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 알 유 프롬?

by 이삼오

어린 나이에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 같은 반 아이들만 해도 혈통이 다 제각각인 게 한눈에 들어온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아이는, 부모님은, 조부모님은, 증조부모님은, 고조부모님은, 조상님은 어디에서 어떻게 캐나다를 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소심해서 말도 잘 못 붙이고 질문도 못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 있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웨어 알 유 프롬?'이다.




아이들과 인사를 한다. 이름을 외운 몇 애들한테는 이름을 부르며 인사한다. 자신감이 살짝궁 올라갔다. 웨어 알 유 프롬을 시전 한다.



아이가 웃더니 흔쾌히 알려준다.



레바논.



오호, 난 신나서 한 술 더 뜬다.



"수도는 베이루트잖아. 너 거기서 왔니?"



놀라워한다. 영어도 못 하는 동양애가 레바논의 수도를 아는 게 뭐, 조금은 신기할 수 있겠다. 이 아이는 이제 쉴 새 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 중간에 몇몇 단어 외엔 아예 모르겠다. 그냥 난처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기다리라면서 어딘가 후다닥 달려간다.



몇 분쯤 지났으려나? 아이들 대여섯 명 정도를 내 앞에 데려왔다. 한 명씩 소개해준다. 다들 살짝 닮은 걸로 봐서 자기 언니, 동생, 친척들인 거 같다. 또 아이들 몇 명이 더 온다.



난, 이제 학교에 있는 모든 레바논 아이들을 알게 됐다. '웨어 알 유 프롬?'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나에게도 물어본다. 나도 자신 있게 "코리아"라고 한다. 그다음 예상치 못한 질문...



"북한? 남한?"



흠, 그럴 수도 있다. 북한 사람들은 여기 못 온다고 손 짓 발 짓 해가면서 설명한다.



애석하게도 이 친구들은 한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부지런히 알려야겠다.





나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학교 수업 전 후 가릴 거 없이 인사하는 사람마다 물어보고 다닌다.



이탈리아, 칠레, 홍콩, 필리핀, 잉글랜드, 아일랜드,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브라질, 폴란드, 스리랑카, 이집트,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이 들 중 이탈리아, 홍콩, 필리핀계가 가장 많았다. 동네 특성상 그런가 보다.



천주교 학교라 그런지 유대인, 이슬람교도가 많은 중동 국가, 동방정교를 믿는 러시아나 그리스 아이들은 보기 드물었다.





며칠 뒤, 또 자신 있게



"헬로. 웨어 알 유 프롬?"



교감 선생님께 물어본다. 많이 용감해졌다.



"아임 오리지널리 프롬 스캇랜드."



오호, 스코틀랜드. 되지도 않는 영어로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잉글랜드 사람은 봤어도 스코틀랜드 사람은 처음이네요."



뭔가 흡족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자기를 영국인이라 안 하고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해줘서 그런 듯하다. 역사를 잘 아는 내가 뿌듯했다.





얼마 전부터인가 같은 반 두 녀석이 좀 신경 쓰인다. 둘은 절친인 거 같은데 나를 보면서 항상 손가락질하고 서로 귀에 대고 소곤거리더니 낄낄 대며 웃는다. 딱 봐도 내 흉을 보는 거 같은데.



밑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내가 오해하는 거면 어쩌지? 말도 잘 안 되는데 괜히 나서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날, 이 녀석들은 전면전을 택한다. 나보다 작은 한 놈은 눈을 찢더니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억양으로 나를 놀린다. 뒤에 있던 덩치 큰 놈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뭐라 하는 거 같다.



좀 당황스럽다. 드디어 '억새 바람'이 시작된 건가?



우선 별 반응을 안 했다. 무시하면 이러다 말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작은 녀석은 포르투갈 혈통이다. 마젤란과 바스코 데 가마의 후예, 대항해의 시대, 과거의 휘향 찬란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후손이다.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다.



또 덩치 큰 놈은? 이태리계다. 카이사르와 다빈치의 후손, 찬란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자랑하는, 축구를 잘하는 민족(얘는 막상 운동을 지지리도 못했다), 둘 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숱한 침략과 고통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줄 아는 전투 민족의 후손이다. 너희만 쎄냐? 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포르투갈(이하 마젤란), 이탈리아(이하 다빈치) 연합군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수업 때는 매우 조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굴다가 틈이 보이면 몰래몰래 지능적으로 괴롭혔다. 틈만 나면 다리를 걸고, 지나가다 내 연필을 실수인 척 떨어뜨려서 밟아 부수고, 실수를 가장으로 내 가방에 물을 쏟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데 뒤에서 툭툭치고 낄낄댄다.



그냥 얼굴을 한 대 갈길까? 마젤란은 감당이 될 거 같은데 다빈치는? 아직 둘의 전투 능력도 정확지가 않다.



옆반 경준이 한테 얘기할 까도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난번 어떤 놈한테 한 대 맞은 것도 창피한데 또 도움을 요청하기엔 내 코딱지만 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 연합세력의 공세에 나의 저항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결국, 너 죽고 나 죽고를 택한다.



수업 도중 나는 울고 불고 하며, 날카로운 비명과 동시에 내 책상에 있던 책들이며 연필이며 뭐며 닥치는 대로 연합군 쪽으로 집어던졌다. 그러고 죽일 기세로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자 선생님이 나를 저지한다. 여자라도 어른 힘은 못 이긴다. 나를 밖으로 내 보낸다. 우선 밖에 있으란다.




점심시간에 교감 선생님, 통역으로 온 경준이,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그간 상황을 상세히 브리핑한다.



담임 선생님은 왜 바로 알리지 않았냐고 뭐라 하는 거 같고 교감 선생님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점심시간 후 수업 시작하자마자 교감 선생님이 교실로 와 연합군 둘을 소환했다. 마젤란은 '올 것이 왔구나'의 표정으로 덤덤히 교실 밖으로 나갔고 다빈치는 억울하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취하며 계속 뭐라 뭐라 하면서 뒤 따라갔다.



나도 교실에서 소란 피운 게 잘한 것은 아니니 벌로 일주일간 교실 책상 청소를 하게 된다.





학교 서열 넘버 2의 체벌은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도 신박하다.



연합군에게 한국을 조사하라는 프로젝트를 내렸다. 커버 페이지. 그림 등을 포함하여 10페이지 안팎으로 한국의 역사, 문화, 지리, 날씨, 풍습, 음식 등 모든 것을 조사하는 거였다.



자료는 도서관에서, 나를 비롯한 학교에 있는 다른 한국 아이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마젤란은 얼굴에 오만 짜증 한가득이면서도 나에게 한국의 수도는 어디냐, 음식은 뭐가 있냐 등등 나름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내 보물 중 하나인 '사회과 부도'를 빌려갔다.



다빈치는 며칠 뒤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우연인가? 타이밍 기가 막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꼴값 떤다고 생각했다. 진짜 다쳤을 수 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참 옹졸하고 비겁하다.



마젤란은 제법 여행 책자 같은 프로젝트를 완성시켰고 최종 검사는 나에게 받는 것이다. 너무 잘했다고 내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녀석은 끝까지 불만스러운 듯 툴툴거렸다.



다빈치는? 나중에 깜지로 대체되었다.




비록 대한민국의 출혈이 컸지만 이 전투는 스코틀랜드와 대한민국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나에게 힘이 돼주었던 교감 선생님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나의 스코틀랜드의 관한 호감도는 상승했다. 반면에 포르투갈의 호감도는 급 하락 했었지만 성실한 마무리로 중립이 되었고 이탈리아의 호감도는 하락하고야 만다. 그래도, 피자와 파스타는 사랑한다.



많은 아이들이 싸우면서 친해지듯, 훗날 마젤란과 다빈치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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