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기내에 '리나'가 등장한다는 사실 아시나요?
대한항공의 버추얼 휴먼 승무원입니다. 최근 대한항공에서 ‘리나’가 알려주는 기내 안전 수칙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었죠. 전 세계 항공사 중에 기내 안전 영상에 AI를 이용한 가상 인간이라는 새로운 마련을 시도한 것은 대한항공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AI 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최첨단 장비로 장착한 항공사에서 승무원 채용 면접에서 지원자들의 기내방송 읽는 능력을 테스트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품이나 서비스 관련된 문제해결을 위해 기업체의 고객센터로 전화했을 때 들리는 자동응답기답변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세요. 정보를 알려주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고 기업으로부터 서비스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장점도 많습니다. 인력과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고 자동화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직접 상담원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객이 가진 문제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스템에 입력된 문제해결 범위를 벗어나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AI 시대에 왜 항공사가 기내방송을 잘할 수 있는 승무원을 요구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내 방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승객과의 소통을 포함합니다. 승무원이 직접 방송을 할 때, 승무원의 목소리와 감정이 전달되어 승객들은 더 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혹은 착륙할 때 들리는 녹음된 정제된 환영인사보다는 비행기가 방금 안전하게 이륙했다는 투박한 기장님이나 승무원의 실제 목소리에 승객들은 더 안심이 되지 않을까요?
AI는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대로 작동하지만, 비행 중에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상 변화, 기내 문제, 승객의 긴급 상황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해 승무원은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적절한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난기류상황에서 AI 가 상황을 설명하는 것과 기장이 직접 방송으로 알려주는 상황은 승객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느낌뿐이 아닙니다. 비상 상황에서는 승무원의 기내 방송이 승객의 안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정확할 수 있지만, 승무원의 목소리와 태도는 승객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침착함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항공사는 안전교육 시 승무원들이 비상시에 어떤 목소리로 또한 어느 정도 크기의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탈출 지휘 등을 하는지도 교육합니다.
이런 이유로 항공사에서는 승무원들이 질 좋은 기내방송을 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교육을 합니다. 그럼에도 채용 시 승무원에게 기내방송테스트를 한다는 점은 방송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승무원의 역량 중 하나로 보겠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대한항공에서는 교육기간 중 기내 방송수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지금도 방송 전담 승무원제도까지 만들어서 신경을 쓰고 있지요. 제가 비행할 당시에는 기내방송은 최고참 시니어 승무원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기내방송의 수준차이 때문에 경력과 무관하게 방송실력 등급이 가장 높은 승무원이 방송할 수 있는 기내방송 승무원 전담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소속되어 비행하던 한 팀에서 한 최고참 시니어가 방송할 때면 팀원 승무원들이 너무나 창피해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어느 누구도 방송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었고요.
케세이퍼시픽 항공에서는 교육기간 중 다민족 승무원들이 함께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기내 방송 교육을 진행하지는 않고 각 나라별로 모국어 방송을 한 번씩 읽어보게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인도인 승무원들이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된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확인차 진행하는 것이라 들었었는데 요즈음은 교육내용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교육받을 때는 한국인이 저 포함 두 명뿐이어서 교육원 강사를 포함 아무도 한국어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제가 한국어로 방송했을 때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모두들 한국어가 아름답다고 감탄해 주어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AI 시대가 도래했지만, 항공사 승무원의 기내 방송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연한 대응과 인간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서비스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승무원이 직접 하는 기내 방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승객의 안전과 편안함까지 관여하는 부분이기에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많은 외항사에서도 한국어와 영어 기내방송 낭독 테스트를 치르니 승무원 지원자들은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