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강탈범인 룬아와 배포 배필은 의식이 없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의식은 잃은 룬아와 배포는 가벼운 찰과상 정도였지만 운전을 하던 배필은 목뼈에 금이 갈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자 경찰은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에서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배필과 배포가 남매지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한국인처럼 보였던 배포는 무국적자고 외국인등록증도 없었다. 랑바린 출신의 난민인 룬아도 마찬가지였다.
남매처럼 빼닮은 배필과 배포, 특히 배포와 배달은 분위기는 다르지만 복제판 같았다. 남매와 형제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관계일까?
혜성은 배포, 룬아, 배필을 생판 모르는 남처럼 느끼며 멍하게 핸드폰 속 뉴스를 쳐다봤다. 이제 생각해보니 배포와 룬아가 한다는 중요한 일은 바로 운석 강탈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배제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배필까지 가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운석 강탈범 중 2명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에 경악한 시민 중 몇 명이 둘의 얼굴을 공개하라며 난리였다. 그토록 보고 싶던 룬아의 얼굴을 드디어 보게 되는 건가?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경찰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얼굴은 공개할 수 없다 했다.
교실에서 핸드폰으로 운석 강탈범의 얼굴이 공개되길 기다리던 아이들은 실망하더니 배달의 집인 카페 개판 일대가 운석 강탈범들의 은거지였다는 사실로 신나게 입방아를 찧어댔다.
숨겨진 지하 정원과 축구장 같은 개집 밑의 윙카 창고는 경찰이 들이닥치며 만천하에 공개됐다. 개판의 주인 지화자는 화성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운석 강탈범들에게 탈주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모든 건 딸인 배필 혼자 벌인 일이라며 딱 잡아뗐다.
배달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개판에 홀로 있는 조카 배낭과 밥 줄 사람이 없는 수많은 개들을 위해서였다. 어차피 학교에 나와봤자 애들이 손가락질할 게 뻔하므로 집에서 혼자서 공부하는 게 훨씬 낫기도 했다.
아이들은 배달과 친한 혜성과 라인도 수상하게 쳐다봤다. 둘은 현장에서 룬아와 배포 배필이 윙카를 타고 도주하는 걸 목격한 것도, 셋이 탔던 윙카를 띄우기 위해 충전지를 열심히 보급한 사실도 철저히 함구했다. 공범으로 오해받는 게 싫어서였다.
괜히 혼자 찔려 아이들의 눈치를 슬슬 보던 혜성은 개판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번 사건을 되짚어 봤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궐 같은 개집 밑의 화원으로 내려갔을 때 본 중년 남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룬아와 배포는 개판의 어디에 숨어있었던 걸까? 대궐 같은 개집 말고도 다른 숨겨진 장소가 있는 건가?
자꾸 물음표만 늘어가는 어지러운 머릿속이 수군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더 복잡해졌다. 제대로 멘탈 폭격을 당한 와중에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이제 이사장실에서 울리는 확성기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거였다. 운석이 사라진 후 뻔질나게 학교로 출근하던 오라지는 운석 강탈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명성으로 돌아갔다.
혜성은 책상 위에 너무나 복잡한 머리를 올려놓았다. 또 머릿속에서 룬아가 툭 튀어나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떠난다고 하더니. 운석을 훔쳐 진짜 세상을 갈아엎는 소원을 빌려고 했나? 인간이 우주라고 말하던 애가 어떻게 사람들의 우주를 깨뜨리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
룬아는 혜성의 우주를 산산이 조각냈다. 어떻게 조각난 우주를 다시 끼워 맞춰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혜성은 주머니에서 룬아가 준 꽃돌을 꺼냈다. 룬아에겐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운석 강탈범이란 전국민적 타이틀이 생겼다. 운석 강탈범이 준 걸 가지고 있는 게 께름칙했다. 벌떡 일어난 혜성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꽃돌은 손안에 그대로 있었다. 가지고 있자니 찜찜하고 버리려니 여전히 룬아의 싱그런 초록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걸 버린다고 룬아가 준 운석 충돌에 맞먹은 충격이 싹 사라지는 건 아니다.
특이한 돌이니까 그냥 가지고 있지 뭐. 꽃돌을 가지고 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룬아가 그랬잖아.
이 커다란 충격을 잊는 길은 정말 다시 태어나는 것밖에 없는 것 같긴 했다. 한숨을 쉬며 돌을 주머니에 다시 찔러넣고 있는데, 핸드폰 뉴스에 열중하던 깐 계란이 교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운석 강탈범이 운석을 들고 병원에서 도주했대!”
안 깐 메추리알이 덧붙여서 소리쳤다.
“근데 배달 누나는 탈출 못 했대!”
배필을 배달 누나라고 콕 집어 강조하는 안 깐 메추리알을 째려보며 혜성은 얼른 기사를 확인했다. 병원에서 이상한 피리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를 들은 의료진과 간호사들 모두 쓰러지고 병원 내부의 CCTV도 일시적으로 멈췄는데, 모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운석 강탈범 줄 배포와 룬아는 사라졌고, 목에 깁스를 한 배필만 병원 주차장에 숨어 있다 다시 체포됐다고 했다.
배포가 병원에서 도피 피리를 분 것 같았다. 근데 그 소리에 왜 사람들이 쓰러진 거지? 룬아와 배포가 운석 강탈범이란 것도 놀라운데 다시 운석을 훔쳐 도주까지 하다니…….
그때 안 깐 메추리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운석 강탈범들 멸망 인간 같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또 저런 괴담을 끌어들이다니.
당장 안 깐 메추리알을 홀라당 까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반가운 꿈의 신호가 왔다. 우주대스타 한국 예선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배터리가 집으로 배송됐다는 문자가 온 것이다. 우주대스타 주관사인 갓필드는 예선 참가자들을 위해 자율주행 전기차를 운행할 수 있는 배터리 5개씩을 보급했다.
명성까지 가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게 부담인 사람들은 갓필드에서 주는 배터리로 희망이 생기긴 했는데 슬프게도 배터리 5개로 왕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가를 포기했다. 혜성은 그나마 명성과 그리 멀지 않은 화성에 있어 전지 5개로 왕복을 할 수 있었다.
전지 배송 문자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다잡던 혜성은 문득 예선 참가에 운석 강탈 사건이 파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배달은 운석 강탈범 배필의 동생이다. 배달이 가족에게 이런 일이 터졌는데 참가하려고 할까? 그리고 이 일이 혹시 주최측에 알려지면 어쩌지? 그냥 배달을 빼고 나갈까? 안 된다. 예선 첫 무대부터 베이스 역할을 하는 거문고를 MR로 돌리면 심사위원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래…… 배달의 가정사를 누가 궁금해할까. 그냥 철저히 숨기면 된다.
라인도 좀 걱정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대빵 먹는 것도 잊고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배필을 개밥 여신으로 섬기며 추앙했던 터라 충격이 좀 큰 듯했다.
수업이 끝나자 겨우 일어난 라인은 배달이 개밥을 제대로 주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어서 개판에 가보자고 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곳에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멤버인 배달의 상태를 살펴야 했기에 할 수 없이 개판으로 갔다.
축구장 같은 개집 안에 있던 개들은 더 넓은 세상을 원하는지 쓰레기 언덕까지 진출해 있었다. 라인은 대빵 안의 소시지로 쓰레기 언덕에 버려져 있던 낚싯대에 끼워 개들을 개판 안의 너른 개집으로 유인했다.
미로처럼 놓여 있던 태양광 패널이 이리저리 엎어지고 부서진 채 나뒹굴었다. 더는 헤맬 필요가 없었다. 경찰 수색으로 개판은 정말 개판이 돼 있었다. 개들이 개집을 나온 건 패트병 울타리가 여기저기 뜯겨 나가서였다. 지하 온실로 가던 비밀 통로였던 검은색 고무 물통도 엎어져 있었다. 대궐 같은 개집은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온실로 내려가는 밧줄은 남아있었다.
혜성과 라인은 밑으로 내려가 봤다. 불이 꺼져 어둡기는 했지만 진한 꽃향기는 여전했다. 라인은 온실을 신기하게 둘러봤다. 꽃향기에 흠뻑 취해있던 둘은 다시 개판으로 올라왔다.
배달과 배낭은 개판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개들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혜성과 라인이 가까이 갔지만 배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낭이 침묵을 깨고 할머니를 보러 가자며 삼촌인 배달에게 떼를 썼다. 배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고에서 삼륜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배달이 앞자리에 탔다. 그 모습을 보던 혜성도 라인도 조용히 자전거에 뒷자석에 올랐다. 집에 갇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하는 배낭만 신이 나 생글거렸고 나머지는 계속 말이 없었다.
경찰서 면회실에 만난 지화자의 얼굴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환했다. 배달과 배낭에게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하더니 입고 있던 카디건의 단추가 떨어졌는데 여기 있으면 잃어버릴 것 같으니 가져가라며 건넸다. 배달은 단추를 손에 꼭 쥔 채 경찰서를 나오며 흐느꼈다. 배낭도 따라 울었다.
돌아오는 길에 라인은 그동안 배달에게 얻어먹은 대빵을 갚기라도 할 작정인지 대빵을 엄청나게 샀다. 개판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라인은 억지로 배달의 입에 대빵을 쑤셔 넣으려고 했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배낭은 배가 고팠는지 대빵을 먹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혜성은 착잡한 맘으로 그동안 연습을 했던 개판의 야외무대를 바라보았다. 사흘 후가 바로 우주대스타 한국 예선이다. 혜성이 배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이겨내자. 우리에겐 우주대스타가 있잖아!”
사 온 대빵을 혼자 거의 반은 먹어 치운 라인이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힘들 땐 음악을 해야 해.”
배달은 말없이 있다 지화자가 준 단추를 꺼내 빤히 살펴보더니 흠칫 놀라 돋보기를 가져왔다. 세 개의 플라스틱 단추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운석 주인은 원래 룬아야. 룬아에게 오려던 게 학교로 떨어졌던 거야. 배포는 그런 룬아에게 다시 운석을 돌려주려고 도왔을 뿐이야. 명성으로 가서 룬아를 구해줘. 둘은 아마 청명산 지하에 있을 거야. 필이가 거기로 둘을 데려다주려다 차에 문제가 생겨 잡힌 거야.>
혜성과 라인이 어이없는 얼굴로 지화자가 단추에 새긴 글을 보고 또 봤다. 경찰에겐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던 지화자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우주에서 온 운석의 원래 주인이 룬아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글이 새겨진 세 개의 단추 위로 배달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 우리 엄마 미친 거 아, 아니야. 그,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도, 돌아버릴 것 같았어. 이런 일이 터질 줄은 정말 몰랐어. 나, 난 그냥 누나가 진짜 여행을 가는 줄 아, 알았어.”
말문이 터진 배달에게 혜성은 품고 있던 의문을 풀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배포랑 배필 누나는 남매도 아니라며? 둘은 대체 무슨 관계야? 둘이 남매가 아닌데 너랑은 왜 닮은 거야?”
배달이 망설이더니 입을 뗐다.
“과,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야. 너흰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나도 머리가 아파. 하, 하지만 룬아랑 그 사람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니야. 모, 룬아가 착한 애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부, 부탁인데 두 사람 구하러 가자. 어, 어차피 우, 우주대스타 예선 치르러 명성에 가잖아.”
혜성과 라인이 대답을 회피한 채 가만히 있었다. 룬아가 착하긴 했지만 이제 그 앤 엄연히 운석 강탈범이었다. 안 그래도 윙카의 충전지를 공급한 것에 양심이 찔리는데 둘을 구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배달이 대답 없는 둘을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너, 너희가 안 도와주면 우, 우주대스타 오디션 아, 안 나가! 개, 개밥이나 줘야지.”
배달이 저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혜성은 무척 당황이 됐다. 라인은 배달을 도와 개밥을 주고 싶은지 일어섰다.
잠시 후 창고에서는 라인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또 터졌나 싶어 혜성은 창고로 가봤다. 거기엔 배필이 남겨놓은 100마리도 넘는 개들의 건강 상태와 좋아하는 사료, 꼭 챙겨줘야 하는 영양소에 관해 꼼꼼하게 메모가 돼 있었다.
배필의 개 사랑이 진심인 걸 알고 라인은 한참 동안 울더니 배필을 최상급 개밥 여신으로 격상시켰다. 눈물을 닦고 배필이 남긴 메모에 적힌 대로 꼼꼼하게 개밥을 주고 온 라인이 혜성에게 요구했다.
“우주대스타도 나가고, 우리 두 사람도 구하자! 우리 개밥 여신 배필 언니가 원하는 거니까! 언니같이 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 옳을 거야!”
라인의 억지 논리에 혜성의 입술이 꿰맨 것처럼 붙어버렸다. 혜성에게서 선뜻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배달이 했던 도발에 라인도 합세했다.
“왜? 못하겠어? 좋아! 룬아랑 배포 구하러 안 갈 거면 나도 우주대스타 안 나갈 거야!”
혜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배달이 운석 강탈범의 동생이라도, 라인이 자주 엇박을 쳐서 화음을 깨뜨려도 엄연히 탱자 밴드의 멤버였다. 예선이 코앞인 상황에서 이게 진짜 무슨 일일까? 저 둘과 함께 예선에 참여하기 위해선 운석 강탈범인 룬아와 배포를 구해야 한다. 정말 룬아가 운석의 주인일까? 룬아가 내 노래를 알아주고 지지해줬던 만큼 이걸 믿어야 하나? 아, 몰라. 일단 우주대스타에 나가는 게 먼저야!
혜성이 인생 최대의 메소드 연기를 했다.
“좋아, 일단 우주대스타에 예선에 나간 다음, 룬아랑 배포를 구하자!”
라인와 배달은 벌써 룬아와 배달을 구한 것처럼 좋아했다. 혜성은 어색하게 둘에게 장단을 맞춰줬다. 어쨌든 둘을 데리고 우주대스타 예선을 치르고 난 뒤 배포와 룬아를 구하러 가자고 한 후 자신은 슬쩍 발을 뺄 작정이었다.
룬아가 운석의 주인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운석 강탈범이라 부르는 둘을 탈주시킨다는 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일이다. 그럼 우주대스타가 되는 길이 영영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근데 우주대스타 예선만 치르고 쏙 빠지면 라인과 배달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탱자 밴드는 우주대스타 예선을 끝으로 해체할 수도 있다.
우주대스타에 출전하는 건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인데 왜 이런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까?
지금 혜성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긴 한숨을 푹 쉬며 그는 꿈을 열심히 단련하던 꿈의 운동장 개판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