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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Oct 17. 2024

내가 언니를 죽였다

입원한 이후론 시시각각 기억을 잃었다. ECT 치료의 치명적인 부작용이었다. 악을 쓰고 기록했다. 펜을 쓰는 것도 금지돼 끝이 뭉툭한 수성 사인펜을 간호사실에서 빌려 쓰고 반납해야 했다. 이따금 노트에 쓰인 글자가 번졌다. 왜 그랬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수면과 식사를 통제받고 잠금장치가 없어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를 화장실에서 내 팔 길이가 넘지 않는 샤워기로 불편하게 몸을 씻으며 매일을 참았다. 차마 산다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그곳에선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열에 아홉은 언니에게 전화했다. 기억을 언제 잃을지 몰라 노트를 손에 쥐고서 통화했다. 펜이 없어 아무것도 쓸 수 없음에도 그저 노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언니의 목소리를 더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위를 취득하듯 정신없이 퇴원했다. 나는 여전히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며 내 몸에선 끔찍한 악취가 올라와 견딜 수 없어 향수로 샤워를 하고 방구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죽고 싶을 때마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언니는 나를 바다에 풀어놨다. 언니는 매일 자기 전 내게 문자를 남겼는데, 어디선가 긁어온 듯한 소설이나 시에 내 이름을 종종 넣었다. 문득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언니가 클리셰 범벅인 짧은 단막극 대본 조각을 보냈고, 나는 그 조각 어딘가에서 노동의 이유를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또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해본 것이 이것뿐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라디오 방송국에 들어갔다. 내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쓰고 있는지, 쓸 것인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글을 쓰고 편집했다. PD는 내게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했고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어딘가에 남겨지는 것이 신기했다. 신기해서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환각 속에 살고 있었으므로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별난 애로 방송국에서 소문이 나 다들 오가며 말을 걸어댔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게 진짜 사람인지 환각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였다.


정시에 출근해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어려운 나는 잠겨있는 편집실 앞에 주저앉아 누군가가 출근하길 기다리거나 모두가 일하고 있는 가운데 벌떡 일어나 집에 가버리기 일쑤였다. 엄마의 눈가는 늘 붉었고 아빠의 출장은 더 잦아졌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불효녀이자 사회 부적응자였다. 죄책감에 내가 사는 세상과 남이 사는 세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환청을 구분하지 못할 때면 아니야, 라고 말했다. 나는 언니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로 세상을 구분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으나 생각보다 나를 기억한다는 것을 매일 상기했다. 어느 날엔가는 언니가 내 세상에 있는 사람일까 두려워 무작정 부산으로 가 당장 나오라고 떼를 썼다. 언니는 나와 처음 갔던 그 바에 나를 데려가 그 떡볶이를 먹으며 말했다.


"난 너의 가장 가까운 바깥이야."


폐쇄병동에서 나와 처음으로 운 날이었다. 나는 집에선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해 기특한 딸이어야 했고, 방송국에선 별나지만 제 일은 잘 해내는 사원이어야 했다. 내게도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게 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나도 타인과 같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해서 자랐다.


그리고 나는 방송국에서 잘렸다. 계약기간 만료가 사유였으나 실은 해고였다. 내가 맡은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MC는 늘 내게 저녁식사를 제안했지만 사람이 무서운 나는 계속해서 거절했다. MC는 내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졸업 후 처음으로 언니가 아닌 바깥 사람과 밥을 먹었다. 나의 연락처를 묻고 싶어 마련한 자리란 말에 화가 났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기까지 얼마나 굳은 결심을 했고,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겨우 그런 일이라니. 그때 내 세상 사람이 말했다. 네가 그 모양이어도 아직 걸레로 보는 사람이 있네. 비웃는 소리로 시공간이 가득 차 터질 듯했다.


그 옆에 앉아있던 내 세상 사람이 한 마디를 더 얹었다. 뒤엎지도 못하는 병신. 시공간은 결국 터졌고 나는 병신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테이블을 뒤엎었다. 그리고 해고됐다. 그 MC는 오랜 시간 그 방송국에 몸 담으며 본인의 이름값으로 프로그램을 먹여 살리고 있었고 그래서 별로 억울하진 않았다.


집에 계약기간이 만료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다. 고생했으니 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 미지근한 온도에 또 왈칵 무언가가 쏟아졌다.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할 것 같아 방문을 닫았으나 방 안엔 온통 갓 매매한 우리 집이 지르는 비명으로 가득했다. 네가 여기서 죽으면 내 가치가. 집이 나를 원망했다. 커터칼로 애꿎은 손목만 긋다가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베인 상처에서 나온 피 색이 이상해서였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언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고, 나는 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언니는 차를 수리 맡겨 조금 늦는 것일 뿐이니 불안해하지 말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언니는 그날 오지 않았다. 며칠 뒤 부고 문자가 날아왔다.

언니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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