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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Oct 23. 2024

우울은 바다처럼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고

엄마에게 한 달에 한두 번씩 연락이나 주고받던 세진을 또 팔아 부산을 간다고 했다. 호피무늬 치마에 당시 유행했던 버건디 립스틱을 바르고 집을 나섰다. 언니 장례식장으로. 지금 그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옷을 갈아입었어야 마땅했는데, 그땐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장 엄마를 속여야 했으므로 적절한 착장을 골랐고 당장 언니에게 갔어야 했으므로 그저 향했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처음 갔다. 언니의 부모님을 처음 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내가 죽였다고 이실직고했다. 언니의 부모님은 내게 밥을 먹으라 했다.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었다.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을 다 비웠다. 눈물이 섞인 것인지 잔뜩 짰다.


언니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며 괜찮다는 말만 했다. 언니와 결혼식을 앞둔 남자는 내게 욕설을 퍼부었다. 언니의 뱃속엔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왜 언니가 언제부턴가 나와 술을 먹지 않았는지, 내 전화를 받으면 그저 바다에만 갔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언니는 왜 나를 챙겼을까. 언니는 왜 하필 나를 자신의 운명에 끼워 넣었을까. 언니마저 나의 환영이면 어떡하지. 엄마의 독촉 전화에 다음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 의문에 아무것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이후 바다에선 우울이 파도가 됐다. 다가왔다가 휩쓸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지만 마르지 않는. 사는 것이 무서워 언니를 찾았는데, 언니가 죽고 나니 죽는 것도 무서워졌다. 내가 언니의 시간을 빼앗아 대신 사는 것 같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처음 생겼는데, 그게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못 견딜 만큼 외로웠다. 언니 같은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를 찾은 이유였다. 여자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언니를 찾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이면서 여자이기를 싫어하는 이를 만났다. 렌트카를 빌려 회사에 다니면서 그 렌트비조차 내지 못하고, 늘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고 갚는 것을 반복하다 유치장에도 끌려 들어가는 이를. 그러면서도 주변 경조사를 챙겼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돈을 내게 늘 빌렸고, 다음 월급날 갚았다. 그 푼돈도 없으면서 나에게 여러 바다를 보여줬다. 사랑하지 않았으나 연민했다. 갈라선 부모를 미워하며 정신 차리지 못하는 두 동생의 안부를 챙기고, 병든 강아지 세 마리를 기르는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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