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게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 때, 나는 많이 외로웠고 사람의 온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일상적으로 내 열등감을 부추기는 말들을 듣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 내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손을 내밀어 주고,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며 먼저 다가온 사람이 그녀였다.
그녀는 늘 나를 챙겨주었고
그녀는 늘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그녀와 가까워진 후 나는 종종 그녀에게 벌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내가 그녀를 기분 나쁘게 하면 나를 따돌리고,
내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며칠 동안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나면 그녀는 조곤조곤 나를 꾸짖었다.
내가 이성 교제를 시작하자 그녀는 틈만 나면 내 부족한 부분을 들먹였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너는 이것밖에 안 되는데, 저 사람은 그렇게나 대단해서 결혼이야기라도 나오면 너 상처 받지 않겠냐.”
로 압축할 수 있는 말들을 했었다.
그녀의 친절함과 배려심을 믿고 있던 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악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악의는 별 게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소개해주면 그들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는 것.
계약직인 자신과 달리 내가 정규직이라는 것.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들을 나는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음에도 관심없어 하는 내 태도... 등등
작고 사소한 것들이 그녀에게는 질투였고, 시기였겠지만
그녀는 지금도 그 시절의 자신이 나를 시기했노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잔잔한 수면을 보면 돌을 던져 그 흩어지는 물결을 구경하고,
아이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다보면 문득 짓궂은 장난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처럼,
그저 별 볼 것 없는 악의를 그녀는 웃으며 내게 던지고 있었던 거다.
아무런 계획도, 의도도 없이.
그 악의의 씨앗이 어떤 형태가 될지 그녀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을 테니.
그러므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순진한 얼굴로 던진 씨앗 같은 악의가 적당한 상황을 만나 자라게 되면
우연과 나의 선택만 남고, 악의의 뿌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