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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은 옥수수가 아니다

by 이삼오

"그럼, 재밌게 봐라."



무뚝뚝한 프랜시스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 나와 프랜시스는 한 껏 들뜬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주차장에서 멀리 보이는 어느 큰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원래 같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테지만 공항 근처, 도시 외곽이라 아저씨께서 데려다주셨다.



토론토의 11월은 늦가을이라기보다는 초겨울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한 날씨다. 공연장 안에서는 열기가 엄청날 테니 옷을 너무 두껍게 입으면 많이 불편할 것이란 프랜시스의 조언을 곧 대로 따른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바깥은 쌀쌀했다.



"야, 그런데 안에 열기가 어떨지는 네가 어떻게 알아? 너도 이런 대형 공연은 첨이잖아."



"하아, 이 답답한 놈아. 우리가 지금 어떤 공연을 왔는지 알면서 그 딴 되지도 않는 질문을 하냐. 오늘 누구 하나 안 죽어 나가면 그게 다행일 텐데..."



우리가 한 때 거의 신적으로 동경하던 밴드 KORN의 공연을 보러 왔다.



정확한 공연 명칭은 "Family Values Tour"로 90년대 중후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Nu Metal'(뉴메탈) 장르의 창시자라고 하는 KORN을 필두로, 다른 뉴메탈 밴드 여러 팀이 함께 하는 대규모 투어였다.



원래는 헤드라이너인 KORN을 포함 대 여섯 팀 정도가 투어의 라인업이지만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의 공연이라 그런지 대폭 축소된 세 팀만이 오늘의 공연 라인업이었다. 그래도 KORN을 보러 온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아쉬움은 덜 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좌석은 하나도 없는 스탠딩 공연이었다. 나는 소규모 공연장, 클럽 등에서 작은 공연들은 제법 봐 온 터라 스탠딩 공연이 익숙했다. 그런데, 이 공연장은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원래는 대규모 박람회장인 이곳은 큰 공연장으로도 쓰였다.



공연장을 두리번거렸다.



연령대는 우리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이 들도 제법 보였고, 아무래도 20대가 제일 많은 것 같았다. KORN 멤버들을 따라한 머리 스타일이 많이 보였다. 긴 레게 머리도 제법 보였고 어린 소녀에게 어울릴 법한 양갈래 머리 모양도 더러 보였다.



귀뿐만 아니라, 코, 눈썹, 입술에 피어싱을 한 사람들의 모습도 흔히 보였다.



나와 프랜시스가 제일 얌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그저 그냥 평범한 옷에, 머리 스타일에, 몸뚱이에 구멍 하나 안 뚫은 점잖은 행색을 하고 있었다.(적어도, 이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KORN의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연장에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하지만 반팔만 입고 돌아다니기엔, 내 기준으로는 많이 쌀쌀했다. 공연장은 난방을 일절 안 한 상태였다.



공연장의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환호와 동시에 무대 쪽으로 급히 향했다.



드디어 첫 팀, Orgy의 개막 무대가 시작됐다.



뉴메탈 밴드이지만 헤어, 메이크업이 화려해서 80년대 유행했던 '글램락' 밴드의 비주얼과 비슷했다. 다만 알록달록한 느낌의 비주얼이 아니라 은색, 금색, 검은색의 조화를 많이 강조한, 소위 사이버틱함을 연출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대 오른편, 사람들이 신나게 머리를 흔들고 방방 뛰는 무대 정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무대를 응시했다.



확실히, 음악 스타일이나 이래저래 내 취향과는 멀었다. 그래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큰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 확실히 잘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한 시간 조금 안 채우고 Orgy의 무대가 끝났다.



다음 주자는 Incubus.



첫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다.



전반적으로 음악이 센 느낌이 아니었다. 락은 확실한데 메탈만큼의 강력함은 아니었다. 락밴드지만 긴 레게 스타일의 머리를 빼면 제법 점잖은 비주얼이었다.



솔직히 KORN 외 에는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Incubus의 무대는 중앙에서 가장 뒤쪽에서 관람을 했다.



Incubus의 무대가 끝나고 프랜시스가 헉헉 거리면서 다가왔다. 무대 앞 쪽에서 신나게 방방 뛰어다니면서 최선을 다해 즐긴 것처럼 보였다.



"너 혼자 뭐 하고 있냐? 이런 공연 와서 가만히 멀뚱멀뚱하게 보고만 있었던 거야?"



"난 지금 나름 집중하면서, 진지하게 보고 있어."



"큭큭. 이런데까지 와서 고상한 척 하긴. 그러지 말고 KORN 무대 때는 나랑 같이 *'모쉬핏'(mosh pit)으로 가자.



*보통 메탈 공연 때 무대 맨 앞, 정 중앙에서 사람들이 무작위로 서로 과격하게 밀치고, 보디체크를 하면서 공연을 즐기는 행위.



그런데 키 170도 안 되고 체중도 60킬로가 될까 말까 한 내 덩치에 모쉬핏에 들어가면 까딱하면 사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 2미터에 가까운 거구들도 종종 눈에 띄던데...



공연장 조명이 어두워졌고 배경 음악이 꺼졌다.



드디어, KORN의 무대가 시작하기 일보직전, 어두운 무대에 멤버들의 실루엣이 보이자 사람들은 일제히 큰 환호를 보냈다. 앞 선 두 밴드보다 적어도 두 배 정도는 큰 소리의 환호성이었다.



확실히 조명과 무대의 연출이 엄청 화려했다. 무대를 캔버스 삼아 여러 색의 페인트를 동시다발로 뿌리는 듯했다. 돈 많이 들인 티가 확연했다.



나는 무대의 양 옆을 옮겨 다니며 여전히 얌전하게 관찰하 듯 관람하고 있었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무대에 집중했다.



오늘 베이시스트인 'Fieldy'의 생일인가 보다. 보컬인 Jonathan Davis가 특유의 기괴한 창법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살면서 (아직까지도) 가장 음침한 "Happy Birthday"였다.



스코틀랜드의 혈통을 갖고 있는 보컬은 남자들의 전통의상인 kilt(그 유명한 남자 치마)를 개량한 무대의상이 본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리고 공연 중간에 백파이프 연주도 선 보이는데 이게 대단한 연주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본인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KORN의 무대가 짧은 것도 아니었는데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가서 공연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나와 프랜시스는 공연장 구석, 바닥에 털썩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친구는 최선을 다해서 뛰어다녔는지 땀범벅에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에 긁힌 자국들도 보아하니 모쉬핏에서의 영광의 상처 같았다.



"야, 넌 누가 보면 그냥 차에서 자다가 지금 막 들어온 사람인 줄 알겠다."



나는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고 머릿속은 좀 전의 무대를 계속 상기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담배에 또 불을 붙였다. 난 원래 담배를 연달아 피우지 않는다.



"웬일이래? 네가 줄담배를? 공연을 제대로 보긴 했나 보네. 후후.."





집으로 돌아가는 프랜시스 부모님 차 안, 머리에서 KORN의 무대가 가시질 않았다.



집에 와서 누워서 자보려 애를 써도 잠이 안 왔다.



나도 크든, 작든, 무대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나와 프랜시스는 크고 작은 공연을 수두룩 보러 다녔다. 아르바이트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은 공연 티켓에 썼을 만큼 좋아했다.



Orgy는 첫 앨범만 반짝 인기를 누리는 밴드가 되었고 Incubus는 2집 앨범이 대박이 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음악도 강렬한 록 사운드보다는 팝이 많이 가미된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KORN은 이 당시 3집 앨범인 "Follow the Leader"를 출시했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 2집이 마니아 층 중심으로 인기가 많았던 것에 비해 3집은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다.



안타깝게도 KORN의 인기는 3집을 정점으로 조금씩 하향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기가 꼭대기에 다다라서 그랬던 거 같다.



지금도 가끔 KORN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떻게 90년대에 이런 소리와 창의성이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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