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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립 Oct 24. 2024

사랑 없는 사랑을 해요, 우리

PART 1

내게 갚지 못하는 돈을 쌓던 이는 내가 언니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나는 남들에게 언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언니 이름의 끝자리를 부르곤 했다. 윤이가, 윤이는. 그 이와 극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과 언니의 이름이 같았다. 그 사람과 만나던 애인이 바람이 나 이름조차 혐오스럽다던 이는 내가 언니가 절실해서 부르는 윤이란 글자조차 혐오스러워했다. 언니의 이름이 그 이와 나 사이에 금기어가 됐다. 그 하찮은 이유로 내 모든 것이었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다. 다시 한번 사랑이 우스워졌다. 윤은 내게 사랑이 아닌 삶이었다. 


그 이와 헤어진 이후 종종 술을 먹고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졌다. 전화를 받으면 알코올에 절여진 내 이름이 와르르 쏟아졌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의 미안해는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버렸다. 


"버스는 지나갔어. 너 잘못 내린 거야. 착각하지 마. 나 원래 그런 사람이래. 그냥 태어날 때부터 멍청하도록 착하게 태어난 거야. 사랑으로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


그 후 나는 윤에게 빌린 시간을 갚으러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폐쇄병동에 갇혔다.


우습게도 폐쇄병동에서 나는 그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종의 보상심리였다. 너도 그랬으니 나도 그래도 돼, 같은 유치한 보상. 그 이는 내가 먹고 싶다고 몇 번 말했던 초밥을 두 판이나 포장해 면회를 왔다. 환자복을 입고 파리하게 초밥을 먹는 나를 보며 웃었다. 엉망인 채로 살겠다며 음식을 구겨 넣는 내 꼴이 싫었기에 그 웃음도 싫었다. 내가 너무도 쪽팔렸다. 


내 글이 좋다는 남자를 만났고 그는 내게 헌신했다. 마치 세상에 아름다운 존재는 나밖에 없는 듯 추앙했다. 나는 사랑이 마냥 우스웠던 사람이었으므로 자꾸만 떠안기는 사랑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사랑받은 적이 없어 주는 것만 할 수 있는 남자에게서 나의 본능인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의와 고지식함이 발현됐다. 마지막 사랑은 나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 대충 쓴 글을 팔아재끼며 탕진하고 있었고, 남자는 내가 사회생활을 다시 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었다. 그놈의 사랑, 사랑, 사랑. 남자의 입에서 굴려지는 그 사랑이 너무도 싫었다. 우리가 무슨 세기의 사랑을 한다고. 나는 아무렇게나 글을 쓰고 아무렇게나 사랑하며 남자의 헌신을 함부로 대했다. 그러면서도 남자가 원하는 것을 했다.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 첫날,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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