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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건넨 그들 (2)

by 이삼오

발칸 반도에 위치한, 그리스 북쪽에 있는 마케도니아라는 나라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출생지로 겨우(?) 알려진 나라에서 나의 역사, 지리 선생님이 유년 시절과 대학생 때까지의 삶을 보낸 곳이다.



대학생 때 캐나다로 이주해 오셨는데, 망명신청을 해서 오셨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정치적으로 많이 불안정했던 시기에 학생 운동, 데모 같은 걸 하다가 붙잡혀 철창신세를 지어야 했다. 까딱 하면 사형수가 될 뻔 한 처지였지만 운 좋게 감옥에서 나와 (어떻게 나왔는지는 말씀을 안 해 주셨다) 어머니와 같이 망명 신청을 해서 캐나다로 들어오 게 된 것이다.




난 유독 역사와 지리 시간만 되면 순하디 순한 모범생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목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선생님의 수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교과서 내용을 정리해서 진행하는 수업이 아니라 본인의 실제 경험과 썰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어서 더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캐나다로 이주해오기 전 고달팠지만 나름 즐거웠던 마케도니아에서의 삶과 캐나다에서 역사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부분은 고생스러웠던 이야기들이었지만, 결국 고난과 역경을 바탕으로, 지금은 행복한 삶을 사는 희망적인 메시지 전도사 역할도 하셨다.



"너, 여기 참가해 보지 않을래?"



"지리 대회요? 이런 것도 있고... 별의별 걸 다 하네요?"



토론토 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지리 대회', 말 그대로 세계 지리, 수도, 역사 위주로 문제가 나오고 그냥 퀴즈쇼 같이 문제들을 맞히면 되는 거라 하셨다.



흠, 굳이 참가해야 하나? 그런데 안 할 이유도 없었다.



"네. 그러죠"



결과는?



전체 3등. 선생님도 그렇고 다들 엄청 잘했다고 했지만, 1등을 한 녀석은 진짜 초고수, 모든 문제를 다 맞혀버리는 괴물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걸 제대로 실감했다.



(이정도면 지리 쪽을 전공해서 교사나 교수가 되었을 법 한데 엉뚱하게(?) 음악 쪽으로 빠지게 된다.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거 아닌가...)





피티(Fitty)와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쯤부터, 수업이 마친 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수업 후 바로 점심시간이라 시간도 여유가 있었고 때때로 점심도 함께 했다. 어떨 때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다며 마케도니아 가정식 비슷한 것들을 챙겨 오시기도 했다. 마케도니아 음식은 그리스 북부와, 인근 국가들의 음식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알려 주셨다.



대화의 내용은 그냥 사사로운 일상으로 시작하여 주로 지리와 역사 관련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발칸 반도가 '유럽의 화약고'이고 그만큼 불안정한 역사와 정치가 난무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그리고 참혹했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이래저래 방황을 많이 하고 있던 나는, 선생님과의 대화 때는 모든 걸 잠시 꺼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타를 칠 때도 그렇지만 주로 홀로 치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고독한 게 사실이다.



선생님은 내 가족관계나 이런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다 안다는 눈치였다.



혹시 피티한테 들은 게 있으신가? 피티는 모든 상담 내용을 비밀로 해야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굳이 내 얘기를 선생님께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화 중 선생님이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원칙보다 중요한 게 있지. 믿음과 신뢰만 있다면 원칙은 큰 의미가 없겠지. 믿음과 신뢰가 불안하니 원칙을 만들어 지키는 거지."



약간 의미심장 한 말이다.





1학기 때는 지리, 2학기에는 역사 수업을 함께 했던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친구이자 멘토였다.



선생님은 몰래 피티를 통해서 나에게 종종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피티는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했고 다만, 너를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이 일종의 후원금으로 주는 거라고만 했다. 말 안 해도 알았다. 선생님께도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피티와 선생님은 나에게 큰 버팀목이었다.



방황과 혼란의 시기, 극도록 간섭받기 싫어하고 날이 서 있던 나를 어느 정도 멀쩡하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도와준 피티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안타깝게도 내가 다른 학교로 전학하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없이 살면서 연락을 꾸준히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문의했을 때 피티는 다른 학교 또는 기관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육청에 문의를 해보니 피티 직업 특성상 개인의 신변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했다.



선생님도 다른 학교로 옮기셨다고 했고 그 후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지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어디에 계시 던 두 분 다 행복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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