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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Oct 05. 2024

큰 별장을 사주겠다던 꿈은 어디에

작은 애가 초등학생일 때 내게 말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아주 자신 있게.

"나 큰 별장 살 테니, 엄마는 그 별장 관리하면서 거기서 지내면 돼."

"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 거니까, 일 년에 며칠만 와서 머물 거야."


꿈은 원대하게 품으라고 했다. 작은 아들에겐 국가 대표 테니스선수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부모, 친척은 물론이고 우리 집 쪽, 남편집 쪽 가문 족보를 다 들춰봐도 들어보지도 못한 웬 테니스 선수?




큰 아들이 5학년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학교 테니스 서클에 들어갔다. 동생도 형을 따라 같이 들어갔다. 취미로 가볍게  약 반년 정도 연습했을 무렵, 하루는 코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작은 아들이 테니스에 재능이 있어 보이니까 선수반에 들어가 연습시키라는 제안이었다. 그걸 계기로 테니스 연습에 착수한 것이다.


나는 늘 그렇듯 단순했다. 아들을 테니스 선수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학교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 채,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침 수업 시작하기 전 1시간, 방과 후 2시간, 주말, 방학 없이 연습에 연습이 끝없이 이루어졌다. 원래 까무잡잡한 피부인데 땡볕 아래 연습을 하다 보니 흑인과 별 반 차이 없게 되었다.

대만의 테니스 시합은 왜 그리 많은지, 평일, 주말 가리지 않았으며,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시합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책가방 들고 학교로 향하는데, 우리 아들은 시합장으로 향했다. 시합 장소가 사는 지역이나 근처이면 다행이지만, 북부나 중부일 때도 있었다. 평일이라 수업을 받아야 한다며 시합에 참가 못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그렇게 연습한 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아들이 선수라면, 그 엄마도 선수 생활을 이해하고 동참해야 한다. 대만의 태양은 무지막지하게 강열하다. 땡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테니스 시합에 가슴 졸이며 응원해야 했다. 시합 전에 먹어서는 안 될 것, 먹어도 되는 게 있다는 것도 몰라, 내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 시합 중에 토한 적도 있었다. 시합 성적이 안 좋아 컨디션이 나빠지면, 나는 심판대에 올라야 할 때도 있었다. 

시합 중에 “그때 엄마 표정이 왜 그랬어?” 

“박수 칠 상황도 아닌데 왜 박수를 쳤어?” 등등. 

시합하는 와 중에 엄마 표정을 보고, 박수 소리를 들을 여유가 있다는 데 놀랄 뿐이었다. 아들은 시합에서 이겨도 화를 낼 때가 있었고, 져도 기뻐할 때가 있었다. 시합 후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그동안 연마한 결과가 성과로 나왔다. 운동 신경이 부모의 DNA를 물려받지 않은 덕분에 괜찮았고, 선천적인 관찰력도 한몫을 거들었다. 시합에서 상대 선수의 심리를 읽어 공략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역전으로 승리를 거두는 일이 많았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국가 대표 선수가 되어 자신이 산 별장에서 엄마를 모시겠다고 몇 번이고 말을 했다. 하루는 이런 말도 했다. 

"엄마, 나 국가 대표 선수가 되어 시합에서 1등 하고 인터뷰에서 할 말도 다 생각해 놨어."

"뭐라고 할 건데?"

"엄마가 있어 오늘의 나가 존재한다고 할 거야." 감동 없이 들을 수 없는 한 마디!


초등학생 때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시합 성적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유지하기 힘들었다. 아들은 기초체력 훈련을 싫어했다. 고되기도 했지만, 인내심, 지구력에는 감당이 안 되는 듯했다. 승부욕이 강해 시합을 즐겼지만 화려하지 않고 부단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육체의 단련이 정신으로 이어지고, 건강한 정신이 육체로 이어진다. 어느 한쪽이 받쳐주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유지 불가능하다. 




한 때 나는 국가선수까지 바란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걸 밀어주자고도 생각했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자신이 원하는 걸 하게 하는 게 옳지 않은가라고. 나 역시 내가 하고픈 걸 하면서 살겠다고 고향을 뛰쳐나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기초체력 훈련을 꺼리는 아들을 보며 늦기 전에 진로를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테니스는 취미로 하자는 생각에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승부욕이 강한 작은 아들은 시합 참여에 적극적이었고, 이를 통해 또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인생 경험을 쌓았다. 인생에는 승리와 패배가 모두 존재하며, 그것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운동과 공부의 병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했으리라.

아들 덕분에 나도 테니스라는 운동 세계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운동선수들과 그 배후에 있는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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