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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선화 Oct 17. 2024

별이 보이지 않는 명성의 밤

우주대스타 예선 참가를 위해 명성으로 떠나는 날이 왔다. 배달과 라인을 속이고 예선에 출전한다는 것에 양심에 찔려 혜성은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학교는 혜성의 우주대스타 예선 출전 소식으로 제법 시끄러웠다. 아이들은 우주대스타 출전보다 명성에 간다는 걸 더 부러워했다. 깐 계란은 웬일로 친한 척을 하며 명성에만 파는 떡버거 하나만 사 오라며 에너지 충전지를 건넸다. 꽤 용량이 큰 전지였지만 혜성은 거절했다. 명성에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건 운명의 전환점이 될 매우 중요한 일인데, 자신의 일을 가볍게 여기는 깐 계란이 매우 얄미워서였다. 

오전에 조퇴를 한 혜성은 배달 라인과 함께 지화자가 돌아온 개판으로 향했다. 경찰은 여전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개판은 꽤 오랜만에 문을 열었지만 운석 도난 사건과 연관된 곳이라 사람들이 꺼려서 그런지 손님이 전보다 더 뜸했다. 탱자 밴드 멤버들이 개판으로 오는 것을 본 지화자는 개똥 인삼밭에서 캔 인삼을 달인 물을 건넸다. 

“큰일 할 건데 몸 챙겨야지.”

개똥밭에서 캔 인삼이란 것에 거부감이 일었지만 혜성은 억지로 꾸역꾸역 다 삼켰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우주대스타 오디션을 잘 치르라고 격려하는 게 아니라 룬아와 배포를 잘 구하고 오라고 은근히 압박을 주고 있었다. 

혜성이 지화자에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을 때 빨간색 자율주행 소형 전기차가 들어와 개판 앞 공터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는 드라이버 로봇이 있었다. 자율주행차에 성인이 동반하지 않고 미성년자만 탈 때는 안전과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드라이버 로봇이 반드시 동승 한다. 

혜성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배터리 5개 중 2개를 꽂았다. 두 개는 돌아올 때, 나머지 한 개는 명성에서 오디션장과 숙소를 오고 갈 때 쓸 예정이었다. 배달은 배필의 발명품이 든 거대한 배낭과 거문고가 든 가방을 차에 실었다. 겨우 사흘 있을 건데 짐이 너무 많았다. 라인은 대빵이 많이 든 커다란 에코백과 모듬북을 실었다. 

배달과 라인이 비장하게 지화자에게 인사를 했다. 혜성은 뻣뻣하게 고개를 숙인 뒤 앞좌석에 올랐고, 라인과 배달은 뒤에 탔다. 드라이버 로봇에게 혜성이 말했다. 

“명성 저지동에 있는 통큰 하우스로 가주세요!”

로봇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안전띠 꼭 매시고, 바깥 공기가 차니 창문은 모두 닫겠습니다. 출발합니다.”

차 문이 굳게 닫히며 자율주행차가 움직였다. 화석 에너지 대란이 일어난 이후 약 5년 동안 셋은 화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커다란 사명을 짊어지긴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성에 가는 것이라 기대가 좀 됐다.

들뜬 마음은 화성을 벗어나 험한 국도의 산길로 진입하자마자 푹 가라앉았다. 꼬불꼬불한데다 아스팔트 길 자체가 빛이 바래고 군데군데가 파여서 대빵으로 속을 가득 채운 라인은 토가 쏠린다며 난리였다. 고속도로로 가면 훨씬 빠르고 편하게 갈 테지만, 도로 주변의 민둥산에 올해 여름 내린 폭우로 토사가 산더미처럼 쏟아져 진입이 아예 불가했다. 어서 도로 정비를 해야 하지만 정비할 장비를 가동할 연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화석 에너지 대란 이후 도로가 거의 텅 빈 상태라 정비를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기에 방치된 것이다. 전국에 있는 고속도로 사정은 이와 비슷했다. 네비게이션 또한 5년 전 정보에서 멈춰 있어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괜찮은 길인 줄 알고 가면 낙석이 떨어져 있고, 아예 뚝 끊긴 길도 있었다. 드라이버 로봇은 계속 “다른 길로 이동합니다. 모두 안전띠 꽉 매고 계세요”란 말만 반복했다. 

끊긴 도로로 가다 차가 전복될 뻔한 위기를 벗어나자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드디어 화물 트럭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도저히 엉터리 네비게이션과 드라이버 로봇에게 의지할 수 없었던 혜성은 억지로 화물 트럭의 옆으로 바짝 차를 붙여 길을 물었다. 트럭 기사는 마침 명성으로 가는 길이라며 자신만 따라오라 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운전석에서 입만 나불대던 드라이버 로봇은 혜성의 지시대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화물차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주 다니던 길로 갔다. 

화석 에너지 대란 후 도로는 화물 차량과 택배차만 드문드문 다녔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윙카를 타고 날아서 이동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거지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외출하지 못했다. 차가 다니지 않기에 휴게소들도 거의 다 문을 닫았다. 화물차가 가는 길은 끊이진 않았지만 도로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멀미가 심한 라인과 배달 때문에 쉴새 없이 차를 세웠다 멈췄다 하다 보니 명성에 도착할 즈음엔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두 시간 오면 올 거리인데 초반에 너무 돌고 돌다 보니 거의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배터리 두 개로는 부족해서 하나를 더 썼다. 어쩌면 오는 길엔 엄청난 자비를 들여 전기를 충전하고 와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쨌든 명성으로 진입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명성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내자마자 비숨을 판매하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여성형 휴머노이드가 말을 걸었다.

“환상의 도시, 명성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증강현실게임 ‘명성에서 보물찾기’를 짜릿하게 즐기려면 비숨을 복용하세요!”

딱 로봇같이 생긴 드라이버 로봇과 달리 발랄하기까지한 비숨 판매 로봇을 보고 잠시 눈을 떼지 못하던 혜성은 정신을 차리고 차 창문을 내렸다. 돌아갈 때 에너지 충전할 돈도 부족한데 비싼 비숨을 살 돈은 당연히 없고, 일시적이긴 해도 혹시나 청각 장애를 일으키는 그런 환각제는 먹고 싶지도 않았다.

밤이면 블랙홀 속처럼 까만 화성과 달리 명성은 전 지구적 에너지 대란의 여파도 비껴간 듯 휘황찬란했다

거리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벌건 눈동자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실시간 증강 현실 게임 ‘명성에서 보물찾기’ 유저들이었다. 게임용 특수 렌즈를 껴서 저렇게 눈에서 붉은 레이저가 나오는 것처럼 섬뜩하게 빛이 번쩍였다. 낮엔 근무를 하기에 많은 사람들은 밤에 ‘명성에서 보물찾기’를 즐겼다. 어디를 가나 벌건 눈을 한 ‘명성에서 보물찾기’ 유저들이 보였는데 성지문 앞 광장에 있는 유저들은 좀 특이했다. 그들은 이순신 장군 동상 주위를 돌며 개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명성에서 보물찾기’ 속 번쩍이는 황금 몸을 지닌 황금신 갓파더가 내린 얄궂은 미션 때문이었다. 

보물이 있는 곳의 키를 쥔 갓파더는 보물찾기를 수행하는 유저들에게 콜라를 먹고 트림을 하라, 원강 둔치에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라, 등에 물이 든 사발을 얹어서 사족보행을 하고 다니라 같은 희귀한 미션을 내렸다. 유저들은 보물이 있는 곳을 알기 위해 황금신 갓파더가 시키는 대로 했다. 

‘명성에서 보물찾기’가 도입된 이후 명성에선 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유저들의 별난 행동은 그저 재미난 볼거리로 여겼고, 이제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성에서 보물찾기’가 인기 있는 건 가끔 진짜 보물을 찾을 수 있어서였다. 갓필드의 자회사 갓게임은 게임의 흥행을 위해 명성 시내 어딘가에 진짜 금이나 다이아몬드나 희귀 광물을 숨겨 놓았다. 갓필드가 세계적 광산 회사라 온갖 광물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보물을 찾은 사람은 천만 명성 시민 중 열 명도 안 됐다. 그래도 사람들이 게임을 계속하는 건 화석 에너지 대란으로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고, 게임을 하며 진짜 삶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모험과 일탈을 맛볼 수 있어서였다. 

‘명성에서 보물찾기’ 말고도 대도시 속 익사이팅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마천루가 즐비한 혼몽동 부근에 많았다. 밤인데도 고층 빌딩을 오르며 그들은 스파이더맨 놀이를 하고 있었다. 혜성은 절로 접착제 문제로 학교벽과 밀착 스킨십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가장 높이 솟은 명성에서 보물찾기 송신기가 설치된 갓타워 꼭대기에는 뭔가가 반짝거렸다. 운전을 하던 드라이버 로봇은 고성능 줌렌즈인 눈을 통해 그것을 포착했다. 뾰족한 첨탑의 꼭대기엔 ‘그레이트 갓 사이언, 가즈아! 에너지 천국 지구!’라는 LED 간판이 부착돼 있었다. 사이언의 비공식 팬클럽 ‘그레이트 사이언’ 회원들이 그가 어서 화성에서 대체 에너지를 찾아 지구인들이 예전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 놓은 거였다. 온갖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지구에서 인구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명성엔 사이언의 광팬도 많이 살았다. 갓필드 자회사 갓게임에서 개발한 ‘명성에서 보물찾기’의 황금신 갓파더의 모습도 온몸이 번쩍이는 황금으로 된 것만 빼면 사이언과 묘하게 닮았다. 어떻게 보면 명성 전체가 사이언을 빼닮은 황금신이 지배하는 갓필드의 으리으리한 성 같았다. 

이 최첨단 과학 도시 명성에선 국도에서 자꾸 이상한 길로 가던 자율주행차도 잘도 길을 찾았다. 거의 네비게이션 정보와 실제 길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금세 통큰 하우스가 있는 저지동으로 향했다. 이 동네는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땅값이 비싸디비싼 명성에서 그나마 제일 저렴한 땅이었다. 아무리 아성 높은 명성이라지만 화석 에너지 대란 이후 숙박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명성에서 몇 밤 자면 엄청난 숙박비가 나갔다. 셋은 최대한 저렴한 곳을 찾다 통큰 하우스를 선택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5층까지 악기와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가야 했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명성의 품에서 잠들 수 있어 모두 기분이 좋았다. 너무 오래 차를 타는 바람에 셋은 기진맥진한 채 그대로 쓰러졌지만 곧 금방 잠에서 깼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노래를 부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고막을 찢듯 파고들었다. 셋은 무슨 일인가 싶어 통큰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눈이 벌건 사람들이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오밤중에도 ‘명성에서 보물찾기’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통큰 하우스의 주인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특수방음벽 버튼을 누르고 자라고 했다. 밤에도 이어지는 게임으로 인한 소음 때문에 유저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엔 갓필드에서 특수방음벽을 무료로 설치해주었다. 

셋은 졸린 눈을 비비며 방으로 돌아왔다. 혜성이 붉은색의 특수방음벽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바닥을 제외한 천장과 사면 벽에 방음벽이 내려왔다. 이 방에선 시끄럽게 연습해도 문제없을 듯했다.

예선은 모레 아침이다. 예선곡은 자작곡이 아니라 한국의 명곡 중 한 곡을 선정해서 불러야 했다. 선정된 명곡 리스트를 보던 혜성은 <꽃땅>을 발견하고 이 노래로 정했다. 아이들과 몇 번이나 연습했던 곡이므로 자신 있었다. 

혜성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에는 룬아가 준 꽃돌이 있었다. 놔두고 올까 하다 이걸 갖고 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룬아의 말이 떠올라 갖고 왔다. 

멋지게 예선 무대를 찢고, 반드시 우주대스타로 다시 태어나야지! 근데 그 후에 탱자 밴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배달과 라인은 배포와 룬아를 찾으러 갈 게 분명했다. 정말 청명산 지하에 둘이 있을까? 거기 대체 뭐가 있길래 못 나오고 있는 걸까? 진짜 예선 무대가 끝나면 배달 라인과 함께 둘을 찾으러 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계획대로 발을 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혜성은 여독이 쌓여서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벌써 12시였다. 사방이 막힌 방음벽으로 인해 완전 깜깜해서 계속 밤인 줄 알았다. 혜성은 얼른 방음벽을 올렸다. 사면의 벽이 올라가니 눈에 따가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라인과 배달이 인상을 구기며 일어났다.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아 통큰 하우스를 나와 맞은 편에 명성에서만 파는 떡버거집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셋은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음악 소리가 엄청 컸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시끄럽지도 않은지 덤덤히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귀를 막은 채 간신히 키오스크로 주문한 후 갓 만들어진 떡버거를 챙겨 얼른 통큰 하우스로 돌아왔다. 

흑임자 찹쌀떡 버거를 먹던 라인이 말했다. 

“명성에는 진짜 머거리병 환자 천지인가 봐. 어떻게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콩고물이 가득 묻은 인절미 버거를 먹던 배달이 말했다. 

“헤, 헤드셋이라도 끼고 다녀야겠어. 어, 어서 먹고 나가자. 날 밝을 때 찾아야지. 너, 너무 오래 잤어.”

고추장 소스가 들어간 떡갈비 가래떡 버거를 먹던 혜성이 흠칫 놀랐다. 

“뭐? 오늘부터 찾는다고? 애들 찾는 건 내일 오디션 끝나고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연습해야지!”

배달과 허연 콩가루를, 라인이 검은 흑임자 가루를 뿜으며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우주대스타 예선 연습해도 모자를 시간에 룬아와 배포를 찾으러 가는 건 말이 안 됐다. 식혜로 타는 목을 축인 혜성이 배달과 라인을 설득했다. 

“제발 우주대스타 예선 끝나고 찾자! 부탁할게.”

벌써 인절미 버거를 다 먹은 라인이 일어섰다. 

“미룰 게 따로 있지. 비싼 숙박비 내고 하루 일찍 오자고 한 건 다 애들을 하루라도 빨리 찾기 위해서야.”

배달은 가지고 왔던 커다란 배낭을 짊어졌다. 둘은 혜성을 배신자 취급하더니 떡가루를 휘날리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휑한 방에서 혜성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당연히 예선은 통과할 줄 알았는데 이러다간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 어떡하지. 정말 우주대스타 오디션이 열리길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혜성은 착잡한 마음으로 혼자 건반을 쳤다. 오후가 훌쩍 지났는데도 라인과 배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둘에게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 사이 우주대스타 주최 측으로부터 내일 오전 9시까지 방송국의 지정 대기실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오디션이 임박했음이 절감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세상을 놀라게 할 공연을 하고 좋은 결과를 안고 다시 화성에 돌아가리라 예상, 아니 바라왔다. 그런데 일이 전혀 예상과는 다르게 흐르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토록 도와준다 믿었던 우주가 이제 등을 돌려버린 걸까? 한 번만 더 도와달라고 우주에게 빌고 또 빌다 보니 스르륵 눈이 감겨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일어나니 깜깜한 밤이었다.

창밖으로 어제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눈동자가 벌건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람들은 근처 매산의 정봉 근처로 우르르 몰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도 몰려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에서 나와 1층의 카운터로 내려갔다. 통큰 하우스 주인은 근처에 아마 보물이 묻힌 것 같다며, 붉은 렌즈를 끼고 ‘명성에서 보물찾기’에 합류할 준비를 하더니 후다닥 나가버렸다. 

혜성은 셀뷰넷 중계를 통해 핸드폰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매산의 정봉 옆의 밤나무 밑에는 정말 나무 상자가 묻혀 있었다. 

황금신 갓파더의 명령대로 물 대신 끓인 콜라를 넣은 사발 라면을 먹고 대형 비닐봉지로 하체를 감싼 뒤 강시처럼 콩콩거리며 정상까지 올라온 남자 하나가 잔뜩 기대하며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초콜릿으로 만든 개똥이 들어 있었다. 실망에 가득 찬 남자가 허공에서 뭔가를 보더니 넙죽 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똥 초콜릿을 뜯어서 맛있게 먹었다. 

중계 중인 시뻘건 렌즈를 낀 BJ는 갓파더가 나타나 초콜릿 개똥을 먹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초콜릿이지만 모양은 진짜 개똥 같았다. 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 창을 끄려다 긴급 속보로 광기동 전체가 정전이 났다는 기사를 봤다. 

혜성은 다시 셀뷰넷에 접속해 광기동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명성에서 가장 요란한 빛을 뽐내던 광기동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새까맸다. 청력이 떨어져 귀가 잘 안 들리는 광기동 주민들은 단체로 확성기를 들고나와 항의했다. 잠깐 봤는데도 귀가 따가웠다.

혜성은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바닥에 널브러져서는 라인과 배달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이들이 안 오면 혼자라도 나가야 하나? 지금 친구들이 연락도 끊긴 채 돌아오지 않는데 우주대스타 생각이나 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밤에도 대낮보다 더한 온갖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명성에 있는데 혜성은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컴컴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인간들이 쏘는 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화성의 밤은 별이 잘 보인다. 별을 보며 꿈꿀 수 있는 화성의 밤이 인간의 만든 빛으로 정신없는 명성의 밤보다 왠지 아름다운 것 같았다. 특히 갓타워 꼭대기에 있는 사이언 광팬이 붙인 LED 응원 간판에서 나오는 요란한 빛은 정말 눈꼴셨다. 저 우주대장사꾼의 인기는 언제쯤 꺾일까. 얼른 갓타워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차단벽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제발 배달과 라인이 누른 것이길 바라며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배포처럼 헤드셋을 쓴 배포와 거의 똑같이 생긴 남자가 보였다. 혜성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배달 아빠다.”

배달 아빠? 대화재 때 실종됐다던 그분?

문을 연 혜성은 깜짝 놀랐다. 배포와 거의 똑같이 생긴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 남자가 배달이 메고 나갔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홀딱 젖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순간 배포로 착각했지만 세월의 흔적 때문에 배달 아빠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대답은 그는 다짜고짜 혜성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꽃돌 있지? 그것 좀 줘. 당장!”

룬아가 준 꽃돌을 배달의 아빠라는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젖은 옷을 입은 데다 안색이 창백한 배달 아빠는 휘청거렸다. 혜성은 일단 자신의 여벌 옷을 빌려줬다. 혜성의 옷으로 갈아입은 배달 아빠는 메고 온 배낭을 풀어서 안에 있는 걸 점검했다. 방수 가방이라 안에 있던 것들은 대부분 멀쩡했다. 그가 다급하게 다시 말했다. 

“어서 꽃돌, 꽃돌을 줘!” 

“왜요? 저한테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셔야죠!”

“룬아랑 애들이 잡혔어. 룬아가 많이 아파, 살리려면 꽃돌이 있어야 해.”

애들이 잡혔단 소식은 혜성의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이 어둠에서 벗어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저도 애들을 구하러 갈래요!”

“안 돼. 꽃돌만 줘!”

“애들이 있어야 오디션을 볼 수 있다고요! 저도 도울게요!”

“완전 충격적인 일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다. 각오해야 해.”

여기까지 와서 우주대스타에 못 가는 것보다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멤버들이 있어야 우주대스타에 나갈 수 있다. 혜성이 당당하게 외쳤다.

“네! 상관없어요! 어서 가요!”

배달 아빠는 혜성이 든 악기 가방을 나누어 어깨에 짊어졌다. 아직 시간이 있다. 애들을 구한 다음 오디션장으로 직행하면 된다. 

우주대스타 무대에 탱자 밴드 완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혜성은 온갖 빛으로 번쩍이는 명성의 밤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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