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거인 Oct 24. 2024

계획대로 안 되는 세상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인도의 핵심여행지를 거의 돌아보고 두 번째 인도 여행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인도인솔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여행 다녀왔던 여행사에 인솔자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면접까지 합격을 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교육일 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번 인솔자 지원은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때의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럼 처음부터 모집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면접은 왜 본 것인가 너무 답답했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고. 나는 계획을 바꿔 1년간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필리핀을 갔다가 호주 워홀을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렇게 일자리를 새로 알아보게 되었고 고향에 있는 절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1년간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지원한 이유는 절에서 살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1년간 근무를 하며 108배도 해보고, 아이들과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연꽃을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흰 눈 밭을 뛰어다니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나는 세부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는데 영문이름이 잘못되어 항공사에 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걱정이 된 엄마는 나를 클락의 친척분집으로 보내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세부행 비행기표가 사용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세부에 들어가 스쿠버자격증을 따고 클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는 한국인 남자 두 명 일행 이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분은 다리에 문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스를 사주시면서 클락에는 왜 가는지 물으셨다. 친척집에 간다고 이야기하고, 본인은 클락에서 살고 있고 아이가 있어 아이를 주신다고 비행기를 사시고 나에게 힘들 때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셨다.  이 명함을 내가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클락에 도착했고 친척집에 가면서 약속한 게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을 오전시간에만 돌봐주기로 하고, 나머지 시간은 튜터를 구해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 내가 교회에 가는데 주말에 여행을 가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엄마는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지만, 막상 현실은 책임감 강한 나는 새벽기도까지 꾸역꾸역 나가고 교회에 예배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안 나갈 수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빈교실에 아이들과 나만 덩그러니 대학졸업하고 경력도 많지 않았던 나에게 너무 가혹한 환경 이렇게 너무 지친 나머지 비행기에서 만났던 분명함을 명함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사람들은 다 한인 촌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다리의 문신 같은 것은 그때의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이 힘듦을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힘들면 전화해라는 소리만 생각났고, 그렇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시내로 나가는 길 흰색밴이 내가 사는 집 앞에 섰고, 건장한 남자분이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때 무서움 따위는 없었다. 그 벤을 타고 하소연을 하는 사이 나를 시내에 내려주셨다. 내가 클락에 있던 2010년도 한국사람들이 죽어 한국뉴스에 많이 나올 때였지만 나는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나하고는 상관없다 생각하고 자꾸 나가려고 하고 그걸 지켜보는 친척분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지만 그때의 나는 폭발을 해 친척집을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