴 정도로 무진장 매웠지만, 그만큼 맛이었다.

‘그때, 떡볶이가 참 매웠는데 … 그래도 애써 참으며 먹었지.’

참 즐거운 추억이었다.

유강인이 빙긋 웃었다. 떡볶이가 너무나도 매워서 입을 벌리고 혀를 달래던 그 시절을 생각했다.

10분이 지났다.

유강인이 한적한 동네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의 눈에 CCTV 표지판이 들어왔다.

10년 전, 행운 빌라에 참극이 일어났을 때 가운산동에는 CCTV가 세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범인의 도주를 제대로 추적할 수 없었다. 이에 민원이 쏟아졌다. CCTV를 추가로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구청에서 민원을 받아들였다. 한발 늦은 조치였지만, 동네 골목마다 CCTV를 설치했다. 그 덕분인지 그 이후로는 큰 사건 사고가 없었다.

10년 지난 지금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픈 기억을 다 잊고 평온하게 살고 있는 거 같았다.

“음~! 이쪽으로 가야겠군.”

유강인이 기억을 되새겼다. 사건 파일에서 본 동네 약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행운 빌라로 가려면 신축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큰 골목으로 들어가 1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그런 다음 우측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걸으며 행운 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앞에 작은 골목이 보였다.

유강인이 우측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CCTV 한 대가 바로 보였다.

그 CCTV는 범인을 찍었던 CCTV였다.

“저거군.”

유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10년 전 그날의 진실을 지켜봤던 CCTV를 유심히 살폈다.

“범인이 이쪽으로 이동했다는 말이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분을 더 걷자, 저 앞에 행운 빌라가 보였다. 빌라 벽에 행운이라는 흰 글자가 커다랗게 보였다.

“행운!”

반가운 말이지만, 오늘따라 불길해 보였다.

유강인은 헛기침을 했다. 오늘따라 행운이라는 두 글자가 반갑지 않았다. 행운이 깃들기 바라며 지은 빌라에 단란한 가족 셋이 죽고 말았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 입구에 ‘OK 24시 편의점’과 그 옆에 ‘평화 부동산’이 있었다.

문제의 행운 빌라는 저 앞에 있었다. 행운빌라 뒤에는 ‘행운 정육점’이 있었다. 정육점은 행운 빌라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거 같았다.

유강인이 행운빌라 앞에 다다랐다. 그가 빌라 곳곳을 살폈다. 빌라는 오래된 4층 벽돌 건물이었다.

빌라의 외관은 형편없었다.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여기저기에 시커먼 때가 가득했고 무너진 곳도 있었다. 땅과 벽에 갈라진 곳도 많았다.

그렇게 볼품이 없었지만, 붉은 벽돌만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연륜이 느껴지며 편안함을 주었다. 그건 벽돌집만의 친숙함과 아늑함이었다.

빌라 앞에는 성인 가슴팍 높이 벽돌담이 있었다.

담 뒤로는 넓지 않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잿빛 시멘트였고 화분 몇 개가 있었다. 화분은 풀과 나무없이 흙만 잔뜩 채워져 있었다.

유강인이 30년 전을 상상했다. 마당에 화사한 꽃이 만발하고 나뭇잎이 무성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검은 흙으로 채운 화분만 남았다.

건물 중앙에 공동 출입구가 있었다. 1층은 반지하였다. 1층 창문은 먼지를 막기 위해 꼭 닫혀 있었다.

“음!”

유강인이 빌라 전체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공동 출입구로 들어갔다.

그가 계단을 올랐다. 한발 한발 발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옛날 집은 소음이 잘 울리기 마련이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소리가 크게 울리는군. … 그럼 301호 바로 위층에 살았던 홍은희 진술이 거짓말일 리가 없어. 더군다나 야밤이라 소리가 더 잘 들렸을 거야.

라미경이 비명을 질렀고 몇 초 후에 누군가가 뛰어나갔다는 말도 맞을 거야.’

유강인이 2층 복도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올랐다.

이윽고

3층 복도가 보였다. 복도로 올라가자 301호가 바로 앞에 있었다.

301호는 10년 전에 처참한 비극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건 현장은 그대로였다. 낡아버린 현관문과 복도가 그날의 참상을 증언했다.

유강인의 두 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301호 안에서 벌어졌던 참상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사건 파일에 따르면 범인은 문을 열고 들어갔어. 문단속을 제대로 못 했거나 아니면 범인이 열쇠를 갖고 있었던 거야.

문이 열려있을 확률은 높지 않아. 범인이 열쇠를 훔쳤거나 아니면 복제했을 거 같아. … 당시 열쇠 복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열쇠만 갖고 가면 열쇠방에서 쉽게 복제할 수 있었을 거야.’

유강인이 생각에 몰두했다.

‘이건 분명 301호를 목표로 한 사건이다. 일반적인 강도 살인과 그 질이 달라.

범인은 안방에서 부부와 아들을 죽이고 복도로 나왔어. 딸이 돈을 훔쳤다곤 했지만 이건 강도 살인으로 위장하려는 속임수가 분명해.’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4층으로 이동했다.

그가 4층 복도에 다다랐다. 복도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유강인이 계단 쪽으로 가서 그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택배기사가 302호에 물건을 내려놓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택배기였군. 급하게 올라오니 소리만 정말 크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그만 내려갈까?”

유강인이 현장 검증을 마치고 계단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위에 있는 계단이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그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고 호기심을 느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번 … 옥상으로 올라 가볼까?”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끝에 문이 있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문을 열자 넓은 옥상이 보였다.

“오호! 넓은 곳이군.”

유강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살폈다. 옥상 우측에 작은 방이 있었다. 옥탑방이었다.

옥상은 전망이 참 좋았다. 가운산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유강인이 옥상 난간으로 걸어가 걸어왔던 길을 살폈다. 골목 앞에서 범인을 찍었던 CCTV가 저 멀리 보였다.

사건 당시, 범인은 태연하게 CCTV 아래를 지나갔다. 빌라로 들어가 범행을 저지른 후, CCTV 아래를 다시 지나쳐 도망갔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CCTV를 중심으로 범인의 동선을 살폈다.

그가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동네의 지리를 익혔다.

‘옛날 건물이 그대로니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아. 대부분 가게들이 10년 전에도 있었을 거야.’

유강인이 생각을 마쳤다. 이제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가 난간에서 몸을 돌렸다.

그때 끼익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옥탑방 현관문이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 행운빌라 옥탑방 거주자, 황정수 -


20대 중반 청년이 옥탑방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큰 키에 비쩍 말랐다.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다. 금테 안경을 썼고 동그랗고 작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얼굴이 말라서인지 광대뼈가 두드러졌다.

“헉!”

청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옥상에 있자 매우 놀란 눈치였다. 그러다 서둘러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유강인을 모른 척하고 옥상 문으로 향했다.

“저기요!”

유강인이 급히 청년을 불렀다.

“네에?”

청년이 걸음을 멈췄다. 당황한 거 같았다. 그가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유강인의 얼굴을 보고 급히 말했다.

“저~. 왜 그러시는데요? 전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유강인이 정중하게 말했다.

“실례지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여기 옥탑방에 사시나요?”

유강인의 말에 청년이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두어 발 뒷걸음을 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데요, 오, 옥탑방에 살고 있는데요. … 혹, 주인아주머니가 보내서 왔어요? 월세는 다음 달 중순에 꼭 드린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사장님이 밀린 월급을 그때 주신다고 했어요. 제발 믿어주세요! 선생님!”

청년이 펑펑 우는 얼굴로 유강인에 통사정하기 시작했다.

“네에?”

청년의 말에 유강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문이 막혔다.

청년이 울면서 말했다.

“설마, 주인아주머니가 저보고 나가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이제 겨울인데 어디로 나가요? 얼마 전에 새 직장을 얻었어요. 좋은 직장이라 월급이 꼬박꼬박 나올 거예요.

전에 일했던 사장님이 반드시 밀린 월급을 주신다고 했어요. 그러면 다음 달이면 그동안 밀린 월세를 싹 다 갚을 수 있어요. 제발 주인아주머니에게 잘 말해주세요. 아저씨! 흑!”

청년이 유강인에게 성큼 걸어왔다. 유강인의 손을 꼭 잡고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를 오해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는 청년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무척 아팠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이렇게까지 눈물을 흘리며 사정할까? 세상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유강인 생각을 마치고 빙긋 웃었다. 그가 말했다.

“울지 마세요. 전 월세를 독촉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뭐, 뭐라고요? … 그럼 누구세요?”

서글피 울던 청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유강인이 신분을 밝혔다.

“전 경찰입니다. 예전 301호에 있었던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습니다.”

“301호요?”

“네! 세간에 행운빌라 살인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죠.”

청년이 아! 하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말했다.

“아! 그 사건이요. 저도 들었어요. 301호에 큰일 있었다고! 그런데 아저씨가 진짜 경찰이 맞아요?”

청년의 말에 유강인이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줬다.

경찰 신분증을 자세히 살피던 청년이 깜짝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력반 형사님이시구나! 아이고! 다행이네요. 난 또 주인아주머니가 밀린 월세를 독촉하는 줄 알았잖아요. 미리 말씀해 주셔야죠! 괜히 긴장했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사건을 재조사 중인데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겁니다.”

청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왜요? 저는 행운빌라 사건이랑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그때 저는 유치원을 다녔을 거 같은데 ….”

청년의 말에 유강인이 두 손을 들었다. 그를 안심시키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냥 동네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싶어서요. 동네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게 없어 보였습니다.”

“글쎄요, 전 여기로 이사 온 지 겨우 2년밖에 안 돼서 … 제가 뭘 알겠어요.”

“2년이면 충분하죠, 동네 분위기를 알기에는 … 혹 시간이 되시면 부탁합니다.”

“지금 나가서 저녁 먹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

“그래요? 저도 출출한데 같이 식사하죠? 제가 계산할 테니 같이 갑시다.”

“저, 정말이요?”

유강인의 말에 청년의 두 눈을 번쩍 떴다.

“이 동네에서 맛있는 집으로 갑시다. 든든히 먹고 일하러 가셔야죠.”

유강인의 말에 청년이 급히 말했다.

“그럼 비싼 거 시켜도 되나요?”

유강인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경찰 월급에 어울리는 식사라면 괜찮습니다.”

“저, 감자탕 먹고 싶어요. 우리 동네에 감자탕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집이 있어요.”

“감자탕! 좋죠. 같이 갑시다. 오랜만에 뼈다귀 살 발라 봅시다.”

“좋아요. 그럼 빨리 가요.”

청년이 신이 난 듯 앞장섰다. 옥상 문을 활짝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유강인도 그를 따라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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