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세 가지는 의식주일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세 가지가 충족되고 나면 반드시 다음 단계로 이행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별(STAR) 모양을 이루게 된다.
패션에 대한 욕망 (F)
미용 (뷰티)에 대한 욕망 (B)
기호 (記號 또는嗜好)에 대한 욕망 (I)
건강 (바이오) 에 대한 욕망 (H)
주거에 대한 욕망 (H)
필자는 이 다섯가지 욕망을 FBI2H로 부르기로 한다.
패션의 짧은 역사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기에 사람들의 눈앞에 걸린 가장 큰 문제는 생존이었다. 패션이란 건 인생과 별 상관없는 일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옷을 입어야 했고, 그렇다면 살 돈은 없으니 가족 중 누군가는 제작과 수선에 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직접 옷을 제작해야 했다. 물론 거기에 자신의 취향을 가미해 예컨대 리본을 단다든가 힘찬 다림질로 빳빳하게 옷을 유지한다든가 하는 소소한 DIY 정도는 있었다. 지금도 고등학교나 군대처럼 다 똑같은 옷을 입는 곳을 보면 어떻게든 건드려서 입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자기 자신, 혹은 관심 있는 소수의 주변인들만 알아챌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의 영역이고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활동은 트렌드나 스타일로서 패션이라기보다 장식이나 지루한 일상 속의 취미 활동에 가깝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을 거치며 옷의 대량생산 체계가 완성되었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의복의 역사야 수천 년이지만 현대 패션의 역사는 1900년 이후라고 쳐도 대략 1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산업화된 패션의 역사는 더욱 짧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적어도 옷 분야에서는 수천년 인류 역사를 압축한 듯한 변화가 있었다. 옷의 계층별 분류가 소비자의 자본력에 따른 분류로 바뀌었고, 1980년대 잠시 지속된 경제적 안정 속에 상하 계층의소득 격차가 줄어들면서 덕분에 꽤 비싼 패션도 어지간한 중산층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시기 패션은 거의 모든 문화 영역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한 속도로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구식으로 만들었다. 당장 '응답하라' 시리즈만 봐도 고작 10,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옷들이 일종의 아이콘이 되어 시대를 촘촘히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된다.
여하튼 패션은 근본적으로 분리된 계층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낭비와 유희를 목적으로 한다. 1차 대전이 한창일 때도 프랑스의 모드(Mode)나 영국의 「더퀸(The Queen)』 같은 하이엔드 패션 잡지에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그 잡지 독자들의 삶에 전쟁이라는 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이랬던 게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운이 겹치면서 반짝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도 끌 수 있었던 거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실을 따지고 보자면 중산층의 볼륨이 부풀었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반 계층과 하이엔드 의류 사이에 관계가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입지는 못해도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와중인 1900년대 초에도 최고급 의류를 만드는 쿠튀르들은 계속 정기 컬렉션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1920년대에 시즌별로 나온 수십 벌의 고가 옷과 액세서리를 만들기 위해 1500여 명의 숙련공을 고용한 의상실도 있었던 만큼 산업 규모에 비해 꽤 많은 고용이 창출되었다. 몇 명이 입을 옷 덕분에 1500여 가구가 생존을 이어가는거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2006)를 보면 프리스틀리 편집장이오스카 드 라 렌타가 터키석 색상 대신 세룰리언 블루의 이브닝 드레스를 내놓은 덕분에 일자리와 재화가 얼마나 창출됐는지 아느냐고 역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식의 구조는 여전히 비슷하다. 다만 예전보다 감시의 눈길이 많아져서 고급 의류의 경우엔 그나마 노동 환경이 나아졌고, 기술이 발달해 많은 부분을 공장의 기계가 해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저런걸 저렇게 비싸게 팔다니'라며 세상 한탄하는 시간에 어떻게 저기 껴서 저런 걸 팔아볼 수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는 게 훨씬 삶에 도움이 된다는 건 별로 잘못된 태도는 아니다.
이런 패션이 80, 90년대에 잠시 재미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그 시기가 일종의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냉전과 그에 따른 서구의 복지 제도, 여성의 사회 진출, 안전하고 지속적인 직장 등 자본주의 등장 이후 최근 100여 년간의 인류 역사의 숨 가쁜 변화 덕에 중산층의 삶이 형성되었다. 소득의 증가와 안정이 경제 계층을 재편하면서 주춤한 상류층의 소득 증가율과 잠시 맞닿으며 각 계층간 소득 간극이 약간이나마가까워진 거다. 다시 말해 초고소득층과의 자산격차는 물론 언제나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벌어져 있었겠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요만 가지고는 디자이너 하우스들이 계속 버티기 어려운 시기가 만들어졌다. 몸집을 늘리기는 쉽지만 줄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글로벌 패션이 등장하면서 마케팅 범위가 넓어졌고, 비싼 제품의 판매를 위해선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과거 사교계 인맥 속에서 친분 관계에 기반한 귀족 구매층에 만족하던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도산하며 사라졌고, 발 빠르게 사태를 파악한 디자이너들은 가격책정의 수준을 중산층 구매자도 구입 가능한 범위 안에 집어넣었다. 결국 중산층이 구매 대열에 적절하게 흡수될 수 있었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업계는 더욱 커졌다. 현재 중국 등 신흥개발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경제 여력이 늘어나는 징후의 초중반 단계 중 하나가 사람들이 그때까지 불가능하던 고급 옷을 사 입는 거다. 당시의 경제 안정은 전 세계적 규모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취향들이 존재할 수 있었고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이너들이 존속 가능했다. 기존 디자이너 하우스의 관리 능력도 튼튼해지면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갔다.
이렇게 커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더 넓어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다국적기업화 및 몸집 불리기시작했고 그러자 이야기가 또 달라졌다. 사실 이런이합집산은 신자유주의의 본격화와 중국과 중동 등 새로운 경제 대국의 출현,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적인 유행의 동시화 등의 변화와 함께 찾아왔다. 이렇게 여러 회사를 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워가던 패션 대기업들이 이윽고 중산층 소비자를 버려도 되는 시점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급 제품 안에서 나름의 계층화를 완성하는 거다. 이런 큰 틀의 계층화는 역시 한 기업 집단이 모든 걸 통제해야 더 쉽게 가능해진다. 한국의 패션 시장도 이와 비슷한 궤도를 걸었는데 IMF, 카드 위기, 서브프라임 위기 등 일련의 절차를 거치면서 계층 분류가 보다 확실하고 선명해졌다. 그러면서 백화점 4층에 있던 명품 섹션은 명품관, 명품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기업들이 경제 상층부와 더불어 보통은 잠시 거쳐가는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20대 신규 유입층, 그리고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의 가격 수용선을 거의 파악했고 그런 자료들을 근거로 명품관에 들어갈 브랜드들을 분류한다. 백화점들은 자체 전략에 맞게 프라다를 내보내고 디오르를 들이고, 질 샌더를 내보내고 샤넬에게 조금 더 넓은 자리를 주는 식으로 상황에 대처한다. 브랜드들 역시 자체 전략을 가지고 백화점과 대결을 하거나 독자 노선을 그리면서 움직이고,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편은 동시에 패션과 유리된 옷의 본격적인 등장과 규격화, 무관심화를 만들어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게 순식간에 너무 멀어져버린 거다. 어차피 입을 거면 좋고 멋진 걸 입자는 태도는 어느덧, 어차피 살기도 바쁜 데 그런 건 대충 때우자로 방향을 전환하며 본능적으로 생존의 길을 탐색한다. 아예 모르고 살았으면 몰라도 잠깐의 시기 동안 어설프게 만들어진 취향 비슷한 게 있다면 가능한 재빠르게 쪼그라뜨려야 한다. 이런 경향을 패스트 패션의 등장이 본격화했다. 대량 구매와 대량생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을 키우고 선점하는 회사가 유리하다. 하지만 H&M을 선두로 자라, 유니클로 등이 세상에 등장해 자리를 굳히는 와중에도 점점 더 커지는 수요 덕분에 대기업들은 비슷한 영역에 너도나도 뛰어들 수 있었다. 규격화된 옷은 규격화된 음식, 규격화된 집과 함께 많은 이들의 미래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해오던 습성이 남아 패스트 패션에서 패션이나 웰메이드를 찾는 이들도 여전히 있지만 그런 번지수를 잘못 찾은 행동 유형은 곧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유명 패션 브랜드
영문 위키피디아의 '오래된 기업 목록(list of old companies)' 항목은 705년에 시작되어 1851년에 끝을 맺는다. 이 커트라인 안에 들어 있는 패션 기업 가운데 알 만한 건 두셋밖에 되지 않는다. 유구한 역사의 일본 장인 가문들을 제외하면 영국의 존 브룩이 1541년, 고야드가 1792년, 에르메스가 1837년, 이름만 남고 사라졌다 얼마 전 LVMH 그룹이 되살린 모이낫이 1849년이다. 이 회사들은 모두 최초 설립자의 이름, 그러니까 장인의 이름을 따랐다. 고야드는 프랑소와 고야드, 에르메스는 독일에서 온 티에르 에르메스, 모이낫은 폴린 모이낫이 그들이다. 상대적으로 조금 늦게 시작한 루이 비통(1854)을 만든 사람도 루이 비통이다. 모두 옷을 만드는 곳은 아니었고, 아무래도 가방 등 상대적으로 상품화가 쉬운 가죽 제품이 먼저 브랜드화되어 소매시장에 나섰다. 그러다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의복 디자이너들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꽤 좋다는걸 느끼고 속속 디자이너 하우스를 설립한다.
처음에는 맞춤 옷들만 생산했지만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성복(ready-to-wear) 체제로 변화한다. 이건 디자이너 하우스가 아니라도 모두 마찬가지인 게 산업혁명이 원단 생산 체제를, 2차 대전이 양산 옷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세상 구석구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 변화 속에서 귀족 주변에 안주하던 디자이너들은 몰락했다. 수많은 디자이너 하우스들이 만들어지고 또 망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가장 오래된 옷 기반의 디자이너 하우스는 아마도 1909년 잔느랑방이 만든 랑방일 것이다.
이렇게 대략 1900년대 초에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 디자이너 하우스들은 거의 창립자의 이름을 달고 있다. 최근 들어 이름 대신 독특한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시작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제품에 새기던 전통도 있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초창기 창업 형태가 파리나 밀라노의 번화가에 상점을 열며 자기 이름을 문 앞에 써 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소공동이 패션의 중심지였던 때부터 최근 청담동 시절까지 앙드레 김, 박항치, 문영희, 손정완, 송자인, 장광효 등 모두 번화가에 매장을 장만한 다음 자기 이름을 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세계적 패션 제국에는 삼인방이 있다. 이들 삼인방이 소유한 브랜드들을 보도록 하자.
LVMH (파리, 프랑스)
토머스 핑크, 아쿠아 디 파르마, 크리스티앙 디오르, 겔랑, 모에 에 샹동, 크뤼그, 뵈브 클리코, 메르시에, 샤토 디켐, 헤네시, 글렌모렌지, 벨베데레, 아드벡, 불가리 등.
케링 (파리, 프랑스)
구찌, 이브 생 로랑, 스텔라 매카트니, 세르지오로시, 보테가 베네타, 부쉐론, 로저 앤 갈레, 베다 앤 코, 크리스티, 푸마, 트레튼 등.
리치몬트(제네바, 스위스)
까르띠에, 반 클리프 앤 아펠, 피아제, 보메에 메르시에, IWC, 예거 르쿨트르, 아랑에 운트 죄네, 오피치네 파네라이, 바쉐론콘스탄틴, 던힐, 몽블랑, 올드 잉글랜드, 퍼디, 클로에, 상하이 탕 등,
어떤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대부분의 브랜드는 이들 삼인방 손 안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패션의 큰 두 줄기
패션의 관람객으로서 가장 최근에 생긴 재미이자 중요한 사항이라면 바로 사람의 이동이다. 무슨 디자이너가 어디에 갔나, 누가 그만두고 패션을 등지게 되었나 같은 디자이너의 이동뿐만 아니라 심지어 누가 어느 브랜드의 마케팅 디렉터가 되었다든가, 어디에 있는 사모펀드가 저 회사를 샀다더라 하는 것들도 단지 투자자에게뿐 아니라 경제가 세상 천지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중요한 뉴스다. 사실 자본주의사회의 기업이라면 이런 일은 흔하다. 그럼에도 특히 패션계에서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는 이런 일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됐고, 사람의 영향력이 아직은 큰 편이고, 결국 이동과 변화가 곧바로 다음 컬렉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스트리트웨어와 하이엔드 패션이 서로에게 다가갔다는 점인데, 여기서도 사람은 꽤 큰 역할을 한다. 우선 이들 패션의 두 줄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1. 스트리트웨어라고 총칭했지만 여기에는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부터,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입었던 밀리터리웨어, 서핑웨어, 모터사이클웨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 이런 옷들은 다 전문화, 기능화되어 특수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옷과는 괴리가 있다. 예컨대 소방복에는 첨단 방화 기능이 들어 있고, 군복에도 각종 상황 고려에 따른 첨단 섬유 및 방탄 기능 등이 들어가 있다. 다훌륭하겠지만 일반 의복으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비싸고, 번거롭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기능성 의류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당시의 과학기술은 대량생산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튼튼한 옷, 방풍, 방화, 보온 등의 기능은 필요했다. 그래서 짜낸 기술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방풍이라면 아예 옷에 기름칠을 하거나, 실에 고무 코팅을 한 다음 그걸로 코트를 만들었다. 험한 광산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코튼을 겹쳐서 만든 데님이나 덩가리같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었고,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을 위해 승마 바지 엉덩이에 패드를 넣었다. 지금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기능성이지만 분명 효용은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입고 세계 전쟁 같은 걸 하고 석탄을 캤다. 이런 옷들은 하이엔드 패션은 물론 일반적인 옷과도 다르다. 스토리가 있고, 각 부위에 이유가 있고, 발전 단계를 보면 인간이 주어진 재료를 붙잡고 고민하며 발전시킨 전통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고, 소득이 늘어나고, 서구권 국가에서 적어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면서 하위문화가 등장한다. 1960년대부터, 그러니까 전후 세대들이 1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펑크, 매드체스터, 배기, 히피, 모드 등등 하위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록 그룹의 팬덤이나 축구팀 등을 기반으로 한 이런 문화는 노동자계급이 주축을 이뤘고 그들이 입고 다니던 옷으로 만들어낸 스타일을 기본으로 했다. 그렇게 청바지, 군용 파카, 스니커즈, 스웨터 등이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2. 이런 스트리트웨어의 줄기가 있다면 다른 한편엔 하이엔드 패션의 줄기가 있다. 패션이 계급별로 분리되어 있던 시절이 지나가고 팝을 중심으로 대중문화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분리되어 있던 고급문화가 여러 잡다한 것들과 섞이면서 변종 줄기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계층도 마찬가지다. 사업으로 갑부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음악으로, 연기로 성공한 노동자계급 출신들이 늘어나고 한데 섞이면서 패션도 마찬가지로 섞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갑부가 되면서 어릴 적부터 입던 옷을 고급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입던 옷인데 비싼 버전을 찾기 시작했다. 외적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중요한 이 분야 사람들이, 가령 힙합으로 스트리트의 왕이 되었는데 갑자기 슈트를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렇게 스트리트 패션이 비싸질 필요가 생기자 패션 브랜드에서는 이 분야를 잘 아는 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앉혔다. 예를 들어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모스키노의 제레미 스콧, 겐조의 오프닝 세레모니, 뮈글러에 있었던 니콜라 포미체티 같은 사람들이다.
디자이너 하우스로서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뭘했었냐보다 지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디자인 디렉터로 앉아 그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분야의 아이콘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즉 간결하고 명확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사람을 찾아 앉히는 게 간단하고 용이한 방법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예전과는 약간 다른 의미로, 매우 중요해졌다.
스타일 vs. 코스프레
우선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패션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말해보자면 '옷과 삶이 일치되어 연동되는 상태' 정도로 말할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패션은 사라진다, 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스타일이 같은 의미다. 이건 단지 옷뿐만 아니고 음식이나 건물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취향, 심지어 행동 방식까지 포괄한다. 달리 말하면 취향을 가꾸고 가지게 된 한사람 그자체라고 할 수 있다.
코스프레 역시 이 글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개념 분류 아래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임시 용어이고 스타일과 대척점에 있다. 원래는 취미 등의 일환으로 캐릭터를 따라 하는 걸 주로 뜻하고 특히 본래적 의미의 코스프레는 성격이나 버릇 등 캐릭터의 특성을 모사하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여기에 쓰이는 코스프레에서는 그런 특정 대상이 없고 사회의 암묵적인 룰 자체가 모사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종의 룰을 따라가는 옷입기를 말하는데 촘촘한 사회망 안에서 현대적인 삶의 영위를 위해서 '적절한 복장(costume)'을 선택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기(play)'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 지향적이다.
스타일과 코스프레는 동기에 의해 나뉘어지는 개념이므로 겉모습만 가지고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두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옷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법이나 규범에 의해 입어야만 하는 교복, 죄수복, 군복 등의 제복이 있다. 이런 옷은 자의에 의해 선택하는 옷이 아니기 때문에 위 분류에 넣을 수 없다. 그러나 스타일로서 제복을 사용할 수도 있고 코스프레로서 제복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리뉴얼, 리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의가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데 분류하자면 스타일에 해당할 거다.
여하튼 궁극의 스타일, 궁극의 코스프레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세에서 구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역시 코스프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구축에 시간과 노력, 실패와 좌절 등 비용이 들고 때로는 납득시킬 시간이 필요하지만, 코스프레는 기본적으로 장착식이므로 그런 비용으로부터 훨씬 자유롭다. 20세기 초반의 패션 잡지들에서도 이러한 패션 규정 목록을 볼 수 있고 심지어 1000년 전 신라시대에도 품계별 신분별 의복 규정이 정해져 있던걸 볼 수 있듯이 계열의 역사는 사실 자기만의 개성을 중시하게 된 인권 성립 이후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스타일에 비해 역사도 훨씬 깊다.
레플리카, 과거 옷의 복각
지금까지 패션은 디자이너 혹은 경영인이 끌어오는 산업이었지만 최근 들어 제조업자와 제조 공장이 전면에 나선 패션 트렌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즉 과거의 옷과 그것들의 복각, 레플리카다.
패션이란 기본적으로 내일 입을 옷을 만드는 일이다. 프라다가 본격적으로 도약한 80년대, 헬무트 랑이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과 패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넓혀놓은 90년대를 거치며, 패션은 점점 더 먼 미래를 바라봤다. 이는 90년대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고,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보다 많아지고 동기화 되면서 형성된 희망과 낙관 덕분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버블이 무너지고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지나간 다음 이런 희망과 낙관은 환멸과 비관으로 바뀌었다. 당장 눈앞의 고민이 우선이 된 거다. 그렇게 무너진 상황인 일본의 90년대, 미국의 200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패션 트렌드 중 하나가 레플리카 패션이다. 레플리카라고 아무거나 복각하는 건 아니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워크웨어가 주 대상이다. 레플리카 트렌드는 외형뿐 아니라 제조업 그 자체의 복원이므로 조금 비싸다.
나쁜 점을 먼저 말하자면 이건 아주 쉽게 자국주의와 결합한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메이드 인 저팬을 넘어 메이드 인 뉴욕, 노스 캐롤라이나, 오카야마, 교토, 심지어 레드 윙, 롤리, 오오미치 등 점점 더 작고 좁은 곳을 향한다. 내가 만들고 네가 사주고, 네가 만드는 걸 내가 사주는 교환형 로컬 경제로 버텨내기다. 심지어 본사가 위치한 곳에서 100킬로미터 안에서 나오는 재료로 모든 걸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브랜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건 소규모 제조업이 패션의 일부가 되고 그자체가 멋이 되어 옷의 특징의 일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플리카 의류라는 건 1900년대 칼하트, 1940년대 리바이스 등 똑같은 걸 다시 만들고 있는 거라 브랜드별 특징이라고는 내가쓰는 재봉틀이 더 오리지널이다 같은 거밖에 없다. 다만 이건 한때 의류 제조업이 홍했고 그게 다 망해서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만 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콘 밀스 공장에서 나온 데님을 사다가, 이베이에서 구입한 구식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이렇게 집에서 완성한 옷을 인터넷에 올려 판매한다. 운이 좋으면 인터넷을 따라 소문이 나고, 어딘가 근사한 컬렉션 숍에 들어갈 수도 있다.
패스트패션 강자가 된 자라ZARA
패션의류산업은 시장의 트렌드와 수요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예측에 맞춰 원자재를 구입해 상품을 생산하기보다는, 판매 목표에 따라 신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판매를 푸시push하는 공급자 관점의 시장이었다. 그래서 계절이 지나도록 판매하지 못하고 남은 재고는 소위 '땡처리'라 하는 큰 폭의 할인 판매를 반복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의 기호를 잘 읽어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다른 취향과 소비 패턴을 고려해 지역별로 최적의 대응을 하는 게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SPA 브랜드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는 직영점을 가지고, 디자인에서 제조, 유통까지 일관된 수직통합 시스템을 갖춘 의류 브랜드를 의미하는데, 미국의 청바지 브랜드인 GAP에 의해 도입되었다. 소비자들에게 값비싼 브랜드 한 벌을 사기보다, 질 좋고 값이 적당한 브랜드로 여러 벌을 사라'는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을 내세우면서 성장했다. 자라Zara스페인, H&M스웨덴, 유니클로UNIQLO일본가 대표적인 브랜드들이다.
SPA 브랜드들은 대부분 소비자의 요구 및 유행의 변화를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해,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소비자에게 제공한다고 해서 패스트패션 기업으로 불리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자라가 발군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H&M은 트렌드 예측을 잘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유니클로는 신소재 개발과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 디자인의 의류를 소품종 대량생산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자라는 신속한 디자인과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를 핵심 경쟁력으로 하고 있다. 잘 살펴보면 모두 재고 관련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도를 핵심 역량으로 하는 자라는 스페인 기업 인디텍스가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로, 전 세계 88개 국가에 2,0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매출 24조 원 규모의 업계 수위 글로벌 브랜드이다. '재고는 곧 죽음 Inventory=Death'이라는 인식 아래, 공급망 상의 원재료와 완제품 재고를 최소화하고 정가 판매를 위주로 하고 있다. 할인 판매는 년 2회 한정해서 실시하고 있으며, 정가 판매 비중이 약 85%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업계 평균 65~70%에 비해 현저하게 높아, 재고 할인 판매로 인한 손실이 경쟁업체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또한 자라는 마케팅 비용이 매출액의 0.5% 수준밖에 안된다. 비용이 높은 매체 광고를 지양하고 재고 비용을 절약하면서, 반면에 좋은 위치에 매장을 확보하고 매장 디스플레이나 쇼핑백 디자인 등에 마케팅 비용을 집중하고 있다. 마케팅 비용을 줄여 확보된 재원으로 제품을 중저가에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류산업은 노동집약적이라서 임금 수준이 낮은 지역에 위치한 공장에서 아웃소싱하는데, 자라는 생산과 물류의 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해 약 75%의 물량을 자체 생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집된 20여 개 공장에서 재단과 염색을 한 옷감은, 약 400여개 전문 샵에서 옷으로 만들어져 물류센터로 집하된다. 대부분의 물류센터를 전략적으로 본사와 가까운 곳에 두어, 유럽 지역은 24~36시간, 그 외 지역은 48시간 내에 물류센터에서 매장까지 공급이 가능한 운송체제를 구축했다. 유럽의 공장이 임금은 더 비싸도, 원재료 투입부터 제품 생산까지의 총 처리 시간Turn Around Time이 아주 짧아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한다.
의류업계는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통상 6개월이 소요되지만, 자라는 2~3주 만에 가능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30~50%의 물량을 시즌 중에 디자인해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신속한 SCM을 실행해 내기 위해 자라는 독특한 업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1주에 2회 상품을 발주하고 2회 입고하는 매장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디자인, 구매, 제조, 물류, 판매 등 전 부문이 규정된 타임라인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심지어 고객들까지도 이런 프로세스에 익숙해서 언제 매장을 방문하면 신상품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꼭 필요한 소량을 매장에 공급해 과다 재고로 인한 비용 증가와 불필요한 할인 판매를 예방하고,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효율적인 SCM 운영이 가능한 것은 강력한 IT 시스템으로 뒷받침되는 신속한 정보 공유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매장의 잘 훈련된 매니저들은 판매 및 소비자 반응에 관한 정보를 신속하게 본사로 전송한다. 수집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매장별로 최적의 제품이 공급되도록 생산 계획에 반영하고, 끊임없이 제품 디자인을 수정 보완해 매년 11,000종의 의류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을 강화하기 위해 200명이 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한편, 수백 명의 트렌드 스파터Trend Spotter가 소비자들이 어떤 디자인을 원하고 향후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현장에서 조사해 즉각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15일 만에 상품화해서 2주에 한 번씩 신상품을 매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디자인 1일, 생산 3~8일, 운송 1~2일이 소요된다. 이를 통해 매장 공급주기를 짧게 하고 배송 물량 단위를 소량화해, 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가고 있다.
자라는 디자인부터 판매에 이르는 공급망의 실행 속도를 일반적인 업계 수준보다 10배 이상 높이는 독보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함으로써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속도경영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SCM을 신속히 할 뿐만 아니라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의 유통 속도를 높여 신속히 제품에 반영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페티시 패션과 롤리타 패션
페티시 패션은 보통 은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데 중점을 두는 데 반해, 롤리타 패션은 디테일에 집착하며 자기만의 19세기, 빅토리아시대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성격을 보인다. 여전히 이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분야를 끌고 가는 힘은 똑같이 상상력이다. 비록 특정 장르라는 속박에 묶여 있다고 해도 경계는 없다. 여성을 유혹한다며 라텍스 속옷을 입든, 남성을 유혹한다며 수제 레이스가 달린 러플 드레스를 입든, 아니면 홀로 우뚝 선 드래그 퀸이 되고 싶든, 그런 거야 자기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인생의 첫 번째 라텍스 바지를 입어보며, 또는 레이스 코르셋같은 걸 입어보며 어딘가에서 열리는 페티시 파티나 롤리타 다과회 모임에 첫 발을 내딛게 될 테고, 그 순간부터는 경험이 더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페티시 패션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과감하게 나가면 자칫 경범죄나 공연음란죄 등 법률적 구속의 경계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스터드나 가죽 등으로 된 페티시 패션 아이템은 이제 꽤 흔하다.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스터드 아이템이나 크롬 하츠의 고딕풍 아이템은 아이돌도 달고 나온다. 롤리타 패션은 유행의 피크를 이미 넘어서긴 했지만 천천히 끝까지 가는 지지자들에 의해 스테디셀러가 되어가는 중이다. 게다가 문제가 될 만한 건 보통 옷 안에 숨겨져 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관련 없는 사람은 볼 일도 없다.롤리타 패션은 일단 이름에서 소아성애 같은 음란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요즘 민속 의상 같은 걸 입은 헐벗은 10대 초반 소녀 사진이 올라오는 어덜트 계열 쪽에서는 롤리타 대신 님프 등의 단어를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롤리타 하면 메이드를 우선 떠올리고 페티시, 코스프레를 차례로 떠올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롤리타 패션의 이미지는 저런 성인물보다 오히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1865)에 나오는 삽화나 「불량공주 모모코(下妻物語)」(2004) 등의 영화 쪽이 더 정답에 가깝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초기 롤리타 패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발전해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갖다 쓰는 식으로 하위 장르가 만들어졌다.
패션 모델
에로티시즘이 기호 속에 있지 결코 욕망 속에 있지 않은 바와 같이, 패션모델의 기능적 아름다움도 '몸의 선(線)'에 있지 결코 표정에 있지 않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특히 무표정한 아름다움이다. 얼굴 모습이 가지런하지 않다든가 추하다든가 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는 제외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추상성, 공허함, 황홀감의 부재 및 투명성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비육체화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눈빛 속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넋을 빼기도 하며 넋을 잃기도 하는 멍한 눈동자, 욕망을 과도하게 느끼게 하면서도 욕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 의미도 없이 빛나며 검열을 환영하고 있는 듯한 눈은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그녀들의 눈빛의 기능이다.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저메두사 (Méduse: 두발은 뱀, 치아는 멧돼지의 이빨을 한 마녀. 쳐다보는 자는 돌로 변함)의 눈, 메두사에 의해 돌이 된 눈, 그것은 순수한 기호이다. 이리하여 도처에서 찬양되는 벌거벗은 육체 주위에 쾌락 때문에 거무스름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행의 아이섀도에 의해서 거무스름해지는 눈 속에서 육체의 의미 그 자체, 육체의 진실이 최면술에 걸려 사라진다. 이 현상이 진행됨에 따라 육체, 특히 여성의 육체보다 특별하게는 패션모델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모델의 육체)는 광고가 전달하는 무성의 기능적인 일련의 사물들과 동류적인 사물이 된다. 육체의 진실이란 욕망(désir)이다. 욕망이란 결여이므로 보여줄 수 없다. 육체를 최대한 노출시켜도 욕망의 부재가 강조될 뿐이며, 결국은 욕망을 검열하는 것에 불과하다.
멋의 기호학
기호학적으로 멋은 내재적 모드 체계의 추상적 언어 표현이다. 모드 체계의 연구에서 가장 좋은 실질적 대상은 바로 멋으로 대변하는 '의복기호'로 볼 수 있다. 실제 프랑스 기호학자 바르트는 의복기호를 통해 모드의 체계를 세우려는 야심에 찬 작업을 진행하였다.바르트에 따르면 동일한 대상으로서의 한가지 의복은 세 개의 상이한 구조, 즉 기술 구조, 도상 구조, 언어 구조가 있다고 본다. 기술 구조는 실제의 옷을, 도상 구조는 영상적인 옷을, 언어 구조는 글로 쓰여진 옷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세 구조는 각기 상이한 전파 체제를 소유하고 있다. 기술 구조는 실제의복의 구조이며 랑그의 본질이다. 이 랑그에서 영감을 얻어 착용된 의복들은 파롤에 해당된다. 또 다른 두 개의 구조, 즉 도상 구조와 언어 구조도 랑그이지만 이는 랑그의 본질에서 파생된 랑그로서 이 랑그들이 '실제 옷' 파롤과의 중개자로 개입한다. 기술 구조에서 도상 구조와 언어 구조로의 이행은 불연속적인 경우도 있다. 사실상 실제 의복은 하나의 구조를 다른 구조로, 다시 말해 기술 구조에서 도상 구조 및 언어 구조로 옮기는데 이용되기 때문에 전환장치라고도 한다.
인간의 행위를 연구해 온 데스먼드 모리스는 “모든 옷은 그 옷을 입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바르트가 이야기한 의복과 세계, 의복과 모드의 관계에 관련을 두고 있다. 모리스에 의하면 옷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한다. 보호, 예의 지키기, 표현의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기능 중 보호는 옷의 실용적인 기능이며, 비사회적이고 개인적인 기능에 해당된다. 원시인은 온난한 기후 속에서 진화했으므로 체온 조절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이들 나체의 피부표면은 옷의 필요성이 없이, 즉 인위적인 도움 없이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인간의 활동은 점점 복
집해져서 여러 가지 형태의 보호막이 필요해졌다. 피부를 찌르는 뾰족한 물건이나 강한 태양 광선, 예리한 무기에 의한 공격, 산소결핍 등으로부터 보호가 절실해진 것이다.
만약 옷이 단지 몸을 편하게 하고 보호하는 것일 뿐이라면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에 힘입어 의류를 모두 없애버릴 수 있다. 집과 사무실에는 공기 조절 장치, 중앙난방, 커튼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보호 문제에 신경을 쓰는 일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옷에는 예의 지키기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역할에서는 의류를 통해 신체, 혹은 신체의 특정 부위가 가려진다. 옷의 예의 지키기 역할은 인구가 극적으로 증가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작은 부족 단위로 살았던 시절에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옷의 실용적 기능이 강조되었다. 이때는 같은 부족 내 모든 사람이 타인이 아닌 같은 혈족이었다. 그래서 의복의 예의 지키기 기능이 강조되지 않았다. 이는 마치 한 가정 내에서 가족들의 옷입기를 생각해 보라. 비교적 예의 지키는 측면의 옷 입기보다는 실용적 옷 입기가 실천되고 있는 경우와 흡사하다. 그러나 기계가 발명되고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시 속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보다 타인들과의 접촉이 빈번했다. 이때 옷은 실용적 기능과 함께 예의 지키기 기능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화이트칼라'·'블루칼라' 등과 같이 의복의 색채나 형태에 따라 직업이나 지위 신분 등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해당하는 예의 지키기가 규범화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문화간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이러한 극단적인 예의 지키기가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히려 누가 더 많이 벗나를 내기하듯 신체의 노출이 점점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의복의 새로운 모드 형태로 가시화되고 있으며 의복을 둘러싼 코드를 변화시키고 있다.
의복을 문화의 표시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길다고 볼 수 있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옷은 신분을 구별하는 기준이었다. 다시 말하면 양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차원의 문제였다. 예를 들면, 15세기 영국에서는 경보다 낮은 계급은 어느 누구도 엉덩이를 가리는 튜닉(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입었던 소매가 짧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겉옷)을 입을 수 없었으며, 구두 끝이 2인치보다 긴 구두를 신지 못했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옷을 입다가 발각되면 벌금을 물거나 옷을 압수당했다. 르네상스시대 독일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사회적 계급보다 높은 차림을 하면 무거운 칼을 목에 차고 죄값을 치러야 했다. 미국 초기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남편이 적어도 1천 달러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의 부인은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를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꾸미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의복으로 멋내기는 멋을 내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의복은 옷 자체로만 멋을 창출해 내지 않는다. 그와 정체성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 이를테면 내적으로 피부색·체형 등, 외적으로는 모자 · 신발 · 손수건·가방·양산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의복의 멋내기를 수행한다. 또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신체장식도 의복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피부에 상처를 내어 문신을 하고, 구멍을 뚫고 머리를 깎고, 몸에 향수를 뿌리고, 손톱을 물들이고, 얼굴에 분을 바른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 모두 신체장식에 속한다. 또한몸에 치장하는 보석 · 메니큐어 · 악세사리와 헤어스타일 등은 의복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신체 장식들은 일생동안 남아있는 것도 있고, 화장과 같이 일정한 시간밖에 유지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사람이 자신의 정서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며 나아가 의도된 커뮤니케이션 목적 달성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머리카락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아주 중요한 장식기관이었으며, 때때로 남녀가 서로 다른 머리 모양을 함으로써 성별 신호로도 사용되었다. 머리 모양은 나이와 지위의 표시로서 수백 가지 스타일로 꾸며지기도 한다. 화장은 인간의 얼굴에 무엇인가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얼굴의 분위기를 바꿔주고,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해 주며, 보다 젊고 건강하게 보이게 한다. 화장한 사람을 특정한 사회적 범주에 소속시켜 준다. 부족사회에서 화장은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지위나 부족 내에서의 개인 역할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화장은 부족의 특별한 행사나 절기에 따라 달라지며, 혹은 타 부족과의 전쟁시 화장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기도 했다. 옷 입기 이외에도 의상과 관련한 모드는 헤어스타일을 비롯한 신체 장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8세기 말에 영국 여성들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유행을 좇아 머리를 60센티미터 높이로 올렸다. 부유한 여성은 전속 미용사를 두고 반나절이나 걸려 머리를 꾸미기도 했다. 미용사에게 맡길 능력이 없는 여성들조차 프랑스제 가발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의복의 상징성
우리는 의복에서도 수많은 상징성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색채가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빨간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은 정열에 불타는 사람이라고 대개 이해한다. 요즘 대선을 위한 경선 주자들의 넥타이 색깔은 모두 빨간색이다. 그러나 이런 기호를 발신하려는 정치인들은 다음과 같은 점, 구체적으로 의복이 주는 메시지의 의도성과 관련된 네 가지 가능성에 주목을 해야 한다.
① 기호발신자는 의도적으로(+) 수용되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보낸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신뢰와 청결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하여 깨끗한 흰 가운을 입는다. 환자는 의사를 병원 직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리고 환자들에게 몸이 불편한 데서 오는 두려움을 덜기 위해 이러한 비언어 신호를 선택한다. 이 경우 의사는 흰 가운을 통해 진료실이 위생적이고 안전한 장소라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환자는 자신의 불안이 해소되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② 기호발신자는 의도적으로(+) 수용되는 메시지를 비의도적(-)으로 보낸다.
A씨는 30대 기혼 여성으로 모대기업의 사장 비서 자리에 지원하기 위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A씨는 면접을 위해 심사숙고하여 옷을 골랐으나 장신구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A씨는 큰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를 끼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손목시계를 찼다. 면접관들은 그녀에 관한 정보를 추가로 찾고 있다. 그들은 A씨가 결혼을 했고 중산층에 속한다고 짐작한다. 이 경우 A씨는 면접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용된 정보를 장신구로써 비의도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③기호발신자는 비의도적으로(-) 수용되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보낸다.
30대 초반의 김 교수는 A대학에 갓 부임했다. 그는 아주 젊은 탓에 학생들은 그를 자주 학생으로 착각한다. 그는 자신이 교수라는 신분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평소 자주 입던 진 바지를 입지 않고 정장 차림을 더 많이 한다. 다른 교수들과 학생들은 무의식 또는 비의도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김 교수가 무엇인가 다르게 보이지만 그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내지는 못한다.
④ 기호발신자는 비의도적으로(-) 수용되는 메시지를 비의도적으로(-) 보낸다.
모대학 4년생 B는 언제나 블루진 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간다. 같은 과의 동료 학생들과 교수는 그의 차림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의도적인 메시지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박세진 패션 vs.패션, 박세진 지음, 도미노총서 2016
속도경쟁사회, 황경석 채성수 지음, 현북스 2017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2004
멋의 기호학, 김영순, (기호학으로 세상읽기) 소명출판 2002