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에서 이어집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먹을 채소도 약을 치지 않으면 재배 수준이 형편없다.'는 얘기를 수도없이 들었다. 내가 약이나 비료를 치지 않았어도 조상 대대로 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온 집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농사짓는 땅의 흙에 이미 약이나 비료 성분이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비료를 주면 벌레가 생기고 그 벌레 때문에 농약을 치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데 흙이 건강할 수 있을까? 내가 당장 농약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바로 건강한 농산물이 수확될까? 거기다, 흙만 문제인가! 자가채종을 하지 않고 종묘사에서 씨앗을 사다가 심었다면 살충 처리, 살균 처리, 소독 처리된 씨앗을 샀다는 얘기고, 그러면 초반에 진딧물이 끼고 상태가 좋지 않은 싹이 나오는 건 정해진 이치다.
여기에, GMO 종자까지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아직 끝이 아니다. 씨앗을 뿌리기 전에 흙에다 뿌리는 토양소독제도 있다. 나아가 채소나 과일만 이럴까? 육류, 생선, 가공식품 뭐 하나 장난치지 않는 게 있었나? 참기름만 해도 참기름 한방울 섞지 않고도 참기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참기름은 절대 마트나 방앗간에서 사다먹지 않는다. 정육점 혹은 마트 내 정육 코너에 진열된 고기 색깔이 그렇게 예쁜 것도 약품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단무지의 아삭함조차 약품으로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전혀 몰랐던 사실들인데 결혼하기 전 식품첨가물 강연에 갔다가 내 귀로 똑똑히 들었던 내용들이다.
벌레가 먹은 과일이나 채소를 두고 벌레가 맛있는 것만 골라먹는 거니까 벌레가 먹은 것은 맛있다는 증거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벌레는 비료의 질소 성분을 먹으러 오는 거다. 벌레가 많이 생기니까 농약을 주는 거고. 어렸을 때 엄마랑 이웃 어른들이 대화를 할 때, "비료(비닐 포대에 담긴 화학비료)를 주면 진딧물이 껴서 골치라니까." 옆에서 주워들었던 이 말을 기억한다. 농작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벌레가 쓸모없는 성분을 먹어주는 건데 농부는 그 벌레들이 죽으라고 농약을 뿌린다. 사람으로 치면 감기가 걸렸는데 기침이 나고 열이 나고 콧물이 나는 걸 견디지 못하고, 증상만 보였다 하면 병원으로 달려가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는 거랑 같은 거다. 감기 증상은 몸속의 안 좋은 성분이 빠져나가는 과정인데 약을 먹어서 그걸 방해한다. 나는 감기가 걸리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몸속의 안 좋은 독소들이 빠져나가겠구나 이런 생각에 신이 난다.
행여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넘어가는 겨울에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몸이 감기 걸릴 힘도 없을만큼 약해져 있나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물론, 식구들은 이런 나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속으로만 좋아한다. 비료가 하는 일은 '더 달게, 더 크게, 더 많이'다. 벌레가 먹은 게 맛있다는 증거라면 비료 덕분이라는 얘기다. 집 근처 하천에서 산책하다 보면 동물의 배설물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는데, 벌레가 꼬여 있다가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후다닥 도망가 버린다. 이걸 밭에다 적용하면, 벌레가 파먹은 과일, 벌레가 뜯어먹은 채소가 맛있다고 할 수 있나? 가축의 배설물을 비료로 쓰면 벌레가 생겨서 그 벌레를 죽이려고 농약을 쓴다. 이 얘기는 가축의 배설물을 비료로 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지 않아서 농약 사용이 줄어든다는 뜻이 된다. 식물성 퇴비를 쓴 농작물은 병충해 피해가 적다는 사실. 물론, 한두 해 농사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원래 샤인머스켓을 먹지 않았다. 작년에 샤인머스켓 농사를 짓는 집에서 한 박스 선물로 받았는데 아이가 맛있다고 자꾸 찾아서 작년에 처음 맛을 봤다. 처음엔 뭔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나중엔 씨 없는 포도를 만들기 위해 지베렐린 호르몬제 처리를 한다는 걸 알고 사먹을 생각을 애초에 접었기 때문이다. 어떤 건 포도알 모양이 못 봐줄 정도로 괴상하게 생겼고, 색깔도 청포도랑 다르게 맑은 색이 아니고, 다 먹고 난 포도송이 줄기도 아주 굵어서 자연스럽지 않고, 아무리 이쁘게 봐주려고 해도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여전히 거부감이 든다. 거봉, 씨없는 수박도 먹지 않는다. 씨가 없다는 건 다음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먹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먹고 싶지 않다. 수경 재배 채소도 사지 않는다. 햇빛을 받아먹고 땅의 영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자란 채소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귤도 예전에는 씨가 있었다는데 아무리 귤을 사먹어도 귤 알맹이 속에 씨가 들어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귤을 먹어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걸 끊어? 말어?
또 하나 힘빠지는 일은...... 채소나 과일은 농약이나 비료 때문에 먹기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로열티나 종자의 출신지 때문에 구입이 고민되기도 한다. 팽이버섯은 일본에 로열티를 지불한다. 양송이버섯은 가격의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로열티로 나가고 있었는데 국산 품종이 개발돼 로열티 걱정을 덜었다는 뉴스가 있다. 새송이버섯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버섯이 아니다. 양배추는 85%가 일본산 종자다. 양파는 날씨 때문에 국산 종자가 적합하지 않아서 대부분 일본산 종자를 수입해서 쓴다. 고구마도 대부분이 일본 품종이라 일본에 종자로열티를 내고 있다. 감귤류는 신품종일수록 일본에 로열티를 줘야한다. 만감류인 황금향이나 레드향처럼 일본에서 한국에다 품종보호등록 조처를 하지 않아서 로열티를 주지 않는 품종들도 있다. 한라봉은 일본이 개발했지만 불법 유출로 한국에 건너와서 전라도를 거쳐 나중에는 제주도에 안착을 했다. 샤인머스켓도 일본 품종이다. 일본이 무슨 협약 기간 내 품종 등록을 하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포도는 로열티를 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브로콜리도 일본 품종이다. 브로콜리가 일본 의존도가 제일 높은 걸로 알고 있다. 몇 년째 일본제품 불매를 해오고 있는데, 여기에 언급된 것들 말고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표현을 해도 될만큼 일본산 종자가 많다는 사실에 기운 빠진다. 갈색 팽이버섯, 갈색 양송이 버섯처럼 국내 품종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가뭄에 콩나듯 등장하기는 한다.
전라도인가 저 밑에 지방의 대학교수가 종자 보호를 위해 학생들과 함께 씨앗을 채집해 보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이 씨앗이 탐이 나서 교수님한테 높은 값을 제시하면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절대 팔아넘길 수 없다고 버티고 계신다는 뉴스를 오래전에 봤다. 그 사람들한테 팔면 자신은 돈이야 벌겠지만 이 나라 농사는 어쩔 거냐는 게 그분 말씀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무기 없는 전쟁중이다. 종자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소랑 과일 얘기하다가 마무리가 요상해져 간다. 정신 차리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던지고 끝내자.
"가을 끝자락에 나무는 마른 낙엽이 되고 산이나 강가,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들판의 풀은 말라버린다. 사람의 손이 가는 채소나 과일은 왜 마르지 않고 썩어버릴까? 방치되어 있는 나무나 풀들은 말라버렸다가 해가 바뀌면 다시 잎이 살아나는데,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정성까지 들이는 농작물들은 왜 썩어버릴까?"
어차피 길어진 글 방금 떠오른 명언 두어 줄 더 보태자.
- I am what I eat. 내가 먹는 게 나다.
-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책제목이기도 하다.)
아, 망했다! 끝내야 되는데 자꾸 떠오른다.
- 유기농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법이 아니다. 일반 농약은 쓰지 않지만 승인된 농약은 사용한다. 독성이 더 낮을(?) 뿐이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생산자에 따라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유기농의 정의를 찾아보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이라고 설명한 글이 넘쳐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은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산물로 착각한다. 승인된 농약의 갯수가 있는데 몇 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검색을 시도했는데, 도저히 못 찾겠다. 뭐 농약만 문제인가. 유기비료의 성격만 알고 나도 유기농이 다시 보일 거다. 화학비료를 쓰든 유기비료를 쓰든 비료를 쓴 채소와 과일은 썩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기농 앞에서 허무해진다. 나는 말라버리는 채소와 과일을 먹고 싶지 썩어버리는 채소와 과일을 먹고 싶지 않다. 유기농에서 나아가 이제 '친환경'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는데, 나는 이 '친환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친환경이지 파고보면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발상일 뿐이다. '친환경 농산물'은 농약은 물론 비료도 주지 않고 알아서 크도록 내버려두고 키운 게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말아야 한다. 방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친환경'은 자연 그대로 재배하는 거다. 땅을 갈아엎는다든가 이런 거까지 문제를 삼을 수는 없지만, 벌레 퇴치를 핑계로 독성이 있네 없네 하면서 이것저것 뿌려대는 건 친환경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다. 유기농은 그저 유기농일 뿐이다.
- 유기농 채소를 사다가 포장을 뜯지 않고 봉지 상태로 보관을 해보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100% 액체 상태로 변해서 시커먼 물이 줄줄 떨어질 때가 많다. 이걸 몇 번 눈으로 보고 나니까 유기농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생협에서 산 유기농 채소와 마트에서 산 일반 채소는 썩는 냄새도 달랐다. 둘 다 냄새가 고약하지만 몇 번 하다보니까 냄새만으로도 유기농인지 일반 채소인지 구분이 되었다.
- 많은 사람들이 내집 앞 텃밭가꾸기를 꿈꾼다. 내집 앞 텃밭가꾸기는 농사를 누가 짓느냐의 관점이고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땅에만 의미를 둔 거다. 정작 그 땅에 심어서 내 입으로 들어오는 작물의 씨앗을 종자회사에서 사다가 농사를 짓는 건 내집 앞 텃밭가꾸기의 진정한 실현이라고 볼 수 없다. 내가 내 땅에서 지은 채소에서 채종한 씨앗이어야 하는데, 종자회사의 횡포로 자가채종은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농부들이 종자회사에 종속되어 종자회사에 충성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터미네이터 테크놀로지'로 개발된 씨앗 덕분에 씨앗의 생명이 다음세대로 이어지지 않는 1년짜리 생명을 키워내는 게 농사가 되었다. 콩나물조차 그해에 농사지은 콩으로 키워야 콩나물로 성장하지 묵은 콩으로는 콩나물이 자라지 않는다. 콩나물만 이러면 콩나물을 안 먹으면 그만이다. 내땅에서 내가 농사를 짓지만 정작 해마다 종묘사에 가서 씨앗이나 모종을 사다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농사 잘못 짓고 있는 거다.
이런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난 먹는 거에 대해 반쯤은 기대를 내려놨다. 아니, 오락가락 한다. '그래도 정신차려야지.' 했다가 '종자회사를 때려잡지 않는 이상 내가 힘이 있나!' 이런 기분에도 사로잡히다 보니 왔다갔다 한다. 그나마 농사라도 짓고 있으면 곰이 재주를 부리듯 내나름의 시도(땅에서 독소를 뽑아내고 자가채종을 반복해 F1 종자, 그러니까 종묘사에서 졸업하는 거)라도 해볼텐데 밥상만 생각하면 암울하다. 나는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은 안 부럽다. 집안 대대로 자가채종을 하면서 종묘사와 친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농부가 제일 부럽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는 이런 게 아니라서 이런 주제의 책을 읽을 때는 때론 억울하다. 소통이 안 돼서 속이 터지니까 남녀 소통에 관한 책도 읽어야 했고, 아이를 낳았으니까 양육에 관한 책, 학습에 관한 책도 틈틈이 챙겨 읽어야 하고, 건강한 밥상을 유지하려면 먹을거리 공부도 해야 되고, 식생활 관련책 심지어 식품화학책까지 손에 들게 된다. 내 몸 내 건강을 지키려면 쏟아지는 건강에 관한 책도 읽어야 한다.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났으니 여성학 책도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은 자꾸 뒤로 밀리게 된다. 세상이 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내가 굳이 시간을 내서 따로 읽지 않아도 될 책들이 많다. 읽어서 나쁠 거 없고 오히려 나름 보람도 있긴 하지만 남자는, 아빠는 읽지 않아도 되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자면 울고 싶을만큼 속상할 때도 있다. 아, 또 망했다! 마무리가 마무리가 안 되네.
참고서적
채소의 진실(가와나 히데오)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가와나 히데오)
욕망하는 식물(마이클 폴란)
채소, 역사 꽃이 피었습니다(김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