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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선화 Oct 12. 2024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화성

화성고 개교 이래 학생들의 최대 수난이 일어났다. 전교생들 대부분이 구토와 복통에 시달리며 픽픽 쓰러졌다. 쓰러진 아이들의 얼굴에는 보라색 반점이 돋아났다. 화성고와 가까운 중고등학교 세 곳에서도 화성고보다는 적지만 발병자가 나타났다. 

화성 시내 곳곳의 병원엔 입원한 학생들이 가득했다. 병원의 진단 결과는 신종 콜레라였다. 남반구의 여러 나라들과 기후 난민촌 등지에서 창궐하는 신종 콜레라가 무더운 여름이 아닌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발생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화성시 보건의료과에선 일단 난민 아파트와 학교 급식업체로 배급된 식재료부터 조사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시퍼런 애들 대다수가 입원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탱자 밴드 멤버들은 멀쩡했다. 급식을 먹기 싫어 대빵과 학교 앞 로봇 분식에서 점심을 자주 때워서인지도 모른다. 혜성은 어쨌든 우주가 탱자 밴드를 지켜준 것만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최초 빠순이 룬아가 걱정이 됐다. 룬아는 핸드폰이 없어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혜성은 지옥에 발을 들인다는 심정으로 난민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 주위엔 녹슨 쇠를 재활용해서 만든 울타리가 처졌고 새열 엄마의 로봇개 공장에서 대여한 경비용 로봇개가 동원되며 철저히 봉쇄돼 있었다. 큰맘 먹고 왔는데 한발도 들일 수 없었다. 안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의료진과 시청 관계자들 몇몇뿐이었다. 

경비용 로봇개 예시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온 혜성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태양광 풍선을 바라보며 오매불망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다. 봉쇄된 난민 아파트에 파견 중인 의사인 엄마와 화성시 외국인 체류과 소속인 아빠에게 그곳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한집에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요즘 둘의 얼굴은 보기가 참 힘들었다. 

엄마 아빠는 없지만 오랜 세월을 산 탱자나무는 늘 혜성과 함께였다. 탱자청을 만드느라 탱자를 다 따 비어 있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탱자야. 룬아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못 봤어. 우리 집을 지켜주듯 룬아를 좀 지켜주면 안 되겠니.

뾰족한 가시를 드러낸 굵다란 탱자나무는 요동도 없었다. 혜성은 제법 쌀쌀한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와 올해 수확한 탱자로 만든 탱자청을 넣은 차를 마셨다. 몸이 좀 뜨근해지는 것 같은데 방은 추웠다. 정신이 없어 태양광 충전기를 켜놓지 못해 보일러가 꺼져 있었다. 그는 꽉 끼는 히트텍과 티셔츠에 태양열 전지를 넣는 보온 점퍼까지 입고, 방바닥에 누워있다 깜빡 잠이 들었다. 

돌처럼 식은 방바닥이 차가워 일어나니 자정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잔뜩 지친 얼굴로 그제야 퇴근했다. 둘은 종일 빵 한 조각밖에 못 먹었다며 오자마자 부엌에 허겁지겁 들어갔다. 사흘은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는 엄마 아빠를 보며 물었다. 

“사람들은 어때? 우리 학교 애들이랑 같은 신종 콜레라 맞지?”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너희 학교 애들이랑 같은 증상은 맞는데 콜레라는 아니야. 감염된 사람의 배설물이나 구토물에 노출된 물과 음식을 먹어도 전염이 안 돼. 내 생각엔 놈펜 같아. 놈펜 균과 신종 콜레라균이 비슷해서 착오가 생긴 거야.”

아빠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말이 돼, 놈펜은 인간이 최단기간 정복한 박테리아라고. 이젠 지구에 없어. 그리고 전염성이 없다는 걸 어떻게 장담해? 수용된 사람 중에 안 아픈 사람 찾기가 더 힘들잖아.”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간호사 몇 명이 모르고 환자들의 몸에서 배출한 세균에 노출된 빵을 며칠 전 먹었는데도 아무 증상이 없었어.”

아빠는 미심쩍은 얼굴로 콩나물국을 들이마시다 말했다. 

“그건 그 간호사가 면역력이 강해서 그런 거고. 놈펜은 진짜 아니야. 세계보건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발표까지 했잖아……. 병도 걱정이긴 한데 아파트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있어.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불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땅이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비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주 이상해.”

빈 그릇을 치우던 혜성은 멈칫했다. 

“그건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인데……!”

아빠가 미간을 찌푸렸다.

“난민들도 그 소리 같다면서 더 불안해하더라. 소리 때문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게 말이 되냐? 세상보단 인간이 먼저 멸망할 거 같은데……”

화성에 세상에 멸망하는 소리가 들리다니. 이미 화성은 대화재로 기후비상사태에 맞먹는 재앙을 겪었다. 불안한 일을 많이 겪은 난민들이 다른 소리를 세상이 멸망한 소리라고 착각했겠지. 그런 소리가 설마 화성에 들릴 리가 없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 이상한 소리는 떡하니 셀뷰넷에 떴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혜성은 영상을 재생했다. 불이 타고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기묘하게 섞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혜성의 피부에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세상이 멸망의 소리에 대한 소문은 금세 화성 시내에 쫙 퍼졌다. 쉬쉬하며 이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 했던 시청에선 소리의 출처를 밝히겠다며 새열 엄마의 로봇개 공장에서 소리 탐지 로봇개까지 빌렸다. 낮에는 경비용 로봇개가, 밤이면 소리 탐지 로봇개가 난민 아파트 주위를 순찰했다. 난민 아파트는 완전 로봇 개판이었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세상의 멸망하는 소리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투입됐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화성에 들리는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파견된 소리 탐지 로봇개는 물자 부족으로 다른 기계에서 나온 여러 부품을 조합해 만들어서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새열 엄마의 로봇개 공장의 로봇들은 하나같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는데 한가지 성능만은 월등했다. 바로 날카로운 금속 마취 이빨이었다. 그 이빨 안에는 마취제가 들어 있는데 추적 대상을 물면 금방 마취가 됐다. 근데 이 소리 탐지 로봇개는 마취 이빨도 없이, 오로지 소리만 탐지하도록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 소리 탐지 로봇개가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의 실체를 밝힐 거라고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 

괴상한 소리에 대한 조사를 안 할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현장에 내보낸 이 소리 탐지 로봇개는 생각보다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소리 탐지 로봇개가 난민 아파트 주위를 순찰하며 얻은 데이터에는 소리가 울린 시간과 소리가 났던 곳의 위치 좌표가 정확히 데이터로 남겨져 있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는 밤 10시에서 1시 사이에 20분 간격, 그러니까 한 시간에 세 번씩 울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난민 아파트 뒷산과 101동 옆의 버려진 놀이터, 그리고 가장 낡은 104동의 최고층이었다.

그동안 지구에 울렸던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는 주로 남반구의 웅장한 자연을 품은 지역이나 개발이 조금씩 시작된 토착민들의 주거 지역에서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난민 아파트 주위 의 산은 기껏 200m 정도의 낮은 산이고, 대화재로 민둥산이 된 곳이 많았다. 울창한 자연이 펼쳐진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부터 쭉 사람이 살았던 땅도 아닌 곳에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가 들려온 건 좀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성시민들은 화성에 재난이 임박했기에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 거라며 불안에 떨었다. 그들의 불안을 달래주는 건 지구용 우주복밖에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집에 와서도 우주복을 벗지 않으려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몸을 보호해주는 우주복을 입고 즉시 도망칠 요량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그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우주복을 입고 달리다간 몇 걸음 못가 나자빠져 맨몸으로 달리는 사람들의 발에 깔려버릴 것만 같았지만, 사람들은 우주복에라도 의지하고 싶어 했다. 

화성 시민들보다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를 더 불안해하는 건 당연히 그 소리를 생생하게 가까이서 듣는 난민들이었다. 기후비상사태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떠나온 땅에서 들렸던 소리가 비교적 안전한 줄 알았던 화성에서 또 들리리라곤 그들은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화성도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난민들은 결국 봉쇄된 아파트를 탈출했다. 대부분 가다가 붙잡혔지만 행방이 묘연한 난민도 더러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한 젊은 남녀는 아파트 주변에 설치된 울타리를 지키고 있던 경비 로봇개에게 커다란 돌을 던져 머리를 박살 낸 뒤 탈출에 성공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화성시민들 몇몇은 이참에 난민들 모두 화성을 탈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종 콜레라도,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도 난민들이 오고 나서 생긴 일이기에, 화성 시민들에게 난민들은 정말 자신들을 멸망시킬 멸망 인간들이었다.

화성고는 시민들에게 멸망 인간들이 다니던 위험한 학교로 확실히 낙인찍혔다. 일주일 휴교한 학교는 겨우 다시 열렸다.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아이들로 인해 교실의 책걸상의 반은 텅텅 비어있었다. 등교한 아이들은 거의 지구용 우주복이나 방호복을 입고 나타났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화성고 학생이라는 게 티 나는 한복 교복을 가려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온 혜성은 초조하게 아빠로부터 룬아의 소식이 오길 기다렸다. 돌아온 대답은 배급을 받을 때 찍는 전자팔찌가 거의 일주일째 QR등록이 안 돼 있다는 거였다. 아빠는 조심스레 그 애의 아파트 탈출 가능성을 입에 올렸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믿으며 혜성은 룬아가 혹시 화성산에 있나 싶어 수업을 째고 산을 돌아다녔다.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룬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룬아가 난민 아파트를 탈출한 걸까?

잔뜩 지쳐서 교실로 돌아온 혜성의 귀에 반장 예리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리는 난민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을 늘 전교 2등하게 만드는 배달이 난민 아파트 근처의 개판에 산다는 걸 슬쩍 흘리고 있었다. 

배달이 어디 사는지 잘 몰랐던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배달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난민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난민도 아닌 배달은 ‘멸망 인간’ 취급받았다. 

아이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배달은 라인에게 대빵 사주는 것도 잊고 책 속에 기어들어 갈 것처럼 공부만 했다. 약속했던 대빵이 제시간에 오지 않자 불만에 가득 찬 라인은 직접 배달의 반으로 쳐들어갔다. 배달은 이제 직접 사 먹으라며 돈만 건넸다. 인기빵인 대빵은 이미 다 팔려 사 먹을 수 없기도 했고, 졸업하기까지 대빵을 책임지기로 한 배달이 약속을 저버린 것 같아 라인은 부들부들 떨었다. 

혜성은 라인이 또 대폭발하여 배달을 패지는 않을까 매우 염려가 됐다. 배달을 쓰러뜨린 건 라인의 주먹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쉬지 않고 입력된 학습 데이터들이었다. 공부만 하던 배달은 체육 시간에 운동장을 돌다 쓰러졌다. 급히 연락을 받고 온 배필은 잠도 안 자고 공부하던 배달을 구박하더니 그대로 조퇴를 시켜 집으로 데려갔다. 

배달이 잠을 아예 안 자고 공부를 했다는 사실에 혜성과 라인은 경악했다. 같은 멤버가 쓰러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둘은 학교를 마치고 개판으로 갔다. 여전히 철통 봉쇄 중인 난민 아파트가 눈에 들어봤다. 울타리 밖에선 도사견처럼 사납고 한 덩치 하는 검정색 경비 로봇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여기 오니 룬아가 또 떠올랐다. 룬아가 정말 화성을 탈출했을까?

혜성이 룬아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그저 개라면 로봇개도 좋은 라인은 겁도 없이 울타리 쪽으로 갔다. 가까이 오는 인간을 감지한 로봇개가 사납게 짖었다. 새열 엄마 로봇개 공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날카로운 금속 이빨이 섬뜩하게 보였다. 저건 이빨이 아니라 마취 주사기였다. 겁이 없는 라인은 진짜 개도 아닌 게 개처럼 짖어서 신기하다며 계속 가까이 다가갔다. 로봇개가 라인의 코앞까지 와 으르렁거렸다. 혜성이 얼른 라인의 도포 자락을 찢어질 듯 잡아당기며 억지로 로봇개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난민 아파트 울타리 안쪽에서 지구용 우주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개새’를 들고 뒤뚱뒤뚱 오며 소리쳤다. 

“으아악, 며, 멸망 인간이다!”

그 사람은 지구용 우주복을 입은 새열이었다. 울타리 앞에서 멈춰선 새열은 우주복의 옆구리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몸이 붕 뜨며 울타리를 뛰어넘긴 했는데 하필 울타리 밖에서 짖어대는 로봇개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산처럼 무거운 새열이 우주복까지 입었으니 그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로봇개는 머리와 몸 다리가 분리가 돼 버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마취제가 박혀있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그저 귀엽기만 한 로봇개가 눈앞에서 아작나자 웅크리고 있던 라인의 분노가 또다시 폭발했다. 라인은 강철로 된 우주복을 입고 있는 새열에게 분노의 일격을 날렸다. 아무리 헐크처럼 급작스런 힘이 분출되는 라인이지만 강철로 된 우주복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새열을 때려눕히지 못하자 라인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갔다. 

“로봇개도 개야! 살려 내 당장!”

다시 라인이 새열의 몸을 감싼 우주복을 세게 쳤지만 주먹만 자꾸 까지고 피까지 났다. 혜성은 라인이 더 다치는 꼴을 보기 싫어 억지로 새열로부터 떼어냈다. 우주복 덕분에 라인에게 얻어터지지 않은 새열이 덜덜 떨며 일어났다. 

“너희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아파트 안에 갑자기 젊었다 늙었다 하는 진짜 멸, 멸망 인간이 있다고! 사람을 헤치는 걸 봤어!”

새열은 무거운 우주복을 입은 몸으로 최대한 빨리 도망갔다. 라인은 도망가는 새열과 부서진 로봇개를 보며 멧돼지를 놓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겁쟁이 자식, 저 안엔 왜 들어간 거야?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냐?”

아까 새열의 손에 있던 ‘개새’가 떠올랐다. ‘개새끼’라는 말을 들어도 라인이 폭발하므로 절대 개새를 개새라고 하면 안 된다. 

“‘날개 있는 개’ 찾으러 들어간 것 같던데……”

“그런 걸 갖고 놀다니, 유치하게. 저 안에 멸망 인간이 있다고? 맞아!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가 들린 곳엔 재앙이 일어나고 멸망 인간이 나타난다고 하잖아. 설마 진짠가?”

“원래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한 자식이잖아. 혼자 이상한 상상에 빠져 괜히 헛소리한 거겠지.”

둘은 다시 발길을 개판으로 돌렸다. 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라인은 손에 생긴 상처 따윈 싹 잊고 널따란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혜성은 개판 앞 야외무대 쪽으로 가다 배달네 가족을 봤다. 가방을 멘 배달을 사이에 두고 지화자가 백허그를 하고 배필이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배달이 성가신 얼굴로 누나와 엄마에게 평상시답지 않게 큰소리로 외쳤다. 

“고, 공부하러 가, 가야 돼!”

배필이 배달의 손목을 꼭 잡은 채 소리쳤다. 

“너 공부만 하다 죽을래”

배달을 압박하듯 백허그를 하고 있던 지화자가 말했다.

“제발 좀 쉬어!”

둘에게서 벗어나고픈 배달이 말했다. 

“아, 안 돼. 꼬, 꼭 의대 가, 갈 거야! 화, 화성엔 사, 살기 싫다고…… 며, 명성 의대 가서 엄마랑 누 누나, 낭이 여기서 탈출시켜 주, 줄 거야.”

지화자가 배달의 등에서 떨어지더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화성이 좋아. 계속 여기 살 거야.”

“거, 거짓말 마. 나, 난민 아파트 병 터지고 손님도 뚝 끊겼잖아. 이대로 가면 우, 우린 굶어 죽어. 화, 화성은 이제 곧 망할 거라고. 여, 여긴 살 데가 모, 못돼.”

배필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배달을 쏘아붙였다. 

“우린 여기 있어야 해. 화성은 아빠 고향이야. 절대 떠날 수 없어.”

배달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 아빤 아, 안 돌아와. 대 대화재 때 죽었잖아.”

지화자와 배필이 경악해서는 동시에 외쳤다. 

“아니야!”

배필이 꽉 잡고 있던 배달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빤 절대 죽지 않았어. 내 필은 절대 틀리지 않아. 곧 돌아올 거야. 엄마랑 내가 아빠가 다시 돌아오길 얼마나 기다리는 줄 알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의대 가서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엄마랑 나랑 낭이는 여기서 계속 살 거니까.”

배달은 대화재 때 실종된 아빠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믿는 엄마와 누나를 지긋지긋했다. 집 나가는 개처럼 개판같은 집을 뛰쳐나오던 그는 라인을 맞닥뜨렸다. 민망한 배달이 애써 눈을 돌리다 라인의 상처 입은 손을 보고 놀라 물었다. 

“또, 또 누구 때렸어?”

라인이 목소리를 깔았다. 

“공부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친 건 뵈는 모양이네. 네 몸도 지금 보이진 않지만 그놈의 공부 때문에 썩어들어가고 있거든. 의대 가기 전에 내 손에 죽지 않으려면 당장 집에 들어가. 오늘 개 로봇 박살난 것 보고 폭발했는데 아직도 주먹이 근질근질거려.”

엄마와 누나에겐 그렇게 당차게 대들던 배달은 피 묻은 라인의 손을 보고 덜덜 떨더니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턱 끝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온 그는 구급상자를 가져와서는 라인의 까진 손등을 소독해줬다. 오늘내일하는 중환자가 살날이 창창한 사람을 돌봐주는 것 같았다. 라인이 성가셔하더니 배달을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잠시 후 지화자가 숙면에 좋다는 목련꽃차를 가지고 왔다. 라인의 협박하에 배달이 억지로 목련꽃차 한 잔을 쭉 들이켰다. 남은 목련꽃차는 혜성과 라인이 마셨다. 며칠 잠을 못 잔 배달은 곧 곯아떨어졌다. 배달이 자는 걸 보던 라인은 자기도 졸린다며 방바닥에 그냥 엎어져 잤다. 좀 추웠는데 따뜻한 차를 먹으니 몸이 노곤해지며 혜성의 눈도 절로 감겼다. 

꿈에 룬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거센 바람이 불며 룬아의 마스크가 날아가 버렸다. 이때다 싶어 룬아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등을 팍 치는 순간 저녁 먹으라는 배필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꿈에서도 룬아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채 혜성은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날이 어둑했다. 라인은 개를 좀 더 보고 간다고 해서 혜성은 홀로 개판을 나왔다. 

쓰레기 언덕을 넘으니 또 난민 아파트가 보였다. 아파트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새까맸다. 혜성은 가방에서 보드를 꺼냈다. 순식간에 어둠을 뚫고 가고 싶어 윙모드로 설정했다. 휙 바람처럼 난민 아파트를 스쳐 지나가는데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 영상에서 듣기만 했던 바람이 부는 듯 불이 타는 듯 비가 내리는 듯 땅이 꺼지는 소리가 섞인 그 불가사의한 소리.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였다. 손목에 찬 보드 조작 팔찌의 버튼을 눌려 속도를 최고로 높였다. 어둠을 바람처럼 가르던 보드는 얼마 못 가 땅으로 내려앉았다. 

갑자기 속도를 높이니 전지가 빨리 소모돼서였다. 이제 믿을 건 두 다리밖에 없었다. 혜성은 세상을 어둠으로 가둘 것 같은 그 해괴한 소리를 피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물, 불, 바람, 땅 소리가 합쳐진 그 묘한 소리가 귀에 다시금 요동쳤다. 귀를 막은 채 멸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리가 부서져라 뛰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혜성은 겨우 완전히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와 차단된 집에 도착했다. 그는 얼른 조명이란 조명은 다 켰다. 오늘은 도저히 촛불만으로 견딜 수 없었다. 빛이 가득한 곳에 있어야 어둠 속에서 울리던 그 소리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어둠의 소리가 온몸을 잠식해 버린 듯했다. 

화성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죽음의 도시에선 당장 도망치는 것만이 사는 길일까? 그래서 룬아도 떠난 걸까? 화성을 뜨면 어디로 가야 하지?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떠날 곳을 찾아보고 있는데 깜깜한 암흑이 찾아왔다. 전기가 다 떨어진 것이다. 예비용 전지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촛불을 켰다. 이젠 밤에 촛불을 켜놓은 게 일상이고, 적응되다 보니 익숙해졌는데, 오늘은 에너지가 부족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너무 두렵고 서글프기까지 했다. 

이렇게 전기가 하나둘 나가는 것처럼 언젠가 세상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영원한 어둠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불현듯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가 들린 뒤 기후비상사태를 겪은 사람들을 떠올랐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일이 정말 눈앞에 다가오면 어쩌지? 우주대스타의 꿈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울부짖던 숱한 사람들의 울음이 아까 들었던 세상의 멸망하는 소리와 섞여 귓전에 울렸다. 점점 초가 타며 가슴도 같이 타들어 갔다. 숨통이 막히듯 초조했다. 

초가 손톱만큼 남은 시각에 아빠와 엄마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촛불을 넋 놓고 바라보며 머릿속에 가득 찬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를 떨치지 못하고 있던 혜성은 뭉클하게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엄마 아빠 옆에 있을게.”

아빠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세상이 왜 멸망하냐? 그런 거 믿지 말라고 했지! 역시 조작된 소리였어. 개 로봇 공장 사장이 범인이었어. 사장 아들이 너네 학교 다닌다고 하던데.”

화성을 발칵 뒤집은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는 어이없게도 새열의 엄마가 보급한 경비용 로봇개가 내는 소리였다. 

이 사실이 발각된 건 오늘 새열이 부수고 튄 경비용 로봇개 때문이었다. 지난번 젊은 남녀가 탈출하다 부순 경비용 로봇개 때문에 새열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받은 시청 외국인 체류관리과 직원은 윗선에서 엄청난 갈굼을 당했다. 

로봇을 부순 사람이 로봇공장의 아들이라는 걸 알 리 없는 직원은 돈 밝히는 새열 엄마가 오늘 부서진 로봇개로 또 얼마를 청구할지 겁이 나 혼자 분리된 로봇개를 조립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힘들게 분리된 로봇의 몸체와 네 다리를 붙여놓고 나니 밤 열 시였다. 머리는 어떻게 붙이나 한참 고민하며 현장에서 주운 나사와 부품들을 보며 골몰하고 있을 때, 분리된 로봇 개의 머리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란 직원은 나머지 경비용 로봇개들을 동태를 살폈다. 몇 마리가 열 시만 되면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아파트 뒷동산, 놀이터, 아파트 고층으로 슬그머니 올라가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를 냈다. 소리 탐지 로봇 개는 경비용 로봇개가 내는 소리를 녹음만 해서 소리가 난 곳의 좌표와 시간만 데이터로 남기고 있었다. 

소리 탐지 로봇개 예시

소리의 진짜 출처를 알고 나니 혜성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극한의 블랙홀로 끌고 들어갔던 그 소리가 조작된 소리라니……. 

새열 엄마는 곧 체포됐고 뉴스에까지 나왔다. 땅딸막한 웰시코기 같은 새열 엄마는 난민들과 화성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사랑하는 아들, 로봇개들과 함께 화성에서 널널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어리석은 맘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눈물이 가짜임을 단번에 알려 차렸다. 확대한 화면으로 왕눈곱이 포착돼서였다. 왕눈꼽은 ‘폭포’라는 인공눈물을 과대하게 사용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화성에서 들리는 세상의 멸망하는 소리에 대한 의문은 새열 엄마의 왕눈곱으로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왔다. 

대체 진짜 그 소리의 정체는 뭘까? 

최근 일본에서 들렸다는 세상의 멸망하는 소리를 찾아 듣다, 화성에서 들리는 또 다른 괴이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와 달리 출처가 확실한 그 소린 미친 돼지들이 집단으로 양돈 농장을 뛰쳐나와 발광하는 소리였다. 사람까지 공격하는 미친 돼지들의 소란은 명성에서 온 특수 로봇 특공대가 겨우 진압했다. 

셀뷰넷에 올라온 돼지들의 사체를 보니 괜히 불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이런 일이 계속 터지지. 화성은 진짜 사람 살 곳이 못 되나.

아니다. 모든 건 내 탓이다. 어두운 생각이 나를 어두운 세계로 끌고 갔다. 이제 마음을 다잡아야지. 세상이 멸망하는 소리를 믿고 공포에 빠졌던 경험을 다신 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쉽게 믿어선 안 된다. 

룬아도 화성에 있겠지. 워낙 병 때문에 어수선해서 난민들 관리가 안 돼 착오가 있었던 거야. 

아빠가 그럴 수도 있다고 했잖아. 곧 다시 만날 거야!

혜성은 룬아가 준 주머니 속 꽃돌을 만지작거렸다. 

허튼 생각 말고 이젠 우주대스타가 된다는 꿈만 믿을 거야!

꿈을 이루기 위해 개판으로 오던 혜성은 마음이 맑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꽃할배가 목탁을 치고 있었다. 죽어가던 세상이 맑게 변하며 아름답게 살아나는 듯했다. 꽃할배는 치던 목탁을 나무 상자에 넣고는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꽃돌이끼리 또 만났네. 우주대스타 준비는 잘 돼가고 있어?”

“네. 저야 늘 꿈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오호, 그럼 이번에 우승할 수 있겠는데, 화성에서 우주대스타가 꼭 나왔으면 좋겠어.”

어리벙벙하게 있던 혜성은 얼른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화석 에너지 대란 이후 멈췄던 우주대스타가 다시 열린다. 갓필드에서 주관하는 이번 <우주대스타>는 화성에 대체 에너지를 찾으러 간 사이언을 응원하고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었다. 

우주대장사꾼 사이언이 간만에 돈을 제대로 쓰네!

혜성은 얼른 이 기쁜 소식을 개판의 야외무대에서 악기를 세팅하고 있는 라인과 배달에게 전했다. 

“세상을 살리는 소리를 지구에 퍼뜨릴 때가 도래했도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망으로 가득 찬 혜성의 들뜬 목소리가 개판이 들썩였다. 라인은 재미있겠다는 얼굴이었고,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배달은 퍽 당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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