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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Oct 29. 2024

10월 29일, 오늘은 떠난 아이의 생일

공교롭게도, 10월 29일 화요일 오늘은 떠난 아이의 생일이다.

전혀 의도하고 발행일을 화요일로 지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올 1월 네이버 캘린더 어플에 가족들의 생일, 그리고 기일을 저장해 뒀었다.

1년 중 가장 기쁘게 또 가장 슬프게 맞이할 날들이었다.

나는 가족이 많지 않아 며칠 적을 것도 없었는데,

아이가 떠나곤 내 달력에 저장된 생일과 기일의 수가 동일해졌다.

언젠간 생일보다 기일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

기쁠 날보단 슬플 날이 더 늘어날 것을 알면서 막을 도리 없이 기다리는 기분이란.




작년 아이의 생일파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봤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는 늘, 언제 어떻게 더 아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되도록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어두었다.

그 덕에 작년 생일파티 영상이 있어 조금 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보다 보니 꽤나 생생하게 그날의 순간들이 기억났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금세 허망하게 아이가 떠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여름에 한참 아팠다가 9월 10월엔 그래도 수치가 조금 좋아졌을 때였다.

그래도 영상 속 아이는 살이 많이 빠져있는 모습이지만

장난감도 던지고, 간식도 먹으며 쾌활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쾌활한 아이가 이후 몇 달 만에 그렇게 떠나다니, 

또다시 조금은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닫아놨던 후회의 감정들이 쏟아졌다.


작년 10월 아이의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양털 조끼는

올해 3월 아이가 떠날 때까지 병원을 오가며 가장 많이 입었던 옷이지만

그래봤자 고작 열 번이나 입었을까

새 옷 그대로 깨끗하게 남아있다.

옷이 조금 낡을 새도 없이 그렇게 떠났다.


사실 옷뿐만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럽게 떠났기에 

바로 2주 전에 습식 사료와 아이가 그나마 먹을 있는

몇 가지의 간식도 박스 채 사다 놓았는데

유통기한도 아직 한참 남아있는데, 채 몇 개 먹지도 못했는데..

버릴 수도 치울 수도 없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나마 먹을 수 있을 때 그냥 많이 줄걸,

나에게 간식을 달라고 조를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줄걸

좋아하는 거 많이 해줄걸

아이는 없는데 아이의 물건들은 너무도 새것처럼 그대로 남아있다.




아이의 생일을 저장해 둔 덕에 어제부터 핸드폰에 어플 알람이 떴었다.

아침 출근길에 진동이 울려 봤더니, '오늘은 OO의 생일 하루 전입니다'

아.. 막아뒀던 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어찌어찌 평소와 똑같은 컨디션으로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운동도 하고 밥 먹고 샤워도 하고

꼭 해야 되는 숙제 같은 일들을 다 하고 나서는 

그냥 아이 생각에 오랜만에 깊게 빠지고 싶어 사진첩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껏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다.


아이의 생일도 이렇게 서글픈데, 아이의 기일엔 얼마나 더 아플까?

내년 3월이 돌아오는 것이 두렵다.




9번째 생일 축하해 아가

잘 지내고 있어?

이번 생일은 언니도, 엄마도 없이 보낸 첫 번째 생일이겠네

이곳에서 우리 모두 많이 축하하고 있어, 다 들렸지?

하늘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즐거운 생일 보냈을 거라 믿어.

정말 많이 보고 싶어, 모든 순간이 다 그리워 아가.

많이 사랑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거기선 절대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있어!

언니랑 엄마랑 너무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아가 있는 데로 잘 찾아갈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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