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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Oct 23. 2024

상처를 드러낼 때 치유는 시작된다

씩씩한 캔디가 되고 싶던 나의 심리상담 치료기

나를 다잡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를 보내기 전부터 종종 상상해보곤 했었다. 

심리상담을 받는 나의 모습을,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때 할 말을 상상 속에서만 떠올려 봤는데도 이따금씩 눈물이 차올랐었다.

상상 속에서의 나는 그저 "저는 지금..."까지만 말했는데도 그렇게나 울컥했었다.


나는 늘 단단한 돌멩이 같은 마음을 갖고 싶었고, 강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누구나 이 정도의 무게는 짊어지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태평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모두 슬픈 소리가 난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내가 정말 좋아하는(공감하는) 구절이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작 힘든 일은 잘 말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웃기게도, '힘든 일을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날 봐줬다는 것에 뿌듯했다.

어두운 모습은 잘 감춰둔, '자립심 강한 멋진 여성' 프레임이 만족스러웠다.


씩씩한 캔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감춰둔 아픔을 남에게 말해보는 상상 만으로도 벅찼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이런 크기의 절망이 닥쳤을 땐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 그냥 내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절실했다.

누군가 내 상태에 대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나의 마음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들도 아이를 보낸 후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나의 괜찮음을 물어봐주지 않았고,

나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내면의 상처를 먼저 털어놓기 어려웠다.


떠오르는 곳은 상담센터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나의 상담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고,

총 8번의 상담을 받으며 많은 위로가 되었다.




첫 상담을 예약했을 당시엔 기대도 되었지만

동시에 상담사도 그저 돈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 중 하나일 텐데,

나의 깊은 마음속 돌멩이를 꺼내어 놓아도

상담사에겐 그저 직업으로서 대하는 오늘의 업무 중 하나겠거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루에 몇 명이나 상대할까?

나같이 우울한 사람만 하루 종일 대하는 것도 굉장히 지치는 일이겠구나.

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의 사람들도 많이 올 텐데 내 말에 관심 가져줄까?

다음 상담엔 내 얘기를 기억이나 할까?

이 모든 생각들은 모두 '단단한 돌멩이'로 살고 싶었던

나의 자기 방어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이 얘기를 들으면 나를 싫어할까 봐, 나를 무시할까 봐, 나의 약점이 될까 봐

걱정이 되어 자신의 마음속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밝고 빛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남들에게 긍정적인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으니까

나 역시 나를 감추는 것에 익숙했고, 포장된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상담 센터를 예약하자 한 번도 남 앞에 드러내지 않은 내 약한 모습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첫 질문이었다. 

"제 마음은..." 그냥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각처럼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숨겨두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냈다.

절대로 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내가, 나를 무너지게 한 사건들을 얘기했다.

이렇게 내가 무너지고 있음을 얘기했다.


아, 남에게 나의 너덜너덜한 상처를 다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 상처를 본 사람이 "많이 아팠겠구나, 정말 괴롭겠구나"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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