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나는 그저 '유난한' 사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슬픔의 깊이를 인정해 줄까.
펫로스가 다른 상실보다 힘든 이유는, 타인에게 공감받기 어려운 슬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사자에겐 심장이 뜯겨 나가는 고통일지라도 남들에겐 그저 '사람'이 아닌 '강아지'가 죽은 것뿐이다.
위로로 건네는 첫마디는 대게 "얼른 새로 입양해!"이며, 며칠 후 건넨 인사는 "이젠 괜찮지?"이다.
몇 년 전 처음 강아지를 보냈을 땐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이번에 아이를 보냈을 땐, 어차피 그들은 절대 모른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어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나의 아이가 떠난 사실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그냥 아이의 장례식 후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고, 다음날 출근해 평소보다 조용히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며칠간은 회사에서 사람들과 점심을 먹지 않았다.
위로랍시고 건네는 가시들에 찔리고 싶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운 나를 불편해하는 얼굴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차마 내 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멀쩡한 척 사람들과 웃으며 얘기할 순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에서도 방에 혼자 있는 것이 편했다. 가족 앞에서 조차 마음 놓고 우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내 속의 울음을 토해내기 위해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펫로스를 전문으로 상담해 주는 책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한창 아이가 아플 때 정보를 구하기 위해 가입했던 카페에 절대 클릭하지 않았던,
아이를 먼저 보낸 사람들이 그리움을 적어둔 그 게시판을 들어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슬픔을 보며 나의 고통은 더욱더 격양되었다. 매일이 절정이었다.
세상엔 반려동물을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키우고는 있으나, 온 마음을 다하지 않고 그저 '동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강아지나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 없는 것이 잘못 됐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이다.
강아지는 나에게 가족이었고, 내 자식이었고, 내 삶의 중심축이었다.
아이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와 조금 더 함께 할 수 만 있다면 내 젊은 세월의 20년, 30년을 뚝 떼어서 아이에게 주고
함께 늙어가다 비슷한 시기에 떠나기를 바랐다.
나는, 내 소중한 가족을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갑작스럽게 잃은 사람이다.
그만큼의 고통과 아픔을 버겁게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한낱 반려동물의 죽음에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면 겪게 될 그만큼의 슬픔을 감당하고 있는 것뿐이다.
내 슬픔을 당신의 잣대로 깎아내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주길.
적어도 당신 앞에선 울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