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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건넨 그들 (1)

by 이삼오


학창 시절 때 누구나 유독 강하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친구 같았으며, 때로는 친누나 같았던, 또 때로는 고모, 이모, 나와 가깝게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어떤 여성의 존재라고 보는 게 더 가까웠을 것이다.






(상담/진로 선생님 방)


"네? 무슨 면담이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고등학교 입학 후 일 년, 나름 적응도 잘했다고 생각한 1년이 흐르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지나서 상담 및 진로 선생님과의 면담 중 다소 황당한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제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거 같다고요? 뭐 때문이죠? 제가 학교에서 문제 될 만한 행동이나 사고를 친 거 같지도 않은데... 혹시 담배 때문인가요? 이 건 학교 3분의 1은 해당되는 것일 테니까 아닐 거고요..."



"지난 1년 간, 또 최근 새 학년이 시작 됐고... 다른 선생님들, 또 교감 선생님의 의견도 반영해서 너를 특별 상담 대상자로 올리기로 했단다. 정말로 싫다면 어쩔 수 없다만... 그래도 널 위해서..."



"그런데... 그 기준이 뭐죠? 기꺼이 응하겠지만... 이유라도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서적으로 불안정함과... 예를 들어서 성적 관련인데... 넌 어떨 때는 전 과목 뛰어난 성적을 받다가도 어떨 때는 전 과목... 아, 역사, 지리 빼고 다 F를 받지를 않나, 어떻게 가장 점수 따기 쉬운 과목인 체육을 F를... 상담 때도 너무 멀쩡한 학생 같다가도 어떨 때는 시한폭탄 같다고 느낄 때도 있었던..."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겉으로 봤을 때 큰 탈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른들이 봤을 때 난 분명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였나 보다.



이 당시 학교에 청소년 상담사가 전담으로 배치되었다.



예전에는 없던 시스템이었는데,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로 많이 오를 때였다. 그래서 학교에 의무적으로 전문 상담사가 풀타임으로 배치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사무실에 들어섰다.



짙고 긴 갈색머리, 직사각의 뿔테 안경, 작은 키에 가식적이지 않은 미소를 띠고 있는 중년 여성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ooo 이야. 원래 선생님이면 이름 앞에 Mister, Miss, Missus를 붙여야 하지만... 너 편한 대로 불러. 게다가 난 선생님은 아니니까 말이지."



"아... 네."



첫 면담. 나는 그냥 그저 질문에 답하는 게 전부였다.



"좋아하는 음식은?"

-면 종류 요.



"좋아하는 음악은?"

-센 거요. 죽여라, 때려라, 부숴라. 여기에 간혹 낯 간지러운 한국 가요도 추가요.



"가장 아끼는 것은?"

-기타요.



"지금 당장 걱정 되는 것은?"

-모든 것이요.



"아니... 그러니까 지금 딱 머리에 떠오르는 것."

-흠... 동생이요.



"왜?"

-부모가 자주 싸우는데... 뭘 때려 부순다거나, 싸우면서 우리한테까지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닌데... 물론 화풀이를 하긴 하지만요. 제 동생은 아직 많이 어리거든요. 그런데 저야 그렇다 치고, 얘는 고함지르고 욕하고 이러는 걸 몇 년째, 아기 때부터 듣고 있는데... 제정신이 아니지 않을까요? 나도 미치고 환장하겠는데..."



"혹시, 신고해 볼 생각은 안 했니?"

-뭐,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실제로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누그러져서... 그런데 신고한다고 한들... 더 나아질 것이란 보장도 없잖아요.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듯했다.



"만약, 답답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땐 나를 언제든지 찾아와도 돼. 수업 시간 포함 해서 말이야."

-그럼, 수업 빼먹고 와도 된다고요?



"뭐, 정 원하면 그러든가. 후후."





나는 이 분을 'Fitty'(피티)라고 불렀다.



이름에 'F'가 들어가서 애칭 같이 불렀는데,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이렇게 부르기 시작해서 비공식적인 닉네임이 되어 버렸다.



학교의 대부분 학생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분의 존재를 몰랐다.



일주일에 두 어 번은 의무적으로 상담 시간을 가져야 했다.



상담실 앞 대기실 벤치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너도 상담받으러 왔냐? 그럴 줄 알았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더라니..."



마치 서로 짠 듯이 볼 때마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다.



"야, 누구누구도 상담받으러 온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 나이 또래, 학교에서 똘끼 충만한 애들을 다 긁어모은 듯한데... 내가 왜 이 무리에 같이 섞여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나는 계속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하고는 했다.



그 와중 한 녀석 왈,



"넌 지극히 정상인 거 같지? 너도 만만치 않아. 큭큭."



나의 지난 학교 생활을 돌이켜 본다.





(피티와의 면담 시작)


"선생님들이 무엇 때문에 저를 면담 대상자로 선정한 것일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가 때론 상당히 반사회적으로 행동한 것 같기는 해요. 나에게 조금이라도 부당하거나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죽자고 덤벼들고 했었던 일들이 종종 있었으니..."



"그래. 그런 행동은 친구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수업 도중 선생님을 상대로 그러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부분이니까..."



"그럼 제가 상담을 받는 목적 중 하나는, 제 마음에 브레이크 장치를 장착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요?"



"그게 전부는 아니야. 누구라고는 밝히지 않겠다만, 어떤 선생님은 너를 두고, '참 영리한 아이 같기는 한데... 길만 잘 잡아주면 좋을 거 같은데... 조금 혼란스러운 아이인 거는 확실해'라고 하시더군."



누구라고 얘기 안 해도 알 거 같았다.



난 항상 고슴도치 마냥 뾰족한 가시를 두르고 있었나 보다. 항상 경계심으로 가득 차있고, 누군가 진정한 호의를 베풀려고 해도 차갑게 반응했던 것 같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피티와의 주기적인 상담은 계속되었고 학교 측에서는 전문 상담사를 배치한 것에 대해 대만족이자 대성공으로 여겼다.



이 걸 어떻게 아냐고?



나를 포함해서, 선생님들에게 대항하는 일이 극히 줄어들었으며, 덜 폭력적이며 교감실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모두 상태가 좋아진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피티는 모든 학생을 진심으로 대했다. 우리도 진심을 느꼈던 것이다. 진심이란 것을 항상 부정해 온 무리였기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우리에게는 진정한 '우리 편'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난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내 차선을 이탈하여 중앙선을 침범해 가드레일 바깥으로 튕겨나가기 전에 핸들을 꺾어준 사람이 한 명은 아니었으니...



나의 역사와 지리 선생님이 누구시냐면은...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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