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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이나 법칙만이 과학일까요

- 도서 <향모를 땋으며>를 읽고

by 준 원 규 수

향모를 땋으며 / 로빈 윌 키머러 저/ 에이도스 / 2021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때로는 옛날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의 한 장면이 지나기도 했고

때로는 김선우 시인의 시 <거룩한 식사>가 떠올라 공감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빨간머리 앤>의 여러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을 ‘다정하다’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그 말이 참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학자로 뉴욕주립대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인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자신의 뿌리 찾기와 오랜 시간 동안 자기에게 체화된 ‘서구식’ 과학자로서의 자세, 그리고 사라진 인디언의 문화와 함께 상실된 자연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잘 엮어 이야기한다.

정부가 시혜를 베풀 듯 내놓은 인디언 정책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 매를 맞으며 인디언 말을 잊고, 영어를 배웠다던 저자의 할아버지이야기, (드라마 '빨간머리 앤'에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정책이 시행되어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떨어져 기숙학교에서 학대당하는 원주민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 입학 면접에서 왜 식물학을 공부하고 싶은지 묻는 교수의 질문에 ‘참취와 미역취가 함께 있을 때 아름다운 이유를 알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자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며 저자를 비웃고, 교양수업으로 식물학을 들을 수 있게 해 주겠다던 면접관의 이야기.

토박이 말을 지키고 있는 다섯 명의 노인들에게 사라져가는 인디언 말을 배우는 이야기 등등.

생존을 위해 버둥거리는 사이 원주민들이 잃어버린 것들 속에 담긴 자연을 인간과 대등한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 현재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하며 저자는 틈틈이 서구의 폭력적 정책과 단편화된 관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미국에 대학교수로 살고 있으면서 토박이의 반의적 의미로 서구라는 표현을 쓰는 글쓴이의 어휘적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책을 읽다 보면 잘 와닿았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많은 화학 화합물들이 자연을 병들게 하고 결국 인간마저 병들고, 이상기후를 만들며 지구 전체를 앓게 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그것이 ‘호혜성’이라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한다고 말한다면 사람이 자연 위에 있어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 시혜적으로 읽히지만 자연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대등한 대상으로 올리면 ‘그’ 혹은 ‘그녀’는 우리와 서로 사랑마저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되고 그 호혜성을 인식한다면 자연을 인위적으로 함부로 휘두르지 않게 된다.

우리가 땅을 사랑하듯 땅이 우리를 사랑해서 농작물을 내어준다고 생각하면 우리를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쁜 짓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식물은 숨 쉬는 모든 존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식물은 보편적 언어로 가르친다. 그 언어는 식량이다.”
“세 자매 방식은 우리 부족의 기본적 가르침을 내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고유한 선물과 이것을 세상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다. 개별성이 중요시되고 장려되는 것은 전체가 번성하라면 각자가 굳건히 서서 자신의 선물을 당당히 가져가 남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자매를 보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선물을 이해하고 공유할 때 공동체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호혜성은 우리의 배뿐 아니라 마음도 채운다.”


종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생태계는 건강해지고, 진화가 활발히 진행된다고 한다.

과학 역시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그런 공상을 하는데, 아무리 먼 우주까지 나아가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정의 내린 생명체만을 찾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사회 문화적 근간을 뒤바꾼 것처럼

영원하고 절대적인 원칙이 있고, 그것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서구의 앞선 기계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버려진 수많은 토박이 과학들 안에서 함께 버려졌을 다양한 관점들과 접근 방법들.

비과학적, 미개한 것이라는 비방에 감춰진 그 안에 담긴 토박이들의 오랜 시간 동안의 관찰과 상상과 지혜.

이것들은 어느 한 민족, 종족, 국가만의 상실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무언가를 땋을 때는 기본적으로 세 갈래가 필요하다.

이 향모같은 책을 땋는 데에 과학적 지식, 토박이 지식 그리고 작가의 경험이 들어가

아주 아름답고 향기로운 내용을 지은 것 같다.


다정하고 친절한, 좋은 선생님 같은 책이었다.

다운로드.jpg 출처 - 국립중앙과학관 식물정보 / 향모 -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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