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그럼 자네 말은 행운 빌라 사람들이 범인과 내통했다는 말이야?”
박훈정 반장의 말에 유강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행운 빌라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범인이 도망칠 때, 부동산에서 뛰쳐나온 셋 있습니다. 셋이 범인의 뒷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한 패거리로 보입니다.”
“마을 전체가 … 범인과 한 패거리라고?”
“그건 아닙니다. 401호 홍은희처럼 일부 사람은 범인과 관련이 없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행운 빌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범인과 공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박훈정 반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두 주먹을 꽉 쥐고 말을 이었다.
“어디까지나 제 추리입니다. 단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그래, 알았어.”
박훈정이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장님,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은 10년 동안 경찰에서 총력을 다해 수사했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단서 하나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에서 한 가지 확실히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경찰은 범인을 둘 중의 하나로 봤습니다. 외부인이거나 내부인으로 봤습니다. 오랜 기간 외부인을 찾았고 내부인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 .”
“그래. 결론이 뭐지?”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부인이 범행을 지시하고 내부인이 이를 실행한 조직범죄로 결론 내렸습니다. 범죄의 증거는 내부인이 감쪽같이 은폐하고 제거했습니다.”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반장이 서둘러 말했다.
“외부인과 내부인이 공모했다고? 그래서 경찰이 단서를 잡지 못했다고? 외부인 따로 내부인 따로 수사해서?”
“네! 그렇습니다.”
유강인이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고! 세상에!!”
“그러게나 말입니다!”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매우 놀란 나머지 한동안 아무런 말로 못 했다. 둘이 서로 쳐다봤다. 눈빛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앞에 서 있는 유강인의 입에서 상상조차 못 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둘의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둘은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을 맡은 후, 오랜 시간 사건 파일을 분석하고 참고인 조사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동안 외부인과 내부인이 공모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호식 형사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이! 유형사. 이거 형사 그만두면 소설가 해도 되겠어. 아주 상상력이 풍부해! 넘쳐!”
“네에?”
유강인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선배의 말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칭찬 같기도 했고 핀잔 같기도 했다. 뉘앙스가 그랬다.
‘내가 실수한 게 있나? 난 그냥 조사한 내용과 추리를 보고한 거 뿐인데 …’
이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유강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떨리는 가슴을 달랬다.
한동안 말이 없던 박훈정 반장이 슬쩍 웃고 입을 열었다.
“좋아! 아주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봤군. 역시 신입의 패기가 좋군. 그래, 그러면 사건을 어떻게 풀 수가 있지? 단서가 있나?”
유강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단서는 ….”
유강인이 뜸을 들이자 이호식 형사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두 눈이 호떡처럼 커졌다. 이형사가 크게 소리쳤다.
“빨리 말해! 그게 뭐야?”
사무실이 울리는 큰 소리였다. 업무를 보던 형사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난 곳은 반장 자리였다. 그곳에 반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 유강인이 서 있었다. 그들이 셋을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지?”
“이선배님이 왜 저러시지?”
형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 보기에도 셋이 중요한 말을 나누는 거 같았다. 그들이 입술에 침을 묻히고 반장과 최고참 형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시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가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보고가 이제 절정에 달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건 바로 단서였다. 박훈정 반장이 분명 말했다.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을 7일 동안 재조사해서 단서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바로 지금, 그 단서를 말해야 할 때였다.
유강인이 목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서는 바로 … 강선애입니다.”
“뭐? 강선애라고?”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답을 들은 듯했다.
잠시 후 이호식 형사가 힘들게 말했다.
“유형사,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강선애가 사건의 열쇠이자 단서라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선배님.”
유강인의 말에 박훈정 반장이 잠깐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선애가 사건에서 중요하다는 건 잘 알겠네. 그런데 강선애가 단서라고? 강선애가 왜 단서지?”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강선애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핵심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강선애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인 부모가 오래전부터 성동연합모임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성동연합모임은 겉으로 볼 때 봉사 단체지만 실은 사이비 종교 단체의 모기업 같습니다.”
“뭐라고? 부모가 사이비랑 관련이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감사였고 어머니는 총무였습니다. 강선애도 부모처럼 성동연합모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아 현재 총무입니다.”
“감사와 총무라!”
“네, 그렇습니다. 성동연합모임의 주인은 사이비 종교 교주입니다. 그자는 성주라 불렸습니다. 성주는 성동연합모임의 수장으로 각 종교 단체를 자회사처럼 운영하는 거 같습니다.”
“각 종교 단체가 자회사라!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신흥 종교 같군.”
“그런 거 같네요.”
박훈정 반장의 말에 이호식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여 수긍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교회 예배가 끝난 후 신도 회식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아주 비싼 한우 갈비를 먹었습니다. 성주가 하사한 활동비로 회식한다고 들었습니다.”
“돈을 뿌리는 자가 대장이야. 성주가 교주가 맞는 거 같군.”
“예배가 끝날 무렵 성주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습니다. 그때 성주를 확인했습니다. 성주는 아주 비싼 외제 차를 타고 왔습니다. 운전사도 있었습니다. 성주는 딱 봐도 대단한 재력가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성주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측근으로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성동연합모임 총무인 강선애였습니다.”
“오우! 그래.”
“성동연합모임 총무 강선애가 성주 옆에 있다는 점에서 성주는 성동연합모임의 주인이 확실합니다. 성동연합모임에 연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합은 각 종교 단체를 아우른다는 뜻 같습니다.”
“아!”
이호식 형사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뭐가 갑자기 생각난 거 같았다. 그가 박훈정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피해자 부부가 사이비 종교 감사와 총무라면 … 조직의 돈을 관리하고 이를 따지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혹?”
“뭐?”
박훈정 반장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순간!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해자 부부가 성동연합모임의 감사와 총무였다는 말은 사이비 종교의 감사와 총무였다는 말과 같아. 사이비 종교는 아주 비밀리에 거액이 오가기 마련이고 … 감사와 총무는 그 중심에 있고 그 둘이 비참하게 죽었다는 말은, 사이비 종교에서 갈등이 일어나 둘을 죽였다는 말과 같아. 결국, 성주가 이 짓을 했다는 뜻인데 … 유형사,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건가?”
유강인이 시원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제 추리지만, 사건에 감춰진 비밀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이비 종교 단체의 핵심은 돈과 권력입니다. 겉으로는 영생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이룰 수 있다고 떠들지만, 그건 신도들을 속이는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들을 포섭할 수 있고 사람들을 홀리는 쇼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사기 범죄도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듯 사이비 종교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강선애의 부모가 성주의 돈과 권력에 도전했다면 일인자인 성주가 충분히 분노할 일입니다. 강선애 아버지가 감사라는 점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감사는 비리를 적발하는 자리입니다. 그 비리 때문에 성주가 참극을 벌였을 수 있습니다.”
박훈정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햇다.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군. 사이비 종교뿐만 아니라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자들이 널려 있긴 하지. 그럼, 강선애를 통해서 뭘 알아낼 수 있지?”
“강선애는 현재 성동연합모임의 총무입니다. 조직에서 총무는 대단한 실세입니다. 돈과 사무를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강선애의 나이는 고작 30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동연합모임은 보통 조직이 아닙니다. 여러 종교 단체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큰 조직입니다. 강선애는 큰 조직을 관리하기에 상당히 젊은 나이입니다. 30살의 나이에 거금이 오가는 조직의 총무를 맡는다는 것은 자식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인자의 대단한 총애를 받는 게 분명합니다.”
“총애?”
“그렇습니다. 강선애 실제로 만났습니다. 대단한 미인이었습니다. 기품이 흘러나왔고 고상하고 우아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검은색의 수수한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그 옷의 정체를 잘 몰랐지만, 어제 생각해보니 예복 같았습니다.”
“예복이라고?”
“네! 종교 단체마다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예복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사제복과 수녀복을 입고 불교에서는 승려복을 입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넥타이를 맨 깔끔한 정장을 입습니다. 그런 차원의 예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옷은 천주교의 수녀복과 유사했습니다.”
“그럼, 자네 말은 강선애가 사이비 종교에서 무슨 중요한 역할은 한다는 건가? 혹 성녀나 성모 같은?”
“네, 맞습니다. 현재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강선애를 뭐라고 부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반장님 말씀대로 성녀나 성모의 위치 같습니다. 미혼인 여성으로 미루어 성녀의 위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녀라는 말에 이호식 형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성녀라 ….”
이형사가 고개를 흔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젠 그도 유강인의 말에 큰 흥미를 느꼈다. 이형사가 급히 말했다.
“반장님, 생각해보니 강선애가 대단한 미인인 건 맞습니다. 참고인 조사 때 강선애를 봤습니다. 그때 굉장한 미인이어서 감탄했습니다.”
“그렇군.”
박훈정 반장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호식 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유형사! 어떻게 사이비 종교에 대해 그리 잘 알아? 혹, 사이비 종교 신도였어?”
이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정색하고 말했다.
“선배님, 아닙니다. 그런 곳은 가본 적도 없습니다. 뉴스나 기사로 사건 사고를 접했고, 예전에 사이비 종교를 분석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음, 그래서 잘 아는군.”
이호식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유강인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다 박훈정 반장을 보고 말했다.
“저, 반장님. 유형사가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성동연합모임이라! 우리가 그걸 왜 몰랐을까요?”
“그때는 외부인 소행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잖아. 그때 성주라는 자가 내부 단속을 철저히 했을 수 있어.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좀 느슨해졌겠지 ….”
“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감춰왔던 진실이 드러나는군요!”
이호식 형사가 박훈정 반장의 말에 감탄했다.
박훈정 반장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그럼, 유형사! 강선애를 통해 뭘 알아낼 수 있지?”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로서는 강선애가 사건과 관련해 어느 정도 아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이비 종교와 한 몸이라면 진실을 알더라도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몸이 아니라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선애는 감사와 총무였던 부모와 일인자 성주 사이에 있는 인물입니다. 지금부터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음,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동안 강선애가 묵비권을 행사하듯 별말이 없었는데 그게 성주의 뜻일 수도 있어. 강선애가 그동안 입을 다물었다면 그 입을 열어야 하는데 어떻게 입을 열게 할 거지? 무슨 비책이라도 있나?”
유강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호식 형사가 답답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급한 성미는 여전했다.
유강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건 파일을 살펴보니 강선애에게 스토커가 있었습니다. 그 스토커는 퍽치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박훈정 반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건 강선애와 관련이 없는 일이잖아.”
유강인이 강선애를 떠올렸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두 눈에 아른거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원피스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볼 때 스토커는 강선애 때문에 죽은 거 같습니다. 아름다운 성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뭐, 뭐라고?”
박훈정 반장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호식 형사도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뒤로 두 발 물러섰다.
한동안의 침묵이 사무실에 흘렀다.
다른 형사들은 귀를 쫑긋했었다. 셋의 대화를 엿들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모두 화들짝 놀랐다.
형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거를 직감했다.
차수호 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저, 반장님, 이선배님 혹 무슨 일이 있나요?”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답을 하지 못했다. 매우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 거 같았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 힘을 모았다. 그는 점점 기력이 떨어졌다. 7일 동안 쌓였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 같았다. 그가 남은 힘을 자아내어 말했다.
“반장님, 사건 목격자인 라미경이 얼떨결에 말한 게 있습니다. 강선애의 미모를 보고 뒤쫓아온 남학생들을 쫓아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빗자루를 들고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닌데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이 일로 미루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성녀 강선애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강선애를 쫓아다니는 스토커를 처단한 거 같습니다. 둘째, 목격자 라미경도 사이비 종교 신도입니다. 따라서 목격자 라미경의 진술은 믿을 수 없습니다. 성주가 시키는 대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잠시 후 박훈정 반장이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충격을 이겨냈다. 이마에서 식은땀 하나가 쭉 흘러내렸다. 그는 백전노장이었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유형사 말대로라면 강선애가 성녀라서 성주가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야. 부모와 동생을 죽였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따라서 강선애는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아닙니다. 강선애는 처음부터 타깃이 아니었습니다. 타깃은 부모였고 어린 아들은 부모 옆에 있어서 죽은 거 같습니다.”
“강선애가 뭘 알고 있을 수 있다고?”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추리대로 강선애가 성주의 총애를 받는 성녀라면 조직에 대해 잘 알 겁니다. 이 사건을 풀려면 사이비 종교 단체의 정체를 먼저 밝혀야 합니다.”
“강선애가 성녀라면 쉽사리 입을 열거 같지 않은데 어떻게 설득할 거지?”
유강인의 두 눈이 번쩍거렸다. 그가 마지막 힘을 자아냈다. 이제 체력이 다했다. 오랜 시간 보고를 하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갈된 체력이었지만, 보고를 끝마쳐야 했다. 그가 두 다리에 힘을 팍 주고 젖먹던 힘을 짜내어 크게 외쳤다.
“강선애가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강선애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사이비 종교의 성녀 역할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절망해 이상세계로 도피했습니다. 가족을 잃고 영생, 기쁨과 같은 꿈속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를 북돋아야 합니다. 현실 도피는 원수에게 이용만 당할 뿐임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세상은 얼음처럼 차디차지만,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유강인이 모든 보고를 마쳤다.
사무실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를 비롯한 모든 형사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들 모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갓 들어온 신입 형사가 하늘 같은 상관 앞에서 패기 넘치게 자기 소신을 말했다. 그것도 우렁차게!
마치 시간이 정지된 거 같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따르릉!”
사무실로 전화가 울렸다. 순간 정적이 깨졌다. 여기저기서 긴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훈정 반장과 형사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유강인을 바라봤다. 유강인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했다.
잠시 후 이호식 형사가 엄치척했다. 유강인을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박훈정 반장에게 말했다.
“저, 반장님! 유형사 손목을 어떻게 할까요? 꽉 비틀까요? 아니면…….”
박훈정 반장이 슬쩍 웃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목에 좋은 음식을 사주게. 맛있는 거로 …. 하하하!”
“네? 아! 알겠습니다. 하하하!”
박훈정 반장과 이호식 형사가 크게 웃었다. 그러자 모든 형사가 덩달아 크게 웃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모두 크게 웃었다.
큰 웃음소리 속에 형사 한 명이 웃지 않았다. 그는 유강인이었다. 그는 웃을 힘조차 남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배도 무척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