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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선화 Oct 14. 2024

화성에 이별이 떨어질 때

마음이 떠버린 듯한 최초 빠순이 룬아 때문에 혜성의 마음은 휑했다. 

최초 빠순이가 이렇게 빨리 변심할 줄이야. 아니다. 어쩌면 이건 변심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넓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짜장면을 좋아하다 잠시 짬뽕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은 짜장면이 싫어진 게 아니다. 여전히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짬뽕도 좋아하게 된 것뿐이다. 

혜성은 룬아도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다 배포의 도피 피리 연주를 좋아하게 된 거라 여겼다. 취향이 다양해진 것을 두고 변심이라니 당치 않지만, 룬아의 마음이 자신에게 더 쏠리게 만들고 싶었다. 

짬뽕으로 갈아탄 사람을 붙잡기 위해 짜장이 간짜장 삼선짜장 쟁반짜장 불짜장으로 다양하게 변신했듯 혜성도 이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말로만 주구장창 외치던 우주대스타로 등극한다면 룬아는 다시 자신의 빠순이로 돌아올 것이다. 어디 룬아 뿐인가. 전 세계에서 수많은 빠순이들이 절로 양산될 것이다. 

혜성은 마음을 다잡고 우주대스타 출전 준비를 위해 개판에서 연습을 이어갔다. 연습 사이 사이마다 들리는 배필과 지화자의 대화에서 들리는 배포의 근황 속엔 룬아의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둘은 음악으로 난민 아파트를 정화하려고 악기 연주를 했다고 했다. 

음악이 감정 정화하는 데는 탁월하긴 하다. 근데 왜 그런 훌륭한 연주를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거의 화성산에 머무는 듯했다. 어떤 날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개밥을 주러 나가는 배필을 따라나서며 혜성은 배포와 룬아가 화성산에서 뭘 하는지 슬쩍 물었다. 배필은 둘은 비슷한 꿈을 꾸고 잘 통한다면서 정작 뭘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시원스레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혜성의 눈에 거문고 줄을 정비하는 배달이 보였다. 배포와 참 많이 닮았는데 배포처럼 여유가 넘치고 단단해 보이는 느낌은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배포는 정말 멋진 놈이다. 게다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도피 피리를 연주한다. 룬아가 설마 배포의 도피 피리 연주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 애를 좋아하는 걸까? 배포도 오랜 해외 생활로 외롭던 중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룬아에게 끌렸던 걸까? 

혜성이 꽤 심각한 얼굴로 건반에 얼굴을 박더니 배달에게 물었다. 

“배포랑 룬아 사귀니?”

배달이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 야외 아궁이에 솥뚜껑을 엎어놓고 율무를 볶던 지화자가 놀부 부인처럼 나무 주걱을 들고 와서는 귀 따갑게 소리쳤다. 

“혜성아, 그런 말 함부로 하면 못써! 배포는 임자가 있다고!”

해외에 두고 온 여친이라도 있는 건가? 멋진 놈을 채간 여자가 벌써 있구나. 

일단 둘은 절대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둘은 뭘 하며 돌아다니는 걸까? 둘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란 건 진짜 뭘까?

머리를 쥐어뜯던 혜성은 룬아와 자신의 관계가 역전된 것을 알아차렸다. 빠순이인 룬아가 예비우주대스타인 자신의 일상과 행적을 궁금해하고 캐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예비 우주대스타인 자신이 오히려 빠순이인 룬아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완전 뒤집힌 관계에 어이없어하던 혜성은 이제라도 예비 우주대스타로서의 품위를 지키겠다 다짐하곤 집으로 돌아와 잠이나 잤다. 

룬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려는 마음 때문인지, 밴드 연습으로 무척 지친 건지 잠은 잘 왔다. 커다란 초록 운석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까지 꿨다. 저 운석만 있으면 우주대스타가 금방 될 것 같아 그걸 막 품에 안았는데 <개판 세상>의 귀 때리는 모듬북 전주가 울렸다. 부스스 일어난 혜성이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라인의 목소리가 귀따갑게 들렸다.

“야, 일어나! 운석이 사라졌어!”

“운석? 방금 내 품에 있었는데……?”

“뭔 소리야! 학교 박물관에 있는 운석이 사라졌다고!”

잠이 확 달아났다. 

박물관에 전시된 채 수많은 사람의 소원을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고 결코 이뤄주지 않던 그 운석이 사라졌다고……!

혜성은 씻지도 않고, 예비용 충전지를 챙겨 보드를 윙모드로 해서 화성고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정문 앞엔 경찰과 취재진들이 가득했고, 오라지의 버드 키스까지 와 있었다. 겨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학교로 들어와 운석 박물관이 있는 4층을 바라보았다. 운석 전시실 천장을 덮고 있던 작은 돔이 두 동강 나 있었다. 

초록 운석 예시

운석 도난 추정 시간은 새벽 두세 시.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와 검은색 롱 패딩에 흰 마스크를 쓴 채 기다란 흰머리를 휘날리는 할머니가 옥상의 돔을 통해 운석 전시실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박물관 내부 CCTV에 찍혔다. 운석을 지켜보는 둘의 눈에선 초록색 빛이 번뜩였다. 그들이 어떻게 옥상으로 올라왔는지는 박물관 주위의 CCTV가 다 꺼져 있어 포착되지 않았다. 화성산에선 범인이 입고 있던 두루마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명주실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우선 실보다 초록 눈빛에 수사를 집중해 난민 아파트로 향했다. 영양소 부족으로 야맹증을 앓아 야광 렌즈를 착용한 사람들 대부분이 난민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경찰은 난민 중 노인의 명부만 따로 뽑아 살폈다. 노인 수는 너무 적었다. 기후비상사태가 일어난 지역에서 즉시 대피하지 못한 사람 중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대부분 현장에서 운명을 달리 했고, 그나마 대피해 화성 난민 아파트까지 온 노인도 놈펜 사태로 인해 많이 목숨을 잃어서였다. 지금 남아있는 난민 노인들은 거의 다 놈펜 감염으로 화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난민 아파트 일대와 남은 노인들을 조사하던 경찰은 의외의 인물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바로 쓰레기 언덕에서 때때로 목탁을 치는 꽃할배였다. 

꽃할배는 늦은 밤 야광 렌즈를 낀 채 화성산에서 발견된 명주실과 같은 소재의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채 난민 아파트 인근의 민둥산에 있는 폐사인 화성사의 돌탑 밑을 삽으로 파고 있었다. 체포된 꽃할배는 쓰레기 언덕에 옷 안쪽이 약간 그을린 멀쩡한 두루마기가 버려져 있어 주워입은 것뿐이고, 화성사에 간 건 초저녁에 잠을 자다 신비한 꿈을 꿔서라며 억울해했다. 경찰은 꽃할배가 사는 화성의 빈 아파트 중 하나인 플라워캐슬로 쳐들어갔다. 꽃할배는 202동 전체를 돌아가며 사용하고 있었다. 

경찰은 202동 전체와 다른 동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운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화재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화성사까지 수색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이 경찰서에서 계속 조사받던 꽃할배는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원인은 놈펜이 든 오빵이었다. 화성에 아직 놈펜이 든 음식물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왜 하필 경찰서로 배급된 빵에서 놈펜이 나온 것인지 의아해했다. 

화성에 사는 한 셀뷰넷 BJ는 화제 몰이를 위해 꽃할배가 입원한 병원에 몰래 잠입해 거의 전신이 보라색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촬영했다. 불법 촬영이라 영상은 곧 내려갔지만, 놈펜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에게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꽃할배의 처참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경찰의 섣부른 수사를 지적했다. 독거노인 중에는 야맹증으로 난민들처럼 야광 렌즈를 착용하는 이들도 있었고, 돔이 있는 학교 옥상까지 올라갈 방법은 혜성이 예전 그랬던 것처럼 클라이밍용 접착제를 붙이고 벽 짚고 올라가는 밖에 없는데 허약한 노인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잔뜩 쪼그라든 경찰은 꽃할배를 일단 제쳐두고 수사의 방향을 틀어 노인이 아니라 노인으로 변장한 사람이 야광 렌즈를 끼고 운석을 훔친 것으로 보고, 다시 난민 아파트 수사에 들어갔다. 

운석을 도난당한 후 부쩍 신경이 날카로워진 오라지는 명성에서 공수해 온 특수 탐지 로봇 10대를 경찰에 제공했다. 새열 엄마의 로봇개 공장에서 나온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로봇개만 사용하다, 갓필드에서 개발한 최신식 로봇을 제공받자, 경찰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오라지는 경찰들에게 사이언이 화성에서 광고한 지구용 우주복까지 보급해줬다. 면역력이 떨어진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민 아파트를 출입할 때는 레벨 A 방호복를 입고 출입해야 했는데, 꽤 많은 인원이 동시에 입을 방호복이 부족했다. 오라지의 지원으로 많은 경찰들은 지구용 우주복을 입고 탐지 로봇을 대동한 채 5000호도 넘는 난민 아파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화성고를 인수하고 이 주에 한 번 정도 화성에 오던 오라지는 요즘 거의 화성 자택에 상주하고 있었다. 

오라지 만큼은 아니라도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던 운석이 도난당한 것에 아이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전시된 운석을 통해 희망을 품을 수 있어 나름 위안을 받았었다. 모두의 희망과도 같았던 운석이 도난당한 건 그동안 운석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사라진 것과도 같았다.

철통 보안을 뚫고 운석을 가져간 걸 보면 엄청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벌인 짓으로 보였다. 

흰색 긴 머리카락의 여자와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정말 경찰이 짐작하는 대로 노인이 아니라 노인으로 변장한 사람들일까? 

일부 아이들은 CCTV에 찍힌 노인들이 멸망 인간이라며 수군거렸다. 모두 운석 도난 사건에 관해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혜성은 꿈의 고향 옥상에 발을 들였다. 운석이 사라졌기에 이제 더는 철통 보안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일이 터져 유감이긴 하지만 꿈의 고향에 돌아오니 혜성은 곧 모든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다가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우주대스타 출전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혜성은 연습을 위해 다시 개판으로 향했다. 난민 아파트 주변까지 오니 지구용 우주복 입은 사람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 우주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징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린 우주복 입은 경찰의 팔에 매달린 새열이 내는 소리였다. 

“왜 내 말을 못 믿냐고요! 운석 도둑은 젊었다 늙었다 하는 진짜 멸망 인간들이에요! 제가 찾은 곳은 그 멸망 인간들 소굴이라고요!”

경찰은 새열의 헛소리가 듣기도 싫은지 우주복의 캡을 닫더니 그를 팔에서 떼어냈다. 쌍화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교무부장과 학부모회장의 관계를 낯 뜨거운 쌍화점 스캔들로 부풀리는 새열의 말은 정말 믿을 게 못 됐다. 

혜성은 쓰레기 언덕을 넘어 개판으로 왔다. 건반을 세팅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배달이 나오지 않았다. 곧 죽어도 결코 수업은 빠지지 않던 배달은 가까스로 회복시켜 놓았던 체력이 또 소진된 건지 요 며칠 학교도 빠지고 연습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모듬북 점검을 하던 라인은 배달을 데리러 갔다. 방문이 잠겨 있었다. 라인이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난리 쳐도 배달은 꿈쩍도 안 했다. 라인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 혜성은 라인이 폭발해서 배달의 방문을 주먹으로 부수지는 않을까 염려됐다. 

라인의 화는 곧 롤모델이자 우상인 배필로 인해 가라앉았다. 배필이 거하게 개밥을 차려 주는 것을 본 라인은 감동으로 눈이 촉촉해졌다. 라인은 개밥 여신 배필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정성스레 개밥을 주고 온 배필은 악기를 만지는 혜성과 라인을 곤란하게 쳐다보며 간신히 입을 뗐다. 

“저기 진짜 미안한데, 당분간 개판에서 연습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며칠 전에 배포가 떠났어. 엄마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떠나서 필이 적적하신가 봐. 그냥 조용히 있고 싶으시대. 찻집도 당분간 안 열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혜성은 당황했다. 

“저흰 연습할 장소도 없고, 또 우주대스타 예선 날이 진짜 코앞이라고요. 조용히 할 테니까 그냥 여기서 연습하면 안 돼요?”

“정말 미안해. 나도 배포가 떠나서 필이 축 쳐졌어. 그래서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갈까 봐……근데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 너희 에너지 좀 충전해서 줄 수 있니?”

그저 개밥 여신 배필을 도울 수 있는 게 기쁘기만 한 라인이 흥분해 소리쳤다. 

“네! 당연하죠!”

잠시 연습할 장소를 잃은 것에 황망해하던 혜성은 배포에 떠났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이제 배포가 떠났으니 룬아도 다시 자신만의 빠순이로 돌아오겠지. 배달이 연습하기 싫다고 방문을 걸어 잠근 데다 최적의 연습 장소인 이곳을 떠난다는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곧 다시 좋아질 거야. 

흐뭇하게 건반을 정리하고 있는데 배필이 다시 개판 안에서 나오더니 손편지를 건넸다. 

“아, 참, 룬아도 같이 떠났어. 갑자기 떠나서 미안하다며 주더라.”

눈앞이 깜깜했다. 혜성은 노란 편지 봉투를 겨우 뜯었다.      


<화성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도 같고, 돌아온다고 해도 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아 인사하려고 편지 남겨. 새로운 세상을 위해 떠나는 거니까 슬퍼하지 마. 이곳에서 들은 네 노래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동안 너의 노래로 가슴에 별이 차올랐어. 네 목소리는 우주에서 제일 아름다워. 세상을 밝히는 노래를 해줘. >     


룬아의 진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별이라니……. 

혜성은 개밥그릇을 씻는 배필에게 다가갔다. 

“둘이 어디로 간 거예요? 다시는 못 만나는 거예요?”

“몰라. 하지만 지구에 사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 언젠가가 죽기 전날이면 어떡하지. 룬아가 변심했다고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룬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빠순이였고, 여전히 우주대스타가 되길 응원하고 있었다. 

룬아의 말대로 세상을 밝히는 노래를 하자. 그럼 어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대화재 이후 숱한 이별이 화성에서 일어났다. 화성은 이별의 도시였다. 그 이별이 오늘 혜성의 가슴에 떨어졌다. 룬아가 남긴 준 주머니 속 꽃돌을 만지는 혜성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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