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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야겠다

by 준 원 규 수

오늘은 구역질 올라올 만큼 힘겨운 날이니

시장에 가야겠다



내 앞에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날

흙냄새, 생선 냄새, 튀김 냄새, 고기 냄새

파는 소리, 사는 소리, 길 비키라는 소리

웃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화내는 소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조금은 흐트러진 시장에 가면



내놓은 지 한참 돼 시들시들한 인내가 상추처럼

빨간 대야에 담겨있고

손님이 고른 갈치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잘린 내 오늘이 대가리처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온갖 생선살이 뒤섞인 어묵처럼 내 온갖 마음이

기름 속에 들어가 자글자글 튀겨진다.

따끈따끈한 무기력을 꼬치에 꽂아

야금야금 깨물어 먹으며 골목 하나를 더 돌아보면

내일은, 다음은

기대했던 내 희망들이

“뻥이요”

튀겨져 비닐봉지에 담긴다.



그러나

어제 못 판 배추를 뜯어

삶아서 된장 무쳐 먹으면 맛있지

손님에게 덤으로 넣어주고,

우리집 게 제일 싱싱해 이거보다 좋은 거 없어

자신만만하게 제 물건을 자랑하고,

깁스한 손으로 늦은 점심을 먹다

이거 얼마예요

소리에 입가를 닦으며 달려 나오고,

자꾸만 값을 후려치는 막무가내 손님에게

잔뜩 짜증 난 얼굴로 퉁사리를 놓다가도

손님이 멋대로 뒤집어 놓은 물건들을 다독다독

정리하며 가볍게 한숨 쉬다 웃는 얼굴로 일어서기도 하고,

널찍한 좌판 하나도 얻지 못해 시장 끝머리 담벼락 그늘 속에

텃밭에서 따왔을 몇 가지 푸성귀를 내놓고 졸기도 하는,


어떻게든 그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그 모습 속에서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호떡 속에 가득 채워져 한입에 줄줄 흐르는

꿀 같은 희망을 핥게 된다.

시들시들한 희망이나마

비닐봉지 한가득 담아 오게 된다.

오늘치의 힘겨움을

시장 한구석 쓰레기장에 내려놓고 오게 된다.



열심히 오늘을 팔아보자고,

찬찬히 더 좋은 내일을 골라오자고

그러려면 힘들어도

시장 같은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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